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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큐브, 꽃보다 주기율표!!

오랜만의 학예회 날 풍경

by 페르세우스



지난주에 아이들의 실에서 학예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이 학예발표회가 특별한 의미 지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진행되지 못했다가 3년 만에 열렸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을 초대해서 하는 대형 행사는 정말 오랜만이었죠.


아이들은 학예회 일정이 확정된 뒤 학교에서 직접 만든 초대장을 받아왔습니다. 이게 대체 왜 초대장이냐고 물어보니 이 종이가 있어야 학예회 날 학부모님들이 교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라고 하네요. 종의 임시출입증인 셈입니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초대장




초대장의 뒷 면을 찬찬히 살펴보니 같은 반 아이들이 어떤 콘텐츠로 예회에 출전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랩이 두 팀이나 있어서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어색해도 서로 민망한 것이 랩이라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반 아이들의 다양한 재주들




저희 집 아이들의 출전 종목은 1호는 주기율표, 2호는 큐브 맞추기입니다.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자신의 차례를 꾸려나갈 것인지 열심히 구상을 가족들과 함께 한 뒤 부지런히 연습합니다.


그리고 1호는 학급회장이다 보니 회장단 친구들과 행사 진행을 위한 멘트 연습도 준비합니다.




그런데 학예회 며칠 전부터 집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바로 아이들에게 목이 붓는 증세가 나타나서였습니다. 정말 섬뜩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드디어 우리 집에도 그분이 오시는구나.. 하필 이렇게 중요한 때에..'


그동안 저희 집 남자들은 코로나19를 기가 막히게 계속 피해왔기 때문에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순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계속 자가진단키트를 코에 쑤셔 넣으면서 체크를 하고 병원도 다녀왔는데 다행히 최종적으로 목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차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학예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제가 하는 행사도 아닌데 긴장이 됩니다. 휴가를 내고 교문 앞으로 가보니 3~6학년 학부모님들은 물론 꽃다발을 파는 아주머니부터 학습지 선생님들까지 북적북적합니다.


아이들의 교실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정해져 있는 학부모의 자리로 안내를 해줍니다. 책상을 모두 뒤로 밀어 두고 의자를 가운데 놓습니다. 거기에 학부모들이 앉고 남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공연을 할 모양입니다. 그리고 1시가 되자 선생님의 인사 말씀과 회장단이 앞으로 나와서 멘트를 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점핑 밴드라는 것입니다. 예전의 고무줄놀이 같은 필리핀 전통놀이인데 체육시간에 배운 거라고 하네요. 개의 줄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그 사이에 서있는 아이들이 규칙에 맞춰서 폴짝폴짝 뛰는 놀이입니다.

영상을 찍기는 있지만 다른 아이들의 초상권 문제가 있어 사진으로 갈음하겠습니다. ㅜㅜ




순서대로 진행하다가 2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2호는 네 개의 큐브를 순서대로 맞추는 묘기(?)를 선보입니다. 2호가 오늘 맞춰 보일 큐브는 총 네 개인데 아이비 큐브, 미러 큐브, 기어 큐브, 윈드밀 큐브 순입니다.

은색부터 시계방향으로 미러, 기어, 아이비, 윈드밀 큐브



평소에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긴장을 했는지 평소보다는 속도가 안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고 합니다.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제 긴장감이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것이었죠.

미러 큐브를 맞추는 모습




순서대로 네 개의 큐브를 맞추고 나니까 아이의 얼굴에서는 옅은 미소가 보입니다. 일단 한 녀석은 자신이 준비한 공연을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했습니다.

맞춘 뒤 관객들에게 확인




2호가 먼저 포문을 열었으니 이제 1호도 차례가 됩니다. 1호는 상당히 복잡하게 짜인 공연입니다. 정말 자 공연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1호는 주기율표를 모두 순서대로 외울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https://youtu.be/e1_PLmGlDYM



하지만 여기서 좀 더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조그만 종이에 118개의 원소를

원소번호

원소기호

원소 이름 순으로 적어서 접은 뒤에 아래와 같은 상자에 집어넣습니다.



이걸 만드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가 만들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1호는 학생 다섯 명과 학부모 세 명, 총 여덟 명을 추첨으로 뽑습니다.

이름이 적힌 막대기를 뽑아서 여덟 명의 참가자를 선정




그리고 총 여덟 명에게 원소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두 장씩 뽑아서 다른 사람에게 특히 1호에게 보이지 않도록 잘 가지고 있게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공연 시작입니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순서대로 각자가 가진 원소 종이에 적힌 정보중 하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종이에

102번

No

노벨륨


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말합니다. 만약 No라고 학생이 1호에게 말한다면 1호는 이 원소기호만 듣고 원소번호와 원소이름(102번, 노벨륨)을 맞추는 것이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총 16번의 시도를 해서 모두 맞추는 방식입니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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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번 모두 성공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시도 때도 없이 트레이닝을 시켰기 때문에 틀릴까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거나 목욕을 하거나 자려고 누웠을 때 수시로 갑작스레 물어볼 때도 틀리지 않고 대답을 잘했으니까요.


의외로 걱정되었던 점은 아이가 목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관객들에게 잘 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어서 싶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공연들도 재미있게 잘 보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저희 아이들도 격하게 칭찬해주고 다른 아이들도 직접 칭찬을 하기도 하고 안면이 있는 학부모님께 덕담을 건네는 시간을 가진 뒤 학예회는 행복하게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담으로 방송에서 나오는 진행자처럼 퀴즈를 관객들에게 냈던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그 친구를 당황시키는 바람에 좀 미안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낸 문제 중에


손흥민의 고향은?

전라선의 종착역은?


이러한 문제들이 있었는데 제가 문제가 나오자마자 답을 1초도 되지 않아서 맞춰버렸기 때문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그 문제를 사지선다형으로 준비해서 바람을 잡아가며 진행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퀴즈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 본의 아니게 그 아이를 당황스럽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나중에 따로 저의 불찰에 대한 사과를 전해 달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너희 아빠 진짜 똑똑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sticker sticker



여러모로 마무리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했고 즐거웠던 학예회 이야기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합니다.



한 줄 요약 : 정말 고생했다, 얘들아!! 아빠는 너희가 진짜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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