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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Jun 18. 2020

음악을 읽는다

위로가 필요할 때

책을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밑줄을 긋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이 너무 많다. 무희가 춤을 추듯 생각의 도구들은 발돋움하며 무대 위를 나른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다 잠시 멈춘 곳은 나의 심장, 노트에 무언가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형태의 생각들이 질서 없이 나를 지배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가듯 헝클어진 문장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의 보편성은 윤곽을 잡고, 원리를 터득하기 시작한다.


요리를 한다.


냉장고를 뒤지니 반쯤 썩어 있는 야채가 있다. 반복되는 욕망과 무관심 속에 그렇게 망가지고 있었다. 생명을 다한 부분을 잘라 낸다. 도마 위에 잘 다듬은 재료들을 가지런히 놓는다. 식빵 두 장을 토스트에 넣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계란을 터뜨린다. 자글자글 맛있는 소리를 낸다. 구워진 빵에 야채와 토마토, 사과, 치즈 그리고 계란을 얻는다. 치즈가 몸서리치며 따뜻한 계란의 품으로 파고든다. 샌드위치가 완성되었다.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로 가득 채워졌던 재료들은 시간이 흐른 뒤 소박한 모습으로 허기를 달래 준다.


커피를 내린다.


알맞은 온도의 물과 뱅글뱅글 돌려 가루가 된 원두가 기운을 못 이기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온 집안에 진한 향이 퍼진다. 입이 길게 삐져나온 주전자를 들고 까만 가루 위를 조심하며 붓는다. 뜨겁다고 아우성이다. 보글보글, 모락모락…. 투명한 유리잔에 하얗게 김이 서리며 또르륵 거 린다. 따뜻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모두가 깨어난다. 열린 창 문틈으로 정리 안된 침실 안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속으로 너의 향이 파고든다. 눈을 뜨게 하고, 식욕을 돋우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다. 나는 너에게 중독되었다.



한 강에 나갔다.


사람이 많다.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강가를 걷는다. 그저 걷는다. 혼자이거나 여럿이거나 걷는다. 가끔 속삭이기도  말이 없기도 하다. 음악을 듣기도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강물도 말이 없다. 문득 햇살에 물 비늘이 반짝인다. 사람은 긴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는 주인을 따라가기 바쁘다. 하늘엔 새가 날고, 꼭대기 나무 위에 지어진 둥지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해 보인다. 그저 걷다 보니 강물의 자유도 부럽고, 새들의 둥지도 질투 난다. 보기 좋게 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이름 모르는 나무는 날이 갈수록 풍성하고 멋스러워진다. 계절을 따라 살다 보니 저리 되었나 보다.

강 건너 도시가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하늘은 번뜩이듯 붉게 타 들어가더니 이내 시들해졌다.



음악을 읽는다.


세상 사이를 걷다 보면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그 사잇길은 그토록 비극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문득 소름 돋는 두려움을 느끼게 함은 내 안의 갈등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답을 찾기 어려움은 자꾸만 옆 길로 새어 버리는 욕심에 있다.

초조와 두려움은  음악을 들으면 해소된다.

무엇에 쫓기든 쫓는 자는 결국 나이다. 나만이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음악은 과속하지 않게 나의 허리를 감는다.

못 이기는 척 멈추면 세상은 참으로 살 만하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없다.

누누이 속닥이는데 말 귀를 못 알아듣는다.

음악이 오래된 책처럼 누렇게 익어 간다.


2020.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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