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학생

50, 어학연수를 가다.

by 아인슈페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그것이 부여하는 ‘학생’이라는 신분은 어떠한 특권계층보다 안정감을 주었고, 암암리에 나는 보호시설에서 아늑하고 따뜻한 삶을 살았다. 23살에 졸업을 하고 24살에 결혼을 하였다. 25살에는 첫 아이의 엄마가 28살에는 둘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또 다른 보호시설에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안전했다. 대학원을 가려고 아주 잠깐 공부를 한 것과 문화센터의 강좌나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이 내가 그동안 해 온 일의 전부이다. 동네 학부모나 대학동창을 만나 점심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친구의 넋두리를 맥주와 함께 들이켰다. 가끔씩 가족 외에 사람들과 여행을 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아무 일도 아닌 일과 그 무엇인 일들이 뒤엉켜 볶아지고 있을 때,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뒤늦은 사춘기가 왔던 거 같다.

가족을 설득할 있는 완벽한 계략을 짜야했다.

첫 번째 타깃은 대학교 2학년에 다니는 둘째 딸이었다.

“딸~ 이제 곧 겨울 방학이고, 내년에 3학년인데 이쯤에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건 어때?”

“싫은데? 난 어학연수 가기 싫어!”

“영국이야! 그것도 런던!”

나는 이미 여러 어학원에서 갖가지 정보를 입수하여 가고 싶은 곳의 도시와 학교를 정해 놓은 상태였다.


사실, 딸아이를 보내는 것은 영화 속의 지나가는 사람 1, 2 정도였고 내가 주인공이었다

“나 영국 싫어해. 날씨도 그렇고, 한국이 좋아.”

딸을 설득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남자 친구가 있었고, 둘은 한참 좋을 때였다.(지금은 헤어졌다) 눈치 없이 6개월이나 떨어져 어학연수를 가라 하니, 엄마는 주책이다.

딸아이에게 연수가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고, 나쁠 만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나 혼자 간다고 하면 집안의 반대는 안 봐도 알겠고, 한 번도 남의 나라에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는 나도 무서웠다.


딸을 볼모로 2014 어느 봄날,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황금기였다고 딸은 말한다. 그렇게 튕기더니!)

단, 나는 런던에 딸은 옥스퍼드에 있는 조건이었다.

그곳까지 가서 엄마와 한 공간에 더구나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게 딸의 논리였고, 큰 딸아이는 “엄마, 거기까지 가서 한국말만 하고 밥만 해주다 올 거야? 엄마도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봐."

백 번이고 옳은 말씀이었다.

그래 주중에는 각자 생활하고, 주말에 만나 여행을 하는 거야!

이 아줌마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책에서 배운 ‘독립운동’이 전부였던 것이다.


딸은 1월에 떠났고, 나는 4월에 떠났다.

공항에는 “Welcome Mom!”이라는 팻말을 들고 영국 물을 먹은 딸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49년간 겪어 보지 못한 낯선 감정들은 저만치 기둥 뒤에 숨어 나와 겹쳐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웰컴’이라 속삭이지도 않았다.


딸은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의 수업과 많은 과제 그리고 테스트에 지쳐있었고, 내가 꼭 그렇게 원했던 그림은 아니었는데,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로 한 우리의 약속은 이 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 딸은 또래의 친구들과 참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영화 속 지나가는 사람 1, 2 쯤으로 런던의 거리에 놓였고, 딸은 진짜 주인공이 되었다.







2014. London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