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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부고메일

by 페르세우스



제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회사 인트라넷에 경조사 시스템이 따로 있고 경조사 메시지나 메일도 자주 옵니다. 그런 이유로 경조사 메시지를 그냥 흘려버릴 때도 많죠. 모르는 사람들이 90%가 넘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마음을 너무 무겁게 만드는 경조사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부고] 前 경기본부 ㅇㅇㅇ 본인상 알림'이라는 제목이었죠.


ㅇㅇㅇ 부장님은 제가 6~7년 전에 모셨던 상사였는데 제가 있던 부서에서 차장으로 근무하시다가 승진에 성공해서 부장이 되신 분이었습니다. 승진을 하기 위해 가장 민원도 많고 고생을 하는 정전 총괄 부서로 옮겨오셔서 결국 목표를 달성하셨죠.


하지만 그때 몸에 무리가 될 정도로 과로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때문이었는지 쓰러지셔서 뇌수술까지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많이 놀라고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수술도 잘 되었다고 합니다. 건강을 회복하셔서 복직도 하시고 퇴직하실 때까지는 근무를 잘하신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직을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소식이 들려온 것이죠. 회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별세하셨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마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문득 예전에 그분께서 부장으로 승진을 하셨을 때 축하회식 때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축하의 말씀을 전하면서 여쭤봤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걸 알고 있기에 승진하니까 후련하고 기분도 좋으시냐고 말이죠.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내용이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내용이었죠.

"원주씨, 내가 승진 발표가 나서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으려고 연락을 했는데 다들 바빠서 축하파티를 할 수가 없네. 딱히 승진을 했다고 해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더라고.

내가 아침에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에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6시 반이거든. 퇴근은 아무리 빨라도 9시가 넘어서하고.

그래서 평일에는 같이 살아도 가족들 얼굴을 거의 못 봤어. 승진하려고 이 부서에 오긴 했는데 새벽에도 정전이 하도 많이 나는 바람에 불면증까지 생기고 엄청 힘들었어. 원주씨는 나처럼 살지 마"라고 말해주셨죠.

그때 나눴던 대화는 제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주었기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정이나 건강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신 셈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뵙고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선하네요.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허망할 수 있나 싶어서 마음이 참 무겁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고인의 명복과 더불어 영면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그때 주신 조언도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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