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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Feb 28. 2023

자식의 덕을 좀 일찍 보는 부모



 제가 며칠 전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야간근무였고 보통 평일 야간근무 때는 내가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을 챙겨 먹습니다. 아내 회사 회식은 미리 예측가능하고 야근이 그리 잦은 근무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큰 변수는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다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급하게 잡힌 회의가 오래 걸려서 뜻하지 않게 퇴근이 한 시간 정도 늦을지도 모른다 내용이었습니다. 러면서 아이들 저녁 걱정을 하길래 그러지 저는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배달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대면 없이도 아이들에게 음식을 시켜줄 수도 있다는 점은 익히 아실 겁니다. 지난 방학 때는 아이들끼리 나가서 식당에서 사 먹은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 두 가지 선택지 말고도 추가로 재미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러 가지 선택지를 주면서 장 봐서 넣어은 소불고기를 직접 해보겠냐고 물어본 것이죠. 세 가지 선택지를 들은 녀석들은 단숨에 직접 조리를 해보겠노라고 답을 줬습니다.


 대견하면서도 당연히 못 미덥습니다. 물론 여러 번 곁에서 요리를 도운 적은 있었지만 뜨거운 걸 직접 들게 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어도 조심스러울 판인데 둘이서 잘 해낼지 걱정이 되었죠. 하지만 이미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놓고서는 말을 호떡 뒤집듯 하는 건 더 못할 행동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전화를 사용해서 차근차근 순서대로 도구사용부터 조심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주었습니다. 냄비받침부터 조리하는 시간까지 좀 피곤할 정도로 알려줬지만 그렇게 하니 안심은 되었습니다. 다행히 가장 관건이었던 뜨거운 프라이팬을 큰 문제없이 사용했고 소불고기를 맛있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 때마침 집에 도착한 엄마의 저녁식사도 아이들이 직접 차려주었다고 합니다. 거한 상차림 없이 불고기에 밥그릇, 수저, 김치를 포함한 두세 가지의 밑반찬뿐이었지만 아빠나 엄마가 직접 손을 하나도 돕지 않고 아이들이 차린 첫 저녁식사였습니다.

 사진이 없다는 점은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네요.

미리 세팅한 쭈꾸미 볶음밥을  조리해 주는 아이들(오늘 글에 언급된 요리와 무관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었고 엄마의 식사까지 차려줬다는 자부심이 컸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에 돌아간 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면서 칭찬도 엄청나게 많이 해줬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밖에 나가서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죠. 공부 한 가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니니까요.


한 줄 요약 : 아이의 자존감은 시험점수 백 점으로만 올려줄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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