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웃으로 자주 왕래하고 있는 작가님의 안타까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학교 내신성적과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내신시험에서 시험문제 출제 오류로 인해 자녀가 뜻하지 않게 내신 등급에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녀는 크게 상심했지만 선생님의 상황을 고려해 사과를 받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시키기로 했다며 엄마이신 작가님께 이야기를 하였고 작가님은 속상했지만 그 결정을 존중해주었다고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치지 않고 감정이입을 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멀고도 먼 남의 이야기 같지만 이런 상황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라면 제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고 혼자서 결정을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아이에게 당장 소리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 그걸 너 혼자 결정하느냐고 혼을 냈을 겁니다. 오밤중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고 다음 날에는 학교로 뛰어가서 이 결정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난리를 쳤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가정입니다. 스스로 손해를 감내하면 되는 제 인생이 아닌 아이의 인생이라 더 이성적인 판단을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자녀를 비롯해 작가님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더 강하게 이의제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행동이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아이의 결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도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는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보다는 스스로 날갯짓을 하면서 먹이를 찾아나가는 방법을 점점 더 배워나가야 하는 시기이니까요.
깊은 아쉬움과 함께 어른보다 훨씬 큰 아량을 보여준 그 아이의 의연한 모습을 보면서저를 포함한 일부 속 좁은 어른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는 원래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뜻으로 '놓아줌'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 글로 인해 처음 알게 되었죠.
알고 보면 저는 생각보다 속이 좁은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미워했던 사람을 오랜 시간 동안 잊지 못하고 계속 의식하고 끊임없이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용서라는 의미가 놓아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결코 그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님을 말이죠. 그제야 용서를 할 수 있는 아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금 넓은 아량을 보여준 고등학생 친구를 격하게 칭찬하면서도 용서에는 계속 인색했던 저를 보면서 아직 제 마음 수양은 멀고도 멀었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한 줄 요약 : 말로만 글로만 그러지 말고 넓은 아량을 키우기 위해 좀 더 노력하자!
※ 참고로 이 글은 작가님과 자녀분의 아픔을 다시 들춰내며 가십거리로 만들기 위해 쓰는 글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앞으로 부모로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어른보다 넓은 아량을 보여준 그 친구가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옳게 쓰일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