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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19. 2023

비극으로 마무리된 오레오케이크 제작기



 얼마 전 도서관에서 <만 원으로 차리는 파인 다이닝>이라는 요리책을 하나 빌려왔습니다. 요즘 요리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생각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광고는 아닙니다. 제 글이 그 정도의 영향력이 없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책을 빌리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밤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요리책을 함께 읽으면 가장 흥미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책을 보면서 먹고 싶거나 함께 만들고 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좋습니다.


 이 책을 빌려오고 나서 함께 보자고 하니 역시 아이들의 흥미도가 확 올라갑니다.  




 책 속에 있는 많은 레시피를 보더니 2호가 강하게 이끌린 아이템을 하나 찾아냅니다. 바로 '오레오케이크'입니다. 오레오라는 동그란 모양의 초코쿠키로 만든 케이크라고 하는데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난이도가 '상(上)'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방법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만 보고 냅다 승낙을 해버립니다.


 이 성급한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채 말이죠.

보기에는 참으로 먹음직해 보이는 오레오케이크




 일단 아이가 선택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기로 합니다. 재료를 사 와서 본격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방법이 간단한 부분에 한해서는 제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이들에게 직접 해보라고 합니다. 물론 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  

케이크를 만들 재료치고는 간소해 보이는 사진




아이들이 신이 나서 오레오 과자를 쿠키 부분과 크림 부분을 분리해 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쿠키 부분만 사용하고 크림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딱히 도와주지도 않지만 그런 불만은 없는 모양이네요.  




분리한 쿠키 부분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봅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상태의 과자만 넣고 믹서기로 갈아보니 잘 갈리지가 않지만 믹서기 몸통을 이리저리 기울여가면서 곱게 잘 갈아냅니다.  




 이제 정량의 우유와 설탕 그리고 거기에 곱게 갈린 가루까지 함께 넣은 섞어서 반죽으로 만든 뒤 삼등분으로 나눠줍니다. 케이크 빵을 세 개로 만들기 위해서죠.

 여기까지도 참 쉽죠잉~?




 하지만 다음 순서부터 난관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종이포일을 깔아 둔 에어프라이어에 세 등분으로 나눈 반죽을 하나씩 넣고 오븐에서 빵을 굽듯 조리를 해야 하는 과정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반죽을 에어프라이어 안에서 평평하게 깔아야 그림에 나오는 케이크 모양을 만들 텐데 그 과정부터 쉽지 않았던 겁니다. 점성이 큰 반죽이다 보니 균일하게 펴지지가 않았던 거죠.   

에어프라이어 열기 때문에 뭉쳐져서 잘 펴지지 않는 종이포일




 일단 꾸겨서 넣듯 반죽을 깔아 놓고서 가열을 시작합니다. 1차로 만들어서 에어프라이어에서 나온 케이크 빵 부분은 윗부분이 불룩해진 모양으로 나와버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냥 커피번 모양입니다. 갈라진 부분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이런 형태가 나오니 조금씩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오레오 커피빈




 2차로 만들 빵을 에어프라이어에 집어넣고 아내에게 나머지 뒷정리를 맡기고 야간근무 출근을 합니다. 아내에게는 "이제 거의 다 해서 마무리만 하면 돼!"라고 하고 말이죠. 

 하지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서 저는 아내에게 벼락과 같은 호통을 듣고 맙니다. 알고 보니 케이크 빵 사이에 넣을 생크림을 만들기 위해 아내는 손목이 나갈 정도의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직접 해보겠다고 했는데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아내가 투입되어 생크림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아내의 손목 건강을 앗아간 생크림 




 거기에다 2차, 3차 케이크 빵도 모양이 온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설상가상입니다. 난이도 '상'이라고 적혀 있을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제 불찰입니다. 

 그래도 빵들이 기본적인 형태는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속상했던 2호가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생크림을 바르고 빵을 덮어서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2호의 손길




짜! 잔! 

결국 최종 결과물은 만들어냅니다. 맛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케이크의 모양 역시 만들어가면서 겪었던 난관들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리책의 사진과 비교를 해보니 아이들에게는 아쉬움이 큰 모양입니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네요. 그래도 쉽게 하기 힘든 케이크 만드는 경험을 해봤다는 점을 아이들도 좋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줄 요약 : 케이크는 앞으로 사 먹는 걸로.. 졌지만 열심히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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