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지향점 중 하나는 바로 합리적 소비자가 되는 일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소비를 싫어하고 책 이외에는 물욕도 딱히 없죠.
그렇다고 필요하거나 중요한 소비에까지 빡빡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충분히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는 꽤 깐깐한 편이죠.
제가 신조로 삼는 말도
1만 원을 쓸 때는 1분을 생각하고
10만 원을 쓸 때는 1시간,
100만 원을 쓸 때는 하루,
1,000만 원을 쓸 때는 일주일,
1억을 쓸 때는 한 달을 생각하라
니까요.
물론 그 노력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죠.
최근 겪은 뜻하지 않은 에피소드 덕분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아이들 방에 달려있는 LED등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불이 켜지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생긴 지 꽤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는 곧 고장이 날 테니 빨리 바꿔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이었죠. 켜지는 시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고장 나지는 않았으니까요.
예전 LED등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죠. 제가 주말에 출근하고 평일에 휴무일이 많은 주간에 밀렸던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캐럿마켓 중고거래, 캐리어 수리, 청소기배터리 교환, 집의 전기차단기 교체 등등. 그 버킷리스트 안에는 LED등 교체 또한 포함되어 있었죠.
하지만 그 방식이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을 불러서 처리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셀프 전등수리를 찾아보고 있어서였죠. 너튜브 영상을 보니 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천장의 등에 붙은 유리를 분리해서 안정기라는 부품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LED가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안정기 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알고 보면 저는 공대 출신이기도 하니까요. 저의 이런 기특한 생각을 아내와 아이들은 기겁을 하면서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전기를 만지는 일이기에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저는 전기회사에 다니는 데도 말이죠.. 하지만 무하마드 알리가 그랬던가요.
거기에 해본 적이 없는 일에 굳이 에너지를 무리하게 쓰느냐고 말립니다. 물론 제 최소한의 상식으로 감전의 위험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만 제대로 잘 고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잠시 고민을 한 뒤 일단 가격을 알아보고 정하자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는 조명가게를 찾아갔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LED용 안정기 가격이 12,000원 정도 하는데
조명가게에서 출장 나와서 안정기를 교체해 주는 데는 25,000원
등을 아예 교체해 주는 데는 50,000원이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아무리 셈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일지라도 이런 선택지에서의 답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인건비를 감안하면 가성비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짧은 고민 끝에 그 자리에서 아예 교체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예약까지 했습니다. 이사 온 지 6년째인 데다가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니 길게 생각할 이유도 없었죠.
게다가 한두 번 눈대중으로 본 셀프교체 영상만으로 잘 해내리라는 자신도 없었습니다. 행여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 잔소리를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들었을 테고 말이죠.
그 시간에 아이들이랑 놀아주거나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편이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바꾼 LED등
결국 새로운 등은 사장님께서 오시자마자 10분 만에 뚝딱 교체해 주셨고 기존에 있던 등까지 철거해서 가져가주셨습니다. 제가 교체했다면 버리는 일도 번거로웠겠더군요.
합리적 소비자가 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금세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돈을 더 사용하긴 했더라도 이런 방식이 바로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소비란 마냥 돈만 적게 들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니까요.
가성비를 포함해 자신이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도 무형의 가치이니 그 부분까지 고려했을 때 가장 최선의 소비를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비는 꽤 괜찮은 소비였다고 자평하고 싶군요. 기분이 좋은 관계로 혹시 반론이 있으시다면 순한 맛으로 부탁드립니다.
한 줄 요약 : 합리적 소비자가 되겠다는 노력은 어쩌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결심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