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Dec 22. 2023

니들이 연탄봉사의 맛을 알어?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어제 저는 오랜만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나 치렀습니다.

바로 연탄 나르기 봉사인데요.


일전에 봉사활동 단톡방이 있다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게도 신청자가 많아서 일정에 맞는 봉사활동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었죠.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제 야간근무 날에 활동 일정이 잡혔다는 메시지를 확인했고 잽싸게 참여신청을 했습니다. 활동장소는 제가 서울에 살면서도 가본 적이 거의 없는 서대문구 홍은동입니다. 집에서도 1시간 10분이 넘게 걸리는 지역이었죠.






그런데 이동거리보다 더 뜻하지 않은 복병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파였는데요. 아시다시피 이번 주는 한파가 절정인 시기였습니다. 오늘도 엄청 추웠죠. 어제도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낮 최고 기온이 영하 8도였으니 기사에서 '올겨울 최강 한파'라는 표현을 충분히 쓸 법한 날씨였죠.





계속 갈등을 했습니다.

제 마음의 소리가 물어봅니다. 굳이 왜 이렇게 추운 날 가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이죠. 사실 어제 아침까지도 고민을 했습니다.


제 안의 천사와 악마가 엄청 열심히 싸웠고 그 결과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로 결정을 했죠.

기왕 마음을 먹었다면 해야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무거운 몸이었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서 집결지로 달려갔습니다.


이동을 하는 동안 오늘 봉사활동에 대한 기부금도 함께 냅니다. 자율적인 기부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산 연탄을 배달해 드리는 셈이 되어 더 뜻깊은 활동이 되는 셈이죠.





집결지에 도착하니 담당자분들이 계시고 꽤 많은 봉사자들이 보입니다. 알고 보니 단체로 신청하신 분들도 열다섯 명에 저와 같은 개인 봉사자가 열다섯 명 이렇게 서른 명 정도가 참석하는 꽤 큰 규모의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물품들인 앞치마, 팔토시, 물, 간식 등을 나눠주시고 짧은 오티도 진행해 주셨습니다. 연탄이 쌓여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제!!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결국!!

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탄은 하나에 3.7kg 무게이고 보통은 한 번에 두 개씩(7.4kg)을 들고 가면 된다고 하십니다. 떨어뜨리지 않으려다 몸을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마지막 설명까지 듣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시작하기 전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탄 옮기는 작업이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한 활동인가?"라고 말이죠. 500장 정도 되는 양이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였죠.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보다 더 좁은 오르막길을 2분 가까이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난이도였습니다. 고작 두 장을 들었을 뿐인데 무게 또한 생각보다 만만찮았습니다.





모든 물량을 다 옮긴 뒤에 첫 번째 작업구간 경로를 다시 올라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촬영해 보았습니다.

영상을 필히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냥 걸어서 2배속 영상




세 번째가 옮기는 정도 되니 연탄 두 장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손목도 팔도 고통스러운 감각이 전해집니다. 게다가 땀이 나기 시작하니 한파의 날씨에 생명줄이었던 두꺼운 옷들은 순식간에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해버립니다. 너무 답답해서 저는 중간에 외투를 벗어버리고 말았죠.


그런 와중에 네 장씩 나르는 형님들도 계셔서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형님이 아니라 저보다 잘나면 다 형님이죠.


봉사자의 1/3 정도 되는 여성분들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해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저는 1, 2호 집에 겨우 19개 밖에 나르지 못했습니다. 인원이 적었다면 아마 걸어서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은 일이 끝난 뒤에 찍었습니다




40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강의 오르막 구간에 있는 두 집에 대한 작업을 모두 마친 뒤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배송을 하러 이동합니다. 밖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담당자님께서 개인봉사자들 사진을 하나씩 찍어주십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니 수줍어하면서 한 장 찍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덥다고 외투를 안 입고 돌기 시작했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추워지더군요. 뒤늦게 옷을 벗은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마지막 집은 꽤 가파른 오르막길에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오직 연탄으로만 난방을 하신다는데 쌓는 위치에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늘 아침에 연탄이 다 떨어졌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어르신께 어떻게 하셨냐고 담당자께서 여쭤보니 그냥 참았다고 하십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셔서 어떻게 할 수 없으셨던 모양인데 그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얼른 작업을 시작했죠.


짧은 구간의 연탄배달은 쌓는 곳이 협소해서 사람과 사람끼리 주고받는 방식으로 옮깁니다. 저는 쌓는 분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한 장씩 옮깁니다. 3.7kg의 연탄을 150장이나 쉬지 않고 옮기니 이 또한 쉽지 않더군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일하는 도중에는 딱히 대화를 하지도 못합니다.  





어르신 댁에 연탄을 다 쌓고 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흡족해집니다. 그런데 인솔자께 여쭤보니 보통 이 정도 양이면 한 달 반도 못쓰신다고 해서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나서 마무리를 하며 타니라는 조그만 캐릭터인형도 하나 받았습니다. 지금은 키링(key ring)용으로 작은 사이즈인데 10번의 봉사활동을 하면 큰 인형을 준다고 합니다. 갑자기 혹합니다.


연탄으로 시커멓게 변해버린 장갑을 보니 고통이자 보람 그리고 뿌듯함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담당자분들의 말씀이 오늘 활동은 평소와 비교했을 때 여러 환경이 거의 최고 수준의 난이도였다고 하시더군요. 적어도 오늘만큼은 제 자신을 좀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출근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정말 제대로 잘 졸았습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몇몇 봉사중독자들과의 대화는 저를 많이 깨우쳐주었습니다. 사실 힘든 와중에도 틈틈이 많은 분들과 인터뷰를 시도했기에 가능했죠. 삶이 힘들 때 봉사활동을 해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직접 참여하는 봉사활동은 제 스스로 세웠던 올해 목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과연 방해가 되지 않고 할 수 있을까..라는 점을 사전경험하기 위해서였죠. 일단 이번에는 모두 20대 이상의 성인분들만 계시긴 했는데 주최 측에 한 번 문의를 해봐야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온몸이 무겁고 힘들었고 지금도 온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어제의 여운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활동에 미약하나마 한 장면을 장식할 수 있어서 참 기뻤고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한 줄 요약 :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활동은 정말 힘들었지만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생애 첫 연탄봉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