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반은 흔들바위를 거쳐 울산바위(해발 873m)까지 이어지는 3.7km의등산코스를 즐기면 되고
최고수반은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708m) 등반을 하는 코스(10.7km)가 어울릴 겁니다.
잘 안보이시죠? 걱정 마세요~ 노안이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진을 못 찍어서 그래요.
저희 가족은 속초를 향해 출발하면서 오늘 하루 뭘 할지 계획 하나 없이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중급 이상은 도전을 할 생각은 0.02613%만큼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울산바위를 500ml 물병 하나만 들고 올라갔다가 아주 호되게 고생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한마음으로 오랜만에 케이블카나 한 번 타고 오자는 심산이었죠. 하지만 그 계획은 순식간에 어긋나 버렸습니다. 강풍으로 인해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끼.. 이 사람아~ 바람이 불면 얼마나 분다고 케이블카까지 운행을 안 하겠어?!"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날의 바람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드리기 위한 추가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잠시만 감상하고 가시죠. 꼭 좀 봐주세요~
결국 열악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수긍한 저희 가족은 케이블카를 단념하고 왕초보반 코스를 가볍게 걷기로 했습니다. 경치도 좋고 해도 좋고 구름도 좋은데 바람이 이렇게 부니 옷사이로는 매서운 바람이 슝슝 새어 들어옵니다. 옷은 가벼운 가을 외출복 차림인데 다행히 내복을 다 안에다 하나씩 껴입고 온 덕분에 그럭저럭 버텨냅니다.
1호 : 동생아, 저기가 설악산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길이야!
2호 : 아~ 그래? 타고 싶다~
그래도 볼거리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일단 넓은 부지에 펼쳐진 신흥사를 찬찬히 돌면서 구경을 하고 경치도 보면서 설악산에 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해봅니다.
아이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쌓아 놓은 돌탑을 보더니 그냥 지나치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특히 구조상으로 쌓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돌탑 하나를 보더니 기어코 자신들도 쌓아보겠다며 달려듭니다.
돌탑을 보면 정신 못 차리는 둥이들(좌:남의 돌탑, 우:둥이 돌탑)
그렇게 여유롭게 설악산의 절경을 평지에서 즐기던 중 갑자기 아내가 제안을 합니다.
"우리 폭포에 한 번 가볼까?"라고 말이죠.
저는 대답합니다.
"응? 여기에 폭포가 있었어?"
완전 금시초문입니다.
진짜 몰랐어요.
저는 설악산이라고 하면 흔들바위, 울산바위, 대청봉 이 세가지만 알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꿩 대신 용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당장 ok라고 대답합니다. 폭포라면 사진이 또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사람 잡는 길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공원 입구에서부터 폭포가 있는 곳까지는 2.3km, 2.7km 정도까지 밖에(?) 걸리지가 않네요. 3년 전에 3.7km 코스인 울산바위를 완주했던 경험으로 단순히 계산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 잡는 생각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흥사에서 커다란 돌다리길을 건너서 폭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코스가 굉장히 무난합니다. '평지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겠는걸?'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합니다.
(하지만... 이 안일한 생각이 사람 잡는다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건넌 뒤 먼발치에 보이는 울산바위가 반갑게 느껴지네요.
거기 가는 넌 힘들지? 여긴 낮아서 엄청 편하다~라고 약 올리고 싶은 기분도 한편으로 듭니다.
아이들이 그 길을 걸으며 마냥 걷지만은 않네요.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고 만져봅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자연을 통해서 배우는 공부니까요.말려봤지만 기어이 차가운 계곡에 손을 집어넣고냉수마찰을 하며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연을 즐기는 1호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프로그램이 있네요.
평지가 끝나자 이정표가 하나 더 나옵니다. 이 길로 올라가면 폭포를 세 개나 볼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일거삼득이 따로 없는 이런 좋은 코스를 제가 지금까지 몰랐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하지만... 그것이 사람 잡는 놀라움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폭포끼리의 거리를 짧디 짧아 보이게 만든 이 지도는 진정으로 최고급 낚시 기술의 정수를 표현해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면형태의 지도에서 400m의 거리가 저렇게 짧게 표현되었다면 그것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경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는 것이겠JOO!!!!!!!!!!
