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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07. 2023

메밀전, 2전 3기의 치열했던 도전



 저희 가족은 한두 달에 한 번씩 들르는 오리백숙 집이 있습니다. 입맛이 까다롭고 입이 짧은 아이들이 갈 때마다 넉넉하게 먹고 오는 곳이다 보니 자주 가게 되었죠. 그렇게 다닌 지가 10년이 훌쩍 어서 매우 오랜 인연을 가진 식당입니다.




 그곳을 갈 때마다 주문해서 먹는 음식은 오리백숙입니다만 사실 아이들이 최근 들어서 부쩍 잘 먹는 음식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바삭함과 촉촉함을 동시에 가진 메밀전입니다.




 오리백숙을 주문하면 여덟 조각이 피자처럼 잘려져서 애피타이저처럼 나오는데 이때는 어른들은 입도 대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메밀전을 게눈 감추듯 너무 잘 먹어서 다른 음식과는 달리 한 입을 먹어보자고 하기 미안했기 때문이죠.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라는 느낌을 그때 습니다. 가끔 한 입이라도 먹어보려고 추가로 주문하더라도 한 조각 정도 얻어먹을 정도로 엄청 좋아하는 음식었죠.




 이 정도로 아이들이 메밀전을 좋아하다 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말이죠. 생각해 보니 최근 들어 요리를 한 기억이 많지 않았습니다. 항상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요리에 한해서는 많이 게을러졌던 것이죠.



 그래서 짧은 고민을 한 끝에 지난주 일요일 아침에 아이들에게 선언을 했습니다.

"얘들아, 오늘 메밀전 만들어 먹자!"


만들어 본 적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요?"

그런데 왜 만들겠냐고 했냐고 물으신다면

"만들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죠"

라고 답하겠지요.



 일단 가장 중요한 재료인 메밀가루를 사러 마트에 다녀옵니다. 레시피가 있는 어플에서 원하는 메밀부침가루가 없기에 구입한 메밀가루와 집에 있는 부침가루를 섞어서 사용합니다.


 

 메밀부침가루에는 메밀함량이 40%니 그 정도의 비율로 섞으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일단 제 나름대로의 황금비율로 섞은 가루에 물도 붓고 아이들에게 저어달라고 합니다.




거기에 아삭한 식감을 조금이나마 확보하기 위해 배추김치를 씻어서 잘게 썬 뒤집어넣습니다. 이렇게 반죽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면 구워야죠. 대략 눈대중으로 반죽의 양을 살펴보니 적으면 두 장, 많으면  정도를 만들 수 있을 듯합니다. 난생처음 굽는 전인데 어떤 아웃풋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떻게 보면 세 장도 부담스러운 양이죠.




1차 시기입니다.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부은 뒤 구워봅니다. 제가 봐도 처참한 수준입니다. 일단 두 개의 뒤집개로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전이 찢어져버리고 맙니다. 제 마음도 함께 찢어지네요. 과학시간에 배웠던 지구가 하나의 대륙이었는데 갈라졌다는 '대륙이동설'이 생각나는 광경입니다. 





1차 시기의 결과물을 대령하자 아이들이 기대하는 눈치로 입에 넣어보는데 알쏭달쏭한 표정입니다.


2차 시기의 전은 조금 더 바싹 구워 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뒤집기가 말썽입니다. 이번에는 원 모양의 전이 기가 막히게 반으로 접힙니다. 이건  메밀 퀘사디아인가요?

화들짝 놀라서 원상복구를 해서 다시 펼쳐 보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입에 넣어본 아이들이 음~이라는 감탄사가 조금 흘러나옵니다.




 이제 남은 재료를 박박 긁어 마지막 전을 만듭니다. 체조도 아니고 3차 시기까지 하려니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1,2차보다 더 바싹 구워보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기분 좋게도 뒤집개 없이 완벽하게 프라이팬으로 손목스냅으로 전을 뒤집는 데 성공합니다. 이걸 영상으로 찍었어야 하는데 원통할 따름입니다.

 영상을 찍어줘야 할 아이들이 배도 어느 정도 찼겠다 이제 제 메밀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딴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 기회를 향해 제 요리혼(그런 게 있었나?)을 불태웁니다. 모양과 색깔은 제 스스로도 일단 합격이었는데 맛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세 번째 전은 아이들 모두가 만족해합니다.  


세 번에 걸쳐서 먹었던 메밀전에 대한 최종 평가를 아이들에게 요청했더니 이렇게 점수를 매겨줍니다.


             1차      2차      3차

1호     30점    45점    75점

2호     20점    50점    95점


첫 번째는 정말 엉망이었던 모양이네요. 다행히 마지막 전은 아이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킨 듯해서 포기하지 않고 만든 보람이 있었습니다. 1호는 세 번째 전을 먹을 때 배가 너무 부른 상태였다고 해서 75점이라는 점수였지만 그나마 위안은 되었습니다. 냉정한 녀석들입니다. 다음에는 많이 배고플 때 만들어서 먹여야겠어요.     


한 줄 요약 : 앞선 두 번의 실패는 세 번째 메밀전의 성공을 위한 들러리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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