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 따라 걷기
창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지글지글 타버릴 거 같다.
발코니 한편에는 딸아이가 빨아 놓은 신발 두 켤레가 여름의 가장자리에서 물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언제 저렇게 빨아 놓고 갔담?
커피 머신옆에는 원두에 따라 기계를 다루는 작동법이 빼곡히 적혀 있고, 언제 주문했는지 모를 휴지는 현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딸은 나보다 섬세하고 자상하다)
방에 들어가 침구를 세탁기에 넣으려고 걷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딸아이 냄새가 나는 곳.. 좀 더 두자.. 마음을 바꾸었다. 베개를 가지고 나와 끌어안고 소파에 앉는다.
딸아이가 쓰는 로션 향이 난다.
우리 집 강아지, 백자도 자꾸만 누나 침대에 올라가 킁킁거리며 엎드린다.
저녁때가 되자 백자는 하염없이 현관을 바라보며 누나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최애 장난감 빨간색 링을 물고 앉아 기다린다.
어서 돌아와 놀아달라고.
지금은 그저 마음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시간이다. 백자도 나도.
큰 딸아이는 한국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쳤으나 미국으로 가서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엄마인 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라 말했다. 쿨~~ 하게!
하지만 내심 그렇게 쿨하지만은 않다.
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인정받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었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이쁜 아기도 낳았으면 좋겠다.
한마디로 어느 한 가지 놓치지 말고 다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림만 하고 아이만 키웠기에 나의 딸들은 좀 다른 삶을 살기 원했다. 아마 은연중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스 라이팅? 권고? 주입? 모 비슷한 짓거리들을 참 많이 한 거 같다. 어쩜 나는 내가 못다 한 꿈들을 아이들이 대신 이루어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20, 30대와 작금의 시대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외침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살자!’
평범한 게 제일 좋아! 였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사실 평범한 게 제일 힘들다.
그리고 그 평범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평범의 의미조차 잘 모르겠다. 어쩜 그 평범이라는 기준조차 이 사회가 정해 놓은 하나의 틀, 질서, 보이지 않는 규칙 같은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제는 너무 잘난 인간이 되라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
괜찮다고 적당히 하라고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무엇이든 너만 좋으면 된다고 외친다. 그냥 대충 살자고!
하지만 아이는 결국 떠났다.
또래 중에는 결혼해서 아이가 이미 둘이나 있는 친구도 있는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오랜 숙원이던 학교에 덜컥 합격을 하고는 가버렸다. 그렇다고 딸아이가 비혼주의는 아니다.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어 한다. 아! 어쩌란 말이냐! 욕심꾸러기!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다 다 해라!!
언제나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라!
꿈을 가져라!
세뇌시킨 이 엄마의 책임이다!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국과는 13시간 차이, 낮과 밤이 정반대다.
딸이 공부하게 된 도시는 뉴욕, 그것도 맨해튼!
이미 떠나기 전 도시의 물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다행히 장학금을 75%나 받을 수 있고,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다. 조금만 절약하면, 아니 많이 절약하면 잘 살아갈 수 있다.
5분 거리에 센트럴 파크도 있다 하니 열심히 운동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활비 절약을 위해 혼자 쓰는 곳이 아닌 둘이 사용하는 기숙사를 선택했다. 룸메와 잘 맞아야 할 텐데… 인도에서 온 학생이라고 들었다.
딸이 보내준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거실도 넓고 부엌과 화장실도 괜찮다.
막상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내오니 뉴욕 한복판에 있는 딸의 모습이 실감났다.
정말 갔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