하지만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너무도 장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닥칠 난관을 생각할 겨를이 없네요. 올라가는 길이 조금씩 험해지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그동안 지쳤던 눈을 치료해주고 호강을 시켜줘서 회복을 시켜주는 느낌입니다.
20여 분을 더 올라가니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인
육담폭포
가 나타납니다. 육담폭포는 6개의 담(潭)이 물줄기를 따라 층층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육담폭포를 보고 나니 나머지 폭포에 대한 기대치도 상승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멈추고 온 길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한국인이라면 "일단은 못 먹어도 고!"
※ 불법 도박 신고는 국번 없이 1855-0112입니다~
육담폭포 옆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면서 두 번째 목적지인 비룡폭포를 향해 또 나아갑니다. 이 다리는 흔들 다리입니다.
외국인들이 오며 가며 많이 보였는데 이 다리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듯한 모습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다른 가족들이 모두 하지 말라고 하네요.
괜히 심술이 나서 발을 쿵쿵 구르면서 뛰어갔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앞에서 지나가고 있던 아내에게 등짝을 한 대 얻어맞습니다.
비룡폭포로 가는 길은 확실히 조금 더 험해지는 느낌입니다. 인공적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식 구조물들도 많고 경사도 높아집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넉넉하게 물들어 있는 채로 우리를 맞아줄 거라고 생각했던 단풍은 온데간데없고 강풍과 함께하는 산행이지만 결코 후회되지는 않네요.
(하지만... 그것이 사람 잡는 건방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코스쯤이야..
그렇게 육담폭포를 떠나 또 20여 분을 걸어 올라오니 드디어
비룡폭포
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물줄기가 쏟아지는 속도가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이 날쌘 느낌입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어우러진 비룡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비룡폭포와 바람이 보여주는 환상의 물쇼!
비룡폭포를 보고 나니 허기도 지고 해도 저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름답게 여운을 남긴 채로 산행을 마무리하기에는 여기가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올라갑니다. 사진 상으로는 절대 알 수 없지만 바람도 엄청나게 불어댑니다. 그런데도 결국 올라갑니다. 왜냐고요? 강풍과 고됨에 굴복하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는 건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너무 아깝다.
2. 아이들에게 중간에 포기하는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말자!
라고 멋들어진 이유를 만들고 싶지만...........
실상은 아이들이 말릴 새도 없이 토왕성폭포 쪽으로 먼저 쪼르르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불러도 잘 들리지도 않는 데까지 먼저 올라가버린 아이들을 다그칠 수도 없고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으니 보호자는 일단 따라 올라갈 수밖에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어요.... 다리를 올릴 때는 힘들고 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칠 때는 생각보다 무서웠습니다.
길은 급격하게 험해지고 가팔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그냥 다시 되돌아갈까?'라는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머릿속에서 수시로 나타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환장의 계단 쇼! 단 한 구간의 평지 없이 무려 오르막길만 400m였습니다!!!
아이들이 다 세어보았는데 총 913개의 계단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경사도가 최소 40도보다 더 되는 정말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체력이 부실해진 아내를 뒤에서 밀고 올라가느라 솔직히 더 힘들었지만 그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나고 난 지금은 말해도 될까요?
결국 30여 분의 사투 끝에 2.7km 거리의 토왕성폭포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790m에 위치한 토왕성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전망대의 높이도 폭포보다 조금 낮은 듯 하니 600~700m 정도는 돼 보이네요. 힘들게 올라오면서 토왕성 폭포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하면서 투덜댔습니다.
토할 것 같고
왕짜증 나고
성질 뻗치게 만드는 폭포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깊은 산봉우리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줄기를 보면서 뭔가 마음이 뚫리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저기서 물이 계속 떨어지는 걸까요? 자연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아이들은 힘들다는 내색도 없이 마냥 신나 합니다. 말을 안 들었다고 혼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네요. 아이도 어른도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까마득해 보이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한 줄 요약 : 토왕성으로 가는 길은 마치 토성에 가는 느낌 같았다.엄청 멀고 힘들었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