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수필에 10월호의 실을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올해 1월호에 실렸던 원고를 작년 말에 제출했으니 꽤 오랜만인 셈이죠. 되돌아보니 이번 달의 보름 정도는 칼럼에다 수필에다 원고도 수정하고 브런치까지 매일 관리하다 보니 글쓰기에 묻혀서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2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누군가는 글 쓰는 것도 시작하는 것이 반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것이 어려워서겠죠. 저는 일단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쓰기 시작하는 것은 이제 제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 만족하면서 살기에는 경력이 짧다고 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냥 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으며 울림도 좀 주고 교훈까지 줄 수 있는 글을 써야 될 것 같다는 의욕으로 포장된 부담감이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일단은 위에 언급한 여러 요소들을 녹여내기 이전에 재밌게 즐겁게 행복하게 쓸 수 있게 더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매일 써야 사는 남자
초록의 푸르름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잎사귀가 길거리를 헤맨다.
나무들은 이미 차분하게 동장군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이 지나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기운이 넘치거나 의욕이 샘솟는 일은 흔치 않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딱히 이뤄낸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느끼게 되는 약간의 무기력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보통 10월이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보다는 마무리를 차분히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서 더욱 그렇다.
2022년의 나를 가만히 되돌아보았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노력 부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아직 목표를 달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지런히 실천해온 것은 바로 '매일 글쓰기'였다.
원래 매일 글쓰기는 연초부터 세웠던 목표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로 시작되었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일종인 이곳은 타 플랫폼과는 달리 유의미한 차별성을 가진다. 사전에 작성한 글을 평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필력을 갖춘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게 만든 독특한 진입 방식이었다. 심사를 통과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면 그 안에서는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작년 이맘때쯤 심사를 통과한 뒤부터 자녀교육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매일 일기를 써왔던 데다 회사 기자 경험이나 수필 활동을 하여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글을 온라인에 수시로 쓴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특성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 글을 알리기 위해 구독자 수나, 댓글, 조회 수 같은 요소가 글쓰기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일기가 아닌 이상 글을 쓰는 행위는 많은 이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것이 원고를 제출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한숨 돌리게 되는 기고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처음에는 주 3회 글을 쓰다가 조금 익숙해지면서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석 달쯤 될 즈음에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으니 바로 매일 글쓰기였다. 누구나 결심을 하면 그게 무엇이든 며칠 동안은 틀기만 하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의욕이 넘쳐흐른다. 하지만 난관은 빛의 속도로 찾아왔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물리적인 시간 부족이었다. 보통 밤에 글을 쓰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낮에 오고 가는 짧은 시간을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쓰기도 했고, 점심시간을 쪼개서 쓰기도 했다. 바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도 자주 있었지만 용케 버텼다. 한 가지 더 신경을 쓴 점은 직장 동료로부터 글을 쓰느라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부분이다.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었다. 수필처럼 온전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 인쇄가 되면 수정할 수가 없기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야 한다. 그에 반해 브런치 글은 매일 쓰다 보니 퇴고에 사용할 시간이 넉넉지 못했다. 모자란 부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단 업로드부터 하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확인을 거쳐서 수시로 고쳤다. 문장의 완성도를 글을 발행하고 난 후에도 부지런히 보완해갔다.
마지막 문제는 주제 선정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글의 소재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매일 다른 주제로 글을 뽑아내기란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다. 마른 수건을 짜는 것처럼 쓸 내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틈틈이 주제를 찾는 훈련을 했다. 기사나 다른 이의 글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었다. 특별한 경험이나 상황, 기사는 모두 사진이나 짧은 메모로 남겨놓고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매일 쓰다 보니 글이 더뎌지는 저녁이면 가끔 혼잣말로 ‘빨리 글을 써야 하는데~’라며 초조하게 중얼거리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는 그렇게 힘들면 쓰는 빈도를 좀 줄이라고 한다. 글을 쓰시는 어머니 역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신다. '격일로 쓸까, 좀 쉬었다가 쓸까, 굳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 갈등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감미로운 노래로 유혹해 물속으로 빠지게 만드는 세이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때 유혹에 넘어가서 글을 멈추거나 쉬게 된다면 그간 쌓아온 좋은 습관이 하루아침에 흐트러지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브런치에는 글을 주기적으로 쓰며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활동을 시작한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남아있는 분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꾸준히’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글을 정말 잘 쓰거나 아니면 글을 매일 쓰는 것이다. 아직 경험과 내공이 부족하기에 글을 잘 쓸 자신은 없으나 열심히 매일 쓰는 것은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 때도 있지만 꾸준히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나름의 결실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 소망을 가지고 일 년 동안 매일 글쓰기를 반드시 해내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