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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Mar 04. 2024

사랑은 스며들고 길들여지고 받아들이는 것

성숙한 개엄마 되기

백자는 쑥쑥 잘도 자랐다.

선배 견주분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

'너무 빨리 자라니까 아기 때 사진 많이 남기세요!'

개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대부분 한 살 정도가 되면 몸은 다 자란다. 그리고 두 살이 되면 성견이 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뒤돌아 서면 자라 있고, 하루 밤 지나고 나면 털이 복슬복슬 올라와 있었다.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되도록 많은 사진을 남기고 싶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아기에서 소년 그리고 성견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2년이라니!

그렇다면 나 역시 빠른 시간 안에 성숙한 개엄마가 되어야 한다! 백자의 시간에 맞추려면!


백자는 너무 빨리 자라고 있었다.


미끼

백자를 처음 데려왔을 때 결심한 것이 있다. 1살이 되기 전까지는 간식을 절대 주지 않는다! 는 거였다.

하지만 똥을 먹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황태'만을 허락하기로 했다. 처음 맛을 본 백자는 무슨 신세계를 본 듯 미친 듯이 먹어 치웠다.

이거다!

그 이후로 백자가 똥을 싸면 황태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백자야! 황태 먹자!!!'

하지만 황태라는 단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백자는 똥을 먹어치우고, 황태를 먹으러 쪼르르 달려왔다.

주지 않았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눈물겨운 노오력! 의 시간들이었다. 아! 정말 개엄마되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던가! 내가 무슨 그리도 큰 것을 바랐단 말인가!! 무슨 대단한 것을 요구했단 말인가!!!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수많은 방법을 썼지만 통하지 않았던 백자의 똥 먹는 습관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1. 백자가 똥을 싸기 시작하면, 황태를 부스럭 거리며 꺼낸다.

2. 백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소리로 '아! 똥 쌌어? 아구 잘했네!! 아구 이쁘다!!' 마구 칭찬을 하면서 황태를 주었다.


이렇게 반복을 하다 보니 백자는 똥을 싸고 달려와 기다린다! 황태를 달라고!!!

이제는 똥을 싸고 뱅글뱅글 돌면서 춤을 추고 웃으며 달려온다. 황태를 달라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꼭 황태가 아니어도 똥을 싸고 달려온다.

칭찬해 달라고! 보상을 해달라고!

미끼가 통한 것이다!

그렇게' 똥전쟁'은 끝이 나고 있었다.


부작용!

깊은 밤,

옆에서 킁킁, 낑낑, 침대에 발을 올리고 숨을 헐떡인다. 무슨 일인가 놀라 일어나보니 백자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2시.


'왜?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하지만 백자는 멀쩡해 보였고, 심지어 기분도 좋아 보였다. 이상해서 나와보니 똥을 한가득 쌓아 놓았다. 그 시간에 똥도 치우고 간식도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새벽 3시, 5시.... 백자는 똥을 쌀 때마다 나를 깨우고 간식을 얻어먹고, 나는 비몽사몽 똥을 치우고 잤다.

주변에 물어보니 똥을 치우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백자의 명령에 따르는 꼴이 되고 앞으로 백자에게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리니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나?




'백자는 좋겠다. 그깟 똥을 쌌다고 칭찬받고 간식도 얻어먹고, 왕자님 대우를 해주니 다음 생은 백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지인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과연 백자는 우리와 사는 것이 행복할까?

나만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고, 혼란스러웠다.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그곳에는 거대한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고 있었다. 백자 역시 우리와 살기 위해 많은 순간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무섭고, 힘들지 않았을까.

백자도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 가족과 백자는 서로 다른 생명체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스며들고, 길들여지고,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었다.


나를 닮아 비위가 약한 큰 딸이 소리친다!


'앗! 손에 백자 똥 묻었어!! 아! 몰라!!'

'야! 니똥보다 훨씬 깨끗해!! 야! 엄마는 백자 방귀 냄새 맡는 것도 너무 좋아! 고소해!'


나는 백자에게 길들여졌다!!!

짜식!! 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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