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속이 문드러진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부모로서 그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인들을 통해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나는 자식이 내 뜻과 의지와는 달리 점점 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때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 학업이 될 수도 있고 애착관계일 수도 있으며 건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에게 의지나 능력이 되는데 부모의 여건 때문에 뒷바라지를 못해줄 때입니다.
제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바로 취업전선으로 뛰어드셨습니다.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 있으셨지만 두 살 터울의 큰 외삼촌께서 삼수를 하시는 바람에 대학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낼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어머니께 그때의 일은 두고두고 한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모가 되고 나서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뒷바라지를 최대한 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희 집에 그런 시련의 시기가 닥쳤습니다. 바로 과학발명수업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성동구, 광진구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해서 2개 반 정도로 초급반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수업을 수료한 학생들 중에서 절반 정도만 선별해서 심화반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초급, 심화 모두 성수중학교에 있는 발명센터에서 집합교육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급반 수업을 하던 상반기 4~5월에는 온라인 zoom 수업으로 대체되어서 직접 가지 않아도 되었죠. 그런데 이번 심화반은 집합교육으로 시행하기로 정해진 모양이었습니다.
그때 만들었던 소마큐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요일 오후 4시 50분부터 시작하는 수업인 데다가 수업을 하는 성수중학교가 집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는 학교였기에 아이가 스스로 가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어른이 함께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야만 했죠.
그렇다고 성동구, 광진구의 5, 6학년 초등학생들 중에서 일부를 선발해 기초반을 수료한 아이들 중에서 따로 45명만 선발된 교육인데 부모가 데리고 다니기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며 가며 걸리는 평균 이동시간 왕복 1시간
아내와 저는 12주간의 교육 기간 동안 격주로 나눠서 아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직장에서의 근태처리는 각자 알아서 해야 했죠. 일단 제가 첫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오후 휴가를 내서 아이를 데리고 성수중학교에 있는 발명교육센터로 갔습니다.
아이가 들어가는 것을 본 뒤 저는 뜻하지 않은 자유시간이 생겼습니다. 놀랍게도 성수중학교는 유명한 핫플레이스인 성수 스트리트 바로 옆이었던 것이죠. 마치 구경온 사람인 것처럼 거리를 배회하면서 어슬렁거렸습니다. 지근거리에 있지만 제가 성수동에 올 일은 거의 없었기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구경이나 하자고 생각했던 것이죠.
잠시 20여 분 정도 여기저기 돌면서 구경을 하지만 금세 재미가 없어집니다. 아재에게 힙한 맛집과 카페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일 오후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사람 구경은 자~알 했습니다.
결국 구경을 하다 말고 학교로 다시 들어가 제 숙제(필사, 브런치 글쓰기)를 합니다. 성수동에 와서도 어리바리하게 이러고 있는 제가 참 거시기하지만 일단 사진 하나 찍었으면 됐습니다.
첫 수업을 마친 아이는 일단 멀리 다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수업 듣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아 합니다.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번은 해봤으면 좋겠다고 설득을 합니다. 이것도 일입니다.
다음 주는 제가 당번이 아니니까 아내에게 노하우를 잘 전수해줘야겠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살짝 흔들렸습니다. 너무 쉽게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뒷바라지하기 귀찮다고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가 쉽게 포기하려는 것을 용인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이제부터 12주짜리 뒷바라지와의 전쟁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