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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Feb 14. 2020

<기생충> 선, 냄새 그리고 무계획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 심폐소생술을 받은 느낌이다. 싱싱한 낭만적 들썩임으로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예술의 힘은 위대하다.

완성도 높은 예술이 시대정신을 반영할 때 그 힘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이다.

기생충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드러내기 거북한 진실을 해학과 풍자로 재치 있게 그려냈다.



왜 그들은 노동력 외에 생계수단을 갖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를 자청했을까


무산계급-그들은 정치, 사회, 문화적 권력을 가지지 못한 채 유산계급에 기생하여 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택(송강호 분) 가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가족 중심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곳에는 어떠한 분노나 욕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 나가며 운명처럼 삶을 받아들인다. 가족애로 넘쳐나는 그들은 단란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궁금증은 영화의 막바지를 향해 달리던 시점, 홍수로 체육관에서 밤을 보내게 된  기택의 대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버지, 계획이 뭐예요? ”

“계획? 음…. 무계획이 계획이야! 계획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거든 하지만 계획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실패할 일이 없어.”

이 대사에서 기택은 무산계급, 즉 자발적 프롤레타리아가 되기로 한 필연적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하지 않음으로 운명으로 받아들인 삶은 불안도 절망도 없는 체념의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계단을 넘어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난 정, 성취, 성과의 삶을 포기하고,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마음의 정체를 택한다. 더 이상 그들은 안달하지 않는 것이다.


선을 넘어 버린 냄새


그러한 기택을 분노케 하는 것은 냄새였다.

모범적 프롤레타리아가 된 듯한 기택은 냄새로 인한 구역의 설정에 극한 상황에서 이성을 잃게 된다.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매개로 선을 그은 부르주아(유산계급)에 칼을 꽂는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그 선택에 따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 무슨 선택을 하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 등이 있다. 이것을 충족시키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간 주권’이다. 시간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을 때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은 동등할 수 있다. 시간의 주권을 빼앗긴 기택은 냄새라는 분노의 결정체로 숨어있던 무의식의 그림자를 깨운다. 한없이 내려가는 계단과 같은 계급의 불평등은 위기의 상황에서 발작처럼 깨어난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선, 냄새, 계획이다.


아스라이 서 있는 경계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 단어들은 영화의 주축이 되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유산계급은 착하고, 순진하지만 ‘선’을 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이 정한 카테고리 안의 ‘선’은 노동자 계급을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취급하고, 권력의 노예로 삼는 하나의 징표이다. 같은 공간에서 그들의 노동력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지만 언제나 대체 가능한 존재이다. 삶의 곳곳, 시공간을 초월하여 선은 한번 그어지면 명확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Smell~~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는 영화 밖으로 '냄새'의 존재가 느껴질 정도로 마지막 순간까지 단어의 위력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근본적인 불변의 법칙으로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명품을 걸치더라도 내적으로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지위, 계통을 의미한다. '냄새'는 선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어 버린다. 추하고 불결하며,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냄새는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확실한 매체이다.

권력의 중요한 원천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믿음 아래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냄새'는 미추의 확실한 선을 그으며 살아 움직이는 그 무엇이 되어간다.


No Plan!!


영화의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나오는 단어가 '계획'이다.

'계획'은 인간을 들뜨게 한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계획이 뭐 에요?”

“계획은 절대로 계획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야! 무계획! No Plan! 계획을 하면 인생은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그래서 계획이 없어야 해. 계획이 없으니 잘못될 일도 없고, 계획이 없으니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지. 사람을 죽이든…. 나라를 팔아먹든…..”

기택의 대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고, 비극으로 치 닿을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갈망하게 되면 기대하게 되고 행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올인하게 된다. 그것이 실패했을 때 인간은 자신을 경멸하거나 분노를 외부로 표출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면 기택의 상태, 즉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발적 무산계급으로 ‘시간 주권’을 유산계급에게 넘겨주는 감정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영화는 선과 악의 구분도 없으며, 어떠한 충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를 던져 줄 뿐이다.

예술의 영역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구분된 해석과 느낌을 낳는다. 이 또한 얄팍한 ‘선’의 경계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환경은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 나아가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곳곳에 의도한 유머와 풍자는 영화를 한 결 리듬감 있게 만들고, 적당한 장면의 허를 찌르는 음악은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N극과 S극과 같은 극단의 두 가족 이야기는 나와 너의 이야기를 넘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별처럼 박혔다.



다음은 봉준호 감독의 대학시절, 교내 신문에 실린 만화이다.

 출처:연세춘추


그는 여전히 같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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