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 산다는 건, 여행과는 다르다.
산다는 건 잠시나마 그곳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고, 다른 한편 이방인의 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지도를 벽에 붙여 전체적인 노선을 익히고, 가고 싶은 곳의 역들을 동그랗게 표시했다. 런던의 지하철은 ‘언더 그라운드(under ground) 라 한다. 미국식 영어와는 다르게 발음하고 표기되는 것이 많아 처음에는 당황하는 일이 많았다. 오래된 시간만큼 지하철은 낡았고 짐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여행객들로 복잡하다. 들어보지 못한 각국의 언어가 불협화음처럼 떠다니고,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언제나 들떠 있다.
어느 여름날 밤,
지하철은 한가하게 비워졌고 창 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어떤 역에서 한 소녀가, 본인보다 크고 집채 만한 가방을 들고 탔다. 영국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러시아 등 유럽권의 사람들이 어학연수를 많이 온다. 한눈에 보아도 이방인이었다. 소녀는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유난히 체구도 작았고 안경 너머 예쁜 눈은 멀뚱멀뚱 불안스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열차가 떠나고 몇 정거장 지났을까 무심코 고개를 드니, 소녀는 울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이리 닦고 저리 닦는데,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선 몸을 돌려 자꾸만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낯선 곳에 이제 막 도착했나? 홈 스테이 주인과 문제가 있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열차가 멈추는 순간 소녀가 내렸다. 내가 아는 한 그 역에는 아무것도 없다. 음식점도 호텔도 그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다. 놀란 나는 무심히 달리기 시작한 열차 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텅 빈 의자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머지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나 때문에 내렸나 보다. 쳐다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런던에 머무는 동안 지하철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가끔 보았다.
나 역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 고독!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평생 느낄 외로움과 고독을 그 몇 개월간 모두 느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뚱이만 던져 놓고, 늘어지는 마음의 끈은 나를 품었던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낯 선 공기 냄새, 거꾸로 된 도로의 방향, 웃으며 지나치는 모르는 사람들, 또 다른 이방인과의 어색하고 서툰 수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 피곤을 느끼며 장례를 마친다. 애매한 관계의 여자가 결혼하자는 물음에 상관은 없지만, 원한다면 괜찮다고 말한다. 또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뫼르소'는 해변에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재판장에서 왜 죽였냐는 검사의 질문에 ‘햇볕이 너무 눈부셔서’ 라 대답한다. 까뮈는 소설에서 인간의 부조리와 세상과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을 말하고 있다. 작품 속의 그 난해한 깊이는 논외 하고, 까칠한 도시는 나에게 ‘뫼르소'가 돼라 말하고 있었다.
아프면 약을 먹든지. 떠나고 싶으면 가방을 싸든 지. 너무 덥고 햇볕이 눈부시면 이 도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든지.
빨간 버스와 지하철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저 이미지로 접했을 때 가장 낭만으로 빛나는 순간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이 채우느라 힘들었던 방의 물건들은, 떠날 때는 비우느라 더 힘이 들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가는 날 아침, 나의 긴 런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두 개의 가방만이 덩그렇게 놓여있다.
매일 남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떠나기 위해 빨간 버스를 기다린다.
2014. London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