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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Jan 03. 2022

동심 파괴와의 전쟁

눈사람 브레이커는 과연 누구인가..

 어제 일어나 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배경 평소와는 달리 하얗게 바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새 눈이 좀 왔던 것이죠. 우리 집에 와 잠시 동거 중이신 쌍둥이들은 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눈놀이라고 하면 속된 말로 눈이 뒤집힌다고 할 정도라고 할 수 있죠. 당연히 아이들은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과 장갑을 챙긴 뒤 집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30분 정도가 지나고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살짝 나가보니 아이들이 재미난 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눈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사람을 만들어봤지만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고차원적인 종합예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제가 굉장히 높 평가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두 시간이 넘게 낑낑대며 만든 눈사람은 뉴스나 SNS에 나올 만큼 기가 막힌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만들었던 작품에 비하면 일취월장했기에 아이들의 끈기, 노력과 발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기분 좋게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에 즐거운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들어왔습니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를 닮은 눈사람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오늘 아침이 되자 이야기는 좀 뜻하지 않았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출근하려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혹시나 하여 잠시 밖으로 나가서 눈사람이 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눈사람은 밤새 피곤해서였는지 옆으로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끔 사진이나 제 브런치 글을 보기도 하기에 충격을 받을까 싶어 사진자료는 생략합니다)

 토이스토리의 인형이나 장난감처럼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닌 이상 아마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겠죠.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만들어두었는데 누워있는 방향을 봐서는 왼발로 어렵게 걷어찼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뉴스에서나 나온 사건이 눈앞에도 펼쳐지자 세상 풍파에 어느 정도 닳고 닳았다고 자부했던 저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너무 못 만들어서 그랬는지, 그냥 뭔가를 걷어차고 싶을 정도로 그 순간 기분이 안 좋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영화 <해바라기>에 나오는 주인공 김래원의 대사처럼 "그렇게 다 부쉈어야만 속이 후련했냐!"라는 대사가 떠올랐지만 속으로 삼킬 뿐입니다.

 일단 아이들이 혹시라도 이따가 볼세라 후다닥 세워놓고 단장을 다시 좀 해줬습니다. 다행히 추운 날씨 덕에 눈사람의 본체는 딱딱한 상태로 굳어 있었고  파손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세워놓으니 넘어졌던 티가 그렇게 크게 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자신의 집 앞마당에 만들어둔 눈사람을 부순 아이의 부모가 눈사람 제작자에게 소송을 걸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눈사람을 만든 사람이 부서질까 봐 돌멩이를 넣어두었는데 아이가 그것을 모르고 눈사람을 걷어차서 부수려고 하다가 되려 자기 발이 다친 것이죠.

 누구에게나 분노는 있고 그것을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러하니까요. 하지만 과연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꼭 무언가를 부수는 그런 방법이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또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성이 형성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회성. 폭력성보다는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이 더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세워놓은 눈사람을 오늘 누가 또 부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이들에게 어른된 입장으로 눈사람을 부순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말이죠. 쓰러뜨린 사람을 같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며 아이들 입장에서 흉을 보고 비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해주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달래주어야 할까요?

 눈사람 수선하느라 하마터면 지각할 뻔해서 정신없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괜스레 더 심란한 하루였습니다.


결론을 냈는데 가 부순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눈사람이 쓰러져서 부서진 것 같다일단 최대한 겨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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