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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찔이와의 전쟁

벗어날 수 없는 늪

by 페르세우스



저는 평소 글을 쓰면서 신조어나 비속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재미를 위해서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도 제 글을 틈틈이 읽기에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서 제목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할까 고민을 했지만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가 않더군요. 최종 결승까지 <매운맛과의 전쟁>이 올라왔으나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맵찔이란 맵다와 찌질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든 신조어라고 합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자랑스레 말할 일도 아니니까요.


제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매운 음식 자체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짬뽕, 쫄면, 신라면 가능!! 맵찔이 당첨



제 생애 첫 매운맛에의 도전은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면서 <불닭>이라는 오묘한 이름의 음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급격한 심호흡을 부르는 맛,

완벽히 고쳤던 사투리를 부르는 맛,

얼굴이 뜨거워지는 맛,

물을 퍼마시다가 아! 이걸로 안 되는 구나를 깨닫게 하는 맛,

계란찜을 주문하게 만드는 맛,

쿨피스를 부르는 맛


을 대면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게요. 다음날 화장실 앉아서 겪어야 하는 고난은 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운 음식은 하나의 맛의 종류라고 여겼습니다. 시골에서 상경을 한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거지 서울의 세련된 사람들은 다들 이런 음식들을 즐기면서 사는 줄 알았죠.

불닭발(출처 : https://www.10000recipe.com/recipe/6856281)



하지만 몇 번의 매운맛을 호되게 겪고 나서는 저와 매운맛은 물과 기름, 원숭이와 개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점점 매운맛을 기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적당히 매운 음식을 먹어도 입에서 불이 나기도 하고 다음날 괴롭기 짝이 없는 장트러블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맵찔이'가 된 것이죠.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매운맛을 찾는다고 합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이를 통해 쾌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도 해소하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캡사이신에 의존하는 식습관이 과하게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만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중독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더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매운맛은 과학적으로는 맛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맛은 본래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만 존재합니다. 생리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매운맛은 캡사이신 수용체인 TRPV1 등이 캡사이신과 만나서 느껴지는 열감과 통증을 뜻합니다. 단지 편의상 우리는 맛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도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캡사이신을 인지하고 합체하는 캡사이신 수용체가 있는데 이 성분이 고추의 매운 성분을 알아채고 입안에 발열과 통증을 일으킵니다.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은 이 수용체가 적어서 뇌에 자극이 덜 가는 겁니다.


다음 달 아침에 화장실에서 느끼는 고통도 대장에서 모두 흡수되지 못한 캡사이신이 밖으로 나오면서 그 부위에서 캡사이신 수용체와 결합해서 열감과 통증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나옵니다. 제 브런치는 과학콘텐츠 전문이 아니기에 여기까지만 파겠습니다.

sticker sticker




물론 이런 주제는 매운 음식을 끊은 저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이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 믿었는데 최근 황당한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아이들은 식성은 특이한 편이라 보통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마라샹궈도 먹고 닭발도 천엽도 먹고 육회도 먹습니다. 물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부모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이들이 부쩍 그걸 끓여달라는 소리를 자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걸 먹는 아이들을 편의점에서 볼 때면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기겁하면서 쳐다봤거든요. 그걸 굳이 돈 주고 사 먹는 이유를 알지 못했죠.


정답은 바로

불닭볶음면

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셋이서 치즈가 들어간 불닭볶음면을 끓여서 먹었다길래 기겁을 했습니다.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되어서 괜찮냐고 물어봤죠. 세 명이 제 걱정을 알고 있는지 당당하게 스프는 반만 넣었다고 합니다. 제가 한 번 먹어봤는데 한두 입 정도는 먹을만했습니다. 일단은 알겠다고 말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아이들이 틈만 나면 불닭볶음면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뭘 먹겠다는 의욕을 자주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반갑게 들어주면 좋겠지만 걱정스럽습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스프를 넣는 양이 점점 늘어나지는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이제 고학년인데 이런 것까지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잔소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매운맛의 강도를 점점 늘려나가다가 먹은 그날 밤 당장이나 다음 날 아침에 호되게 고생할지도 모르니 미리 저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까지는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한 번 호되게 당하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움켜잡으며 먹지 말걸 하며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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