어제 저는 아이들과 별로 내키기 않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바로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진행될 예정인 핼러윈 행사(?)를 위한 과자 준비를 한 것입니다.
학원에서 공지사항으로 핼러윈 행사 준비를 해달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솔직히 이게 중요한 공지사항인가 싶지만 일단은 아이들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봅니다.
학원에서 보내온 행사 공지 문자
아이들이 저를 닮아서 그런지 따로 특별히 의상을 갖춰 입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는 달리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거든요. 간단한 소품만 챙겨가기로 합니다. 다만 같은 반 친구들에게 사탕이나 젤리, 초콜릿은 나눠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어제 저녁식사를 먹은 뒤 오늘 쓸 간식을 사기 위해 마트로 갑니다. 마트에 가니 사탕, 초콜릿, 젤리, 캐러멜 등등 부모님들이 보면 기겁할만한 주전부리가 넘쳐납니다. 어른인 저조차도 먹어보고 싶은 과자가 보이니까요.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아이들
여러 가지의 과자들을 고른 뒤 조그만 박스에 담아서 가게를 나섭니다. 아이들이 손수 골라 바리바리 산 과자들을 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즐거워 보입니다. 제가 평소에 젤리나 사탕류는 굉장히 엄격하게 먹는 것을 관리해왔는데 오랜만에 마음껏 허락하에 플렉스를 한 것 같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대신 경제교육을 확실히 시키고픈 저는 아이들의 용돈으로 이 비용을 사용하겠노라고 분명히 말을 해둡니다.
오랜만에 과자로만 과소비를 해서 기분 좋은 둥이들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 사 온 것들을 펼쳐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영수증으로 확인되는 금액은 둘째 치더라도 이 설탕 덩어리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하니 이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이걸 다 먹고 나면 아이들의 치아건강에 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보면 볼수록 한숨이 나오는 물건들
그리고 이 이벤트를 저희 아이들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마 모르긴 해도 저희 아이들도 오늘 저녁에 이만큼은 받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받아온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겉포장을 뜯은 뒤에 거실 바닥에 종류별로 쏟아놓으니 생각보다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알록달록 영롱한 무지개 같은 색깔의 설탕덩어리들
그렇지만 아이들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습니다. 굳이 이미 사 가지고 온 마당에 제가 초를 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간단하게 포장을 할 생각에 바닥에 앉았는데 신나는 얼굴이네요. 저도 함께 아이들과 똬리를 틀고 앉아 하나씩 비닐백에 넣어서 묶음으로 만듭니다. 환경을 늘 걱정하는 삼부자는 조그만 비닐백에 과자를 넣는 작업을 하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것들을 포장하기 위해 또 따로 비닐백을 구매하고 말았다
재잘재잘 대면서 포장을 하다 보니 10분도 되지 않아 드디어 완성!! 학원 친구들과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줄 곰젤리+지렁이모양젤리+마2쮸 4종+초코바가 들어간 핼러윈용 6종 선물 세트 정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전부 모아보니 20명분이 조금 넘게 나옵니다. 나눠줄 친구가 많다고 하니 부모로서 기뻐해야 할 일이거늘 핼러윈이 대체 뭐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물음표입니다. 솔직히 매년 물음표입니다.
개별포장을 마친 핼러윈용 선물
영어학원에 물어봐도 영어학원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주위의 영어학원들은 모두 핼러윈을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고 말이죠. 이날의 이벤트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원에서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날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핼러윈데이가 무슨 날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라는 미션을 줬는데 결국 핼러윈데이가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아는 친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행사에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죠.
핼러윈데이는 '모든 성인(聖人) 대축일을 뜻하는 만성절(萬聖節, All Saints' Day, All Hallows' Day)'인 11월 1일의 전날(eve)인 10월 31일 밤을 기념하여 행해지는 영미권의 전통 행사를 말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처럼 11월 1일의 이브가 핼러윈데이인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핼러윈데이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파티나 축제 문화로 자리 잡고 SNS를 통해서 연예인들도 즐기는 기사가 자주 노출되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영어학원 같은 곳에서도 영미 문화권의 행사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 것이죠.
개인적으로 핼러윈데이를 어떤 식으로 즐기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적어도 핼러윈데이가 어떤 날인지 한 번 정도는 상식선에서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저도 오늘 저녁 아이들에게 자세히 알아보고 설명해달라고 하려고 합니다. 제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찾아보고 설명해달라고 하려고요.
한 줄 요약 : 핼러윈 데이는 모든 성인(聖人) 대축일을 뜻하는 할로우 데이(11월 1일)의 전날(10월 31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