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버그

빈대의 습격

by 아인슈페너

영국의 아파트는 플랫(Flat)이라 한다.

홈스테이, 셰어 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이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기숙사 형식의 플랫 원룸이었다. 학교(어학원)측에서 소개해준 곳으로 안전하고 학교와 가까웠으며 유학생이 머무는 곳이라 각국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더니, 방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낡고 허름했다. 비용 대비 실망스러웠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영국에서 그것도 런던에 살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 나를 다독였다.

손바닥 만한 방에는 침대, 책상, 싱크대 그리고 화장실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점점 그 방은 나의 집으로 친해지기 시작했고, 낯선 거리에서 지친 여행자를 푸근하게 감싸 주었다.



그리고

이제 막 도착한 거 같은데, 늘어져 더디게만 가던 런던의 시계는 어느새 귀국 날짜를 한 달 정도 남겨 놓고 있었다.


막상 떠나려 하니 섭섭했던 도시는 좋은 기억만을 자꾸 생각나게 했다. 정든 반 친구들과 선생님, 아침마다 문을 열면 ‘아메리카노!’라 외치며 취향에 맞는 커피를 내려주던 카페의 아주머니까지 나는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게 여행자, 이방인의 묘미지!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던 어느 날, 목이 간지러워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보니 밤새 모기의 습격을 받았는지 벌겋게 물린 자국으로 피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모기에 물린 적이 없는 나는 의아해하며 약국에 갔다. 상처를 보여주니, 모기가 아니라 배드 버그(Bedbug) 같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때부터 영국을 떠날 때까지 배드 버그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번 물리면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긁기 시작한 자국은 오래도록 남아 잘 아물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약을 뿌리고, 주위의 조언을 듣고 수많은 방법으로 벌레 즉, 빈대와 싸웠다.


소용이 없었다.

건물 전체에 깔린 카펫은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는 배드 버그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 사무소에 이야기를 하고 며칠 후 벌레 처치반이 왔다. 8시간 이상 나갔다 오라는, 산만한 덩치의 두 남자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투사 같았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배드 버그에 비해 너무 과해 보이는 전사들은 코미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상관도 않던 도시는 막상 떠나려 하니, 뜻밖의 간섭으로 무질서하게 나를 공격했다.


밤에 들어와 보니 침대 매트리스는 뒤집어져 있고, 방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밤새 빨래와 청소를 하고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한 동안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방심한 어느 날 밤, 다시 물리고 말았다.

떠나기 며칠 안 남은 상태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물린 상처는 절대 긁지 않고 약을 열심히 바르면, 빨리 아물었다. 밤에만 활동하는 빈대는 희미한 불 빛이라도 있으면 물지 않는다. 밤새 침대 옆 스탠드를 켜 놓고 잤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는 방 한가득 약을 뿌리고 나갔다.


빈대는 런던에 머무는 동안 가장 불친절한 도시의 주인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 방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졌는지, 배드 버그는 보이지 않고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시간이 다가왔다. 나의 런던 이야기는 배드 버그와의 전쟁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고, 당시에는 미칠 것 같은 상황이 추억으로 이야깃거리 하나를 던져 주었다.


물론 벌레는 싫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빈대가 없어졌는데, 특히 유럽에 많다. 그 이유는 인체에 해로운 약을 마구 뿌려 사라진 것이고, 유럽은 약을 쓰지 않아 빈대가 남아 있는 것이라 한다.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2014. London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