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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Jan 11. 2022

연락처와의 전쟁

나의 벗은 어디 있나

 새해가 되면 많은 것들이 바뀌지만 주위의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제 문득 휴대폰의 전화번호부와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솔직히 언젠가부터 새해인사를 나누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있고 원래 알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코로나19를 핑계로 뜸해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런 게으름을 코로나로 합리화할 수 있다니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듭니다.


 반강제적으로 인간관계는 미니멀 라이프화 되어가고 있지만 막상 연락처를 살펴보면 지워지는 숫자보다는 저장하는 숫자가 늘어나는 희한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전화번호는 820개, 카카오톡 친구는 680여 명인데 과연 여기서 진짜 필요한 연락처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참에 연락처들을 큰맘 먹고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전화번호부는 설정에서 '연락처 통합'과 '중복 연락처 삭제'라는 메뉴를 통해 시원하게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생각보다 정리 방법이 좀 쉽지 않습니다. 친구를 메뉴에서 숨기고 그 숨긴 친구를 또 삭제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정리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고민이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내가 이 친구와 연락을 한지가 얼마나 되었더라' 하고 말이죠. 지울까 말까 고민이 되지만 결국은 지우고 맙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이 복잡한 두 가지 감정의 산물입니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물어볼 용기가 없고 상대방이 내 연락을 혹시나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죠.


어찌 돼었든 그렇게 20%에 가까운 친구 목록이 정리됩니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을 때 정리를 하고 나면 개운하지만 연락처는 이상하게 그렇지 못합니다. 왠지 내가 비정하고 매몰찬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진짜 좋은 친구는 무엇인가? 나에게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인가? 나는 진정한 친구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이들만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도 사회생활의 폭이 좁아짐을 많이 느끼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코로나19 이후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가 더 쉽지 않아짐을 느낍니다. 서로 만나서 마스크를 내리고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진짜 신뢰할 수 있거나 정말 필요한 사이여야만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기존에 알던 사람과 관계를 깊이 만들어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수 있는 기회는 점점 축소되고 이것이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바뀌지 않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키워주는 것 못지않게 어른들 스스로도 사회성을 유지하는 데 조금 더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정신이 없었다는 합리화로 잠시 잊고 지냈던 소중한 분들께 안부인사를 여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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