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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Feb 08. 2021

나는 슈퍼 호스트였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에어비앤비 01



여행은 현재에 무관심해지기 위해 미래로 도망치는 일종의 저항과 같은 행위이다. 공간을 이동함으로 골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그 시간, 그 장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물리적, 심리적 환경의 노출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그곳에 자신이 추구하는 특정 목표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여행이 된다.


손님이 되는 경험은 호사를 누리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현실의 나는 이야기의 주체로 주인공이 틀림없지만 다른 의미에서 호스트 즉,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일과 사람)에게 대접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여행은 그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와 지는 것이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받지 못한 서비스를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농담 같은 위로가 여행의 묘미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해 가을, 나는 친구를 따라 용평의 한 콘도에 갔다. 용평은 대학시절, 결혼을 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를 타러 가던 곳이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강원도를 좋아했다. 익숙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바다로 산으로 부모님은  삼 남매를 끌고 여행을 다니셨다. 나는 서해보다 바다색이 짙고 깊은 동해를 더 좋아했다. 도시를 떠나 살 수 없는 나였지만, 가끔 찾는 강원도의 공기는 자꾸만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용평에는 많은 숙박시설이 있다. 하지만 친구가 소유하고 있는 곳은 처음 가본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반하고 말았다. 자작나무로 둘러 쌓인 그곳은 산 중턱에 앉힌 작은 마을 같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2박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그곳에 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물건이 잘 나오지 않는 곳이었기에 이름만 올려놓은 채 겨울이 왔다.


서서히 사랑하는 마음도 식어가고, 과연 그런 곳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때 물건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도 친구의 바로 앞 집이!

콘도도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전망이 좋고 선호하는 동이 있는데 그곳이 마침 그런 로열동 맨 꼭대기 4층이었다.  친구는 1년 이상을 기다렸는데, 운이 좋다며 나보다 더 기뻐하였다. 시끄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발적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강원도 평창군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곳은 나름의 특별한 규칙이 있는데, 소유주는 365일 머물 수 있고 청소 서비스(침구정리와 수건, 비누제공 등)를 받을 수 있는 호텔과 콘도를 접목시킨 시스템이었다. 그 대신 관리비는 일 년에 두 차례에 걸쳐 내는데 일 년에 단 하루를 사용하더라도 지불해야 했다. 다소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친구는 매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비어 있을 때는 에어비앤비로 운영을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사실 그렇게 용감히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에어비앤비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도시를 떠나 도망칠 곳이 필요했고, 무언가를 해야 했으며, 밤새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했다.


1월 중순 넘어 그곳을 사용할 수 있었고, 나는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가구(침대, 소파, 식탁 등)는 구비가 되어 있었고, 가전제품(냉장고,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등)도 모두 있었다. 그 외의 물건은 아무거나 가져다 놓을 수 있기에  콘솔이나 의자 그리고 창고에 처박혀 있던 내 그림과 그릇을 한가득 차에 싣고 강원도로 달렸다.(그것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두 집 살림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나는 설레고 있었고, 에어비앤비에 쓰일 나의 집 이름과 소개의 글, 사진들도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 그때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경기장 근처의 숙소는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새로운 호텔과 숙박시설이 들어섰지만 작은 마을이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듯 싶었다. 내가 소유한 콘도는 방이 두 개, 화장실이 두 개 그리고 주방과 거실 그야말로 가족이나 친구 여럿이 머물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2018년 2월 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동계 패럴림픽 대회가 끝나는 3월 18일까지 나도 모르게 올림픽의 중심에 생애 첫 호스트가 되었다.


화장기 없이 조용하던 마을은 갑자기 활기를 띠고, 화려한 조명과 불꽃놀이로 소란스러워졌다. 없던 카페와 식당이 생기고, 선수촌 아파트도 완성되고 발코니에 걸어 놓은 각국의 국기는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은 정말, 참으로 멋졌다.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에 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횡계에서 용평으로 들어가는 길은 꽤 멀다. 선수들은 그곳을 뛰고, 걸으며 드나들었다. 선수들 뿐 아니라 올림픽 위원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평창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그렇게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평창에 입성하였다.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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