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부터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첫 문장을 읽으시고 눈살을 찌푸리실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이번에 다루려는 주제가 생일이라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인간관계를 엉망으로 한편은 아니었는지 오전부터 축하 메시지도 가족들과 지인들께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가입해놓았던 사이트 얼마나 많았던지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도 상당히 잦은 알람으로 생일을 축하해줍니다. 덕분에 어느 사이트를 탈퇴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은 득이라고 봐야겠네요.
언젠가부터 아니 정확히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긴 이후부터 생일이라는 개념이 제 기준에서는 상당히 희석되고 탁해졌습니다. 출산이라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해보고 나니 생일이 태어난 사람보다는 낳아준 사람이 더 주목받아야 할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 자리를 빌려 존경하는 제 어머니 나여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생일선물이라는 것도 어차피 제가 갖고 싶으면 살 수 있다 보니 그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서도 언젠가부터 느끼지 못했죠. 한편으로는 나이 듦의 서글픔을 굳이 축하한다는 것이 크게 즐거운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제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미역국도 생일상도 생일선물도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며칠 전부터 선언을 해두었습니다. 제 생일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이들이 사흘 전부터 아빠 생일이라고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신들의 방에 못 들어오게 하고 들어가게 되면 눈을 감으라고 하질 않나. 아이들의 성의와 노력을 망쳐버릴 수 없으니 장단을 열심히 맞춰줬습니다.
엄마도 몰랐던 작년 생일에 선물 받았던 이벤트
막상 아이들이 준비한 이벤트의 뚜껑을 열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스케일이 컸습니다. 방탈출 게임처럼 각 방마다 힌트를 넣어두고 각각의 힌트의 조합으로 자물쇠 비밀번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아이가 직접 만든 레고 007 가방에 묶여있던 자물쇠를 열어서 편지를 얻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이번에도 어떤 것을 하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더 고마웠습니다.
각 방에 숨어있던 비밀번호
피아노 다리와 연결되어 있던 레고 007 가방
007 가방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편지
백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선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생일이라는 이벤트 자체에 대해서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어른으로서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반성만 하는 아빠죠)
예전 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니 저도 생일파티에 맺혔던 한이 있었습니다. 생일이 1월이다 보니 방학인 데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엔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죠. 어머니께서 맞벌이를 하셨기에 평일 낮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 어차피 어려웠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 생일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력이 심하게 시원찮은 저조차도 생일파티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또렷한데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이때의 기억들이 오래 남겠죠.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을 속상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생일을 포함한 가족의 생일은 하나의 즐거운 놀이, 재미있는 행사처럼 여기며 아직 자그만 손으로 낑낑대며 사흘 동안 준비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특별한 생일의 추억 하나를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