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이바시역에서 내려 걷다 보면 도톤보리 거리가 나온다.
일본은 세 번째. 대중교통을 이용한 자유여행은 처음이었다. 오사카의 밤은 화려했고, 수많은 인파 속에 다소 소란스러웠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상점과 음식점은 이방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도 되는 양 먹고, 마시고, 두 손 가득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분주히 오사카의 시간이 흘러갔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많은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 여행은 도쿄였다.
‘아트투어’라는 특정 제목을 갖고 일본의 문화, 예술, 건축을 공부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종류의 열등의식과 부러움을 일본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예술이란 놈을 품고 계속해서 알을 낳아 대는 그들의 문화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는 그들의 열정이 일본의 축축한 습기만큼 이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일본을 몰랐던 것이다.
세 번째, 오사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 일본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람들, 일본 사람을 보았다.
같은 동양이지만 너무도 다른 그들의 문화는 피부색이 하얗고 눈이 파란 서양인보다 더 큰 이질감이 느껴졌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만난 그들은 쓸쓸하고 어두워보였다. 아마도 무채색의 거리 패션 때문일까. 대부분 하얀 와이셔츠에 어두운 톤의 넥타이 그리고 검정 슈트. 거리는 경쾌한 여행자와는 다르게 회색의 무거움이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을 방어하는 어색한 예의, 좀처럼 웃지 않는 얼굴, 좀처럼 떠들지 않는 조용함, 한 줄로 앉아 등을 구부린 채 라면 먹는 사람들, 골목마다 늘어선 선술집.
이들도 고단하구나. 나도 모를 연민이 몰려왔다.
오사카의 화려한 거리는 그저 이방인을 위한 주인 없는 잔치였고, 그 가운데 겉도는 일본인은 또 다른 도시의 이방인이었다.
도시의 주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난해하고 가혹한 도시가 생성될 때부터 인간은 고독과 싸우고, 변두리로 내쫓기지 않으려 무한 경쟁을 하며 매일 밤 자신과 타협하고 내일을 반복한다. 이 도시 역시 수많은 그림자를 감추고 겉으론 웃고 있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장면을 C-print로 작업한 일본 작가의 작품이 떠오른다.
어쩜 이들은 치유되지 못한 채, 그때의 질긴 끈들을 누군가 대신 끊어 내길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고,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묘한 표정의 그들은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 공포 때문에 과하게 버둥거리고,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탁하여 몸집을 부풀린다.
작은 섬에 갇힌 이들이 선택한 삶의 방편이다.
벚꽃도 지고 오사카는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모습의 오사카를 담아낼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자꾸만 만들어 준다.
물이 익어 간다.
대기도 익어 간다.
더불어 나도 익어 간다.
그렇게 오사카의 봄은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찼다.
2018.5 오사카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