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며칠 전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야간근무였고 보통 평일 야간근무 때는 아내가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을 챙겨 먹습니다. 아내 회사의 회식은 미리 예측가능하고 야근이 그리 잦은 근무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큰 변수는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다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급하게 잡힌 회의가 오래 걸려서 뜻하지 않게 퇴근이 한 시간 정도 늦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저녁 걱정을 하길래 그러지 저는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배달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대면 없이도 아이들에게 음식을 시켜줄 수도 있다는 점은 익히 아실 겁니다. 지난 방학 때는 아이들끼리 나가서 식당에서 사 먹은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 두 가지 선택지 말고도 추가로 재미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면서 장 봐서 넣어놓은 소불고기를 직접 해보겠냐고도물어본 것이죠.세 가지 선택지를 들은 녀석들은 단숨에 직접 조리를 해보겠노라고 답을 줬습니다.
대견하면서도 당연히 못 미덥습니다. 물론 여러 번 곁에서 요리를 도운 적은 있었지만 뜨거운 걸 직접 들게 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어도 조심스러울 판인데 둘이서 잘 해낼지 걱정이 되었죠. 하지만 이미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놓고서는 말을 호떡 뒤집듯 하는 건 더 못할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국 전화를 사용해서 차근차근순서대로 도구사용부터 조심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주었습니다. 냄비받침부터 조리하는 시간까지 좀 피곤할 정도로 알려줬지만 그렇게 하니 안심은 되었습니다. 다행히 가장 관건이었던 뜨거운 프라이팬을 큰 문제없이 사용했고 소불고기를 맛있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 때마침 집에 도착한 엄마의 저녁식사도 아이들이 직접 차려주었다고 합니다. 거한 상차림 없이 불고기에 밥그릇,수저, 김치를 포함한 두세 가지의 밑반찬뿐이었지만 아빠나 엄마가 직접 손을 하나도 돕지 않고 아이들이 차린 첫 저녁식사였습니다.
사진이 없다는 점은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네요.
미리 세팅한 쭈꾸미 볶음밥을 조리해 주는 아이들(오늘 글에 언급된 요리와 무관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었고 엄마의 식사까지 차려줬다는 자부심이 컸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에 돌아간 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면서 칭찬도 엄청나게 많이 해줬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밖에 나가서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죠. 공부 한 가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