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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Aug 05. 2020

누구나 자기 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

꿈을 이루고 싶은 자, 책상을 사라


식탁에는 책과 노트, 필기도구가 어지럽게 놓여있다. 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던 딸이 한 마디 한다. 

"어휴, 엄마 안 읽는 책은 치워!"

미안한 마음에 가족의 식탁을 훔치기라도 한 듯 서둘러 국을 뜨고, 밥을 펐다.


부엌의 식탁은 밥을 먹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의 책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커리어 우먼도 아닌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글을 끄적이고, 책을 읽고, 고지서를 정리하고, 메모를 하거나 식사 메뉴를 짜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나는 그렇게 그저 그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식탁이 필요했다. 

식탁의 주요 역할은 밥을 먹고 식구들이 담소를 나누는 장소이기에 부수적인 책상으로서의 역할은 마치 월세방에 사는 친구의 집에 곁들여 노숙하는 처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하나, 둘 책상이 생겼다. 책상을 사줄 때마다 비장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왜 일까. 공부하는 아이들의 책상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때론 과외 선생님의 차를 배달하면서 책상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 책상에서 울고 웃으며 수능을 치르고 성인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여러 이유로 책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 남편의 서재를 만들어 주겠다 약속했다. 집에 돌아오면 신문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고,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자는 것이 남편의 일과인데 나는 근사한 서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좀 산다 하는 집이 배경으로 나올 때 남편은 그럴듯한 서재의 책상에 앉아 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과일이나 차를 끓여 간다. 너무 보편성을 띠는 장면이기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당연한 패턴인 거 같은 착각이 들었나 보다. 


나도 책상이 필요하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나만의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 진작에 그런 꿈 조차 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럼 가족의 식탁에 세 들어 사는 마음도 들지 않을 테고, 마음대로 늘어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눈치 보지 않을 텐데..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내 책상을 샀다. 마땅히 놓을 자리가 없어 침대 옆에 놓았다. 근사한 서재는 가지지 못했지만, 1400mm의 공간이 작은 도서관 하나쯤은 되는 기분이다. 그곳에는 서랍이 3개나 있는데 소중하지만 별거 아닌 물건들을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책상 위에는 아크릴로 끄적인 수줍은 나의 그림과 작은 수투 키 그리고 선물 받은 십자가와 베를린 여행 중에 산 소크라테스 조각상이 있다. 십자가와 소크라테스는 일부러 간격을 두고 띄어 놓았다. 왠지 그래야 할거 같았다. 물론 어지럽게 놓인 책들과 노트 북이 있다.



작은 책상은 갑자기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처음에는 멀쩡한 책상을 놔두고, 자꾸만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했다. 저러다 관상용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소소한 일들도 처리하고 점점 나만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별거 아닌 일들을 하는데, 그 별거 아닌 일들이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처럼 여겨졌고, 나 또한 근사한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그럴듯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책상이 생길 때 나의 책상도 덩달아 생겼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랬더라면, 

지켜보는 자가 아닌 참여하는 자로서 아이들과 더불어 성장하지 않았을까.

맹목적으로 관찰하는 자가 아닌 사고하는 자로서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책상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훌륭한 생각의 도구들을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버지니아 울프의 <나만의 방>에서는 '여자가 글을 쓰려면 나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고 말한다.

꼭 좋은 집, 멋진 방이 아니어도 집 한 구석, 나만의 책상이 생긴다면 모든 일은 그곳에서 다시 비롯된다. 


정말로 재택근무를 하는 딸이 너무도 조용한 엄마를 둘러보러 왔다.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사라진다. 나는 왠지 당당해진 기분으로 노트북의 좌판을 경쾌하게 두드린다.

잠시 뒤, 딸이 소리친다.

"식사하세요!"


책상이 나에게 열어줄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까.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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