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를 고발합니다!
백자의 육아 일기를 쓰면서 자꾸만 '똥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독자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백자의 '똥이야기'가 초보 개육아 엄마에게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환장하게 미쳐버리고 말 것 같은 사건이 많기 때문에 육아일기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어느 수요일 오후.
거실에서 로봇 청소기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백자는 부엌 중문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처럼 평화로운 수요일 오후였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나는,
우리 집 로봇 청소기 이름은 '키키'. (나는 애정이 가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
그 키키가 정말 열심히 백자의 똥을 먹고 있었다.
아니! 백자가 똥을 안 먹으니 이젠 로봇 청소기가 똥을 먹어?
청소를 하느라 배변판과 패드를 모두 치워 놓았던 것이다. 백자는 분명 방금 전에 똥을 쌌고 치웠는데, 그사이 또 똥을 싼 것이었다.
키키는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며 백자의 똥을 사뿐히 즈려 밟고, 또 즈려 밟아 똥 치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평소에 마주한 먼지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의 물질이므로, 다 흡입하지 못하고 밟고 또 밟으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실 바닥과 카펫은 온갖 무늬의 갈색 똥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그것은 마치 하나의 그림! 예술작품으로 까지 여겨졌다.
AI 가 그린 '똥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온 집안에 백자의 똥냄새가 진동했고, 백자의 '대환장 똥파티'가 열리는 동안 우리 집은 인간의 집이 아닌 개똥 집이 되고 있었다!
으악!!
한편 백자는 소파에 올라가 키키가 자신의 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만족? 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키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백자는 으르렁거리며 키키를 향해 맹렬히 짖었고,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청소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나쁜 쉐끼!) 짖기라도 했으면 일이 이렇게 까지 커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청소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건 한여름 밤의 꿈일 거야!'
혼잣말을 반복하며, 잊지 못할 극한 체험을 했다.
결국 키키는 사망했고, 카펫은 세탁소에 실려 갔다.
백자는 온순하고, 얌전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에너지가 넘쳐 주체를 하지 못해 온 집안을 휘잡고 다녔고, 조심하지 않으면 남아나는 물건이 없었다.
슬리퍼는 사 오는 족족 모두 뜯겨 나갔다.
잠깐 한눈을 팔면 거실 소파의 속살은 하얗게 뜯겨 백자의 놀잇감이 되어 있었고, 점점 속 빈 강정이 되어갔다. 휴지는 또 얼마나 좋아하던지 한번 물리면 처참한 모습으로 난도질을 당했다.
이갈이를 시작하면서 식구들 발 뒤꿈치를 얼마나 깨물고 다니던지, 나의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케아에서 산 등나무 의자 하나를 해 드셨다.
모든 보이는 것은 물고 뜯고 망가뜨렸다.
우리 집에 깡패 하나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집에 오신 엄마는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이게 개 집이지! 사람 집이니?’
개전문가 친구는 말했다.
'한 살이나 두 살쯤 된 개를 데려왔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진작에 말해주지!
또 사람들은 위로했다. 두 살이 되면 의젓해진다고.
모처럼 한가한 저녁시간, 밥을 먹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본다.
백자는 옆에서 코를 골고 잔다.
귀여운 놈
알고 보면 형편없는 나 하나를 믿고 까부는 놈
눈빛과 표정으로 말하는 놈
하찮고 또 하찮은 놈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결정체
아무리 사고를 치고 힘들게 해도 백자에 대한 사랑은 점점 진해져만 갔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맞는 것 같다.
나는 행복하다!
백자는 잘 때 이런저런 소리를 낸다.
으~음~~크응~드르렁~ 쿨쿨~ 우~~ 우~ 크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