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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Feb 08. 2021

게스트와 호스트의 불화

평창 동계올림픽과 에어비앤비 02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가입을 한 후 숙소를 등록하고 간단한 인증절차를 밟으면 된다. 문제는 너무도 많은 숙소 중에 어떻게 하면 나의 숙소가 ‘여행자의 눈에 띄게 하는가’였다. 일단 다른 숙소들을 관찰했는데 슈퍼 호스트가 된 숙소에는 좋은 평판의 후기가 많았고, 게스트가 남긴 별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었다.


나는 다른 숙소와 차별화하기 위해 ‘테마가 있는 집‘을 생각했다. 음악과 미술, 독서 등 예술적 향기가 묻어나는 곳으로 공간을 채워 나갔다.

 

서울에서 평창을 오가며 짐을 나르는 육체의 수고로움이 참으로 많았지만, 나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또 중요한 것이 있는데, 집의 사진을 잘 찍어 올려야 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가격이면 예쁜 집을 선호한다.

마지막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때 평창의 숙소들 중에는 올림픽을 기회로 한몫 단단히 벌어보자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가족과 상의하여 적정한 가격을 정하였다.


숙소가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에 소개되자, 예약이 밀려왔다. 올림픽이라는 특수는 나를 손쉽게 호스트의 대열에 참여시켜 주었다. 개막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평창으로 몰려들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개막식 전 날 예행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했고, 그곳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큰 행사이기에  콘도 측에서도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멤버스 하우스(호텔의 컨시어지-Concierge)에는 통역을 도와주는 자원 봉사자가 있고, 콘도에서 경기장까지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사비나’, 그녀는 미국에서 온 첫 번째 손님이었다.


그녀는 늦은 밤 평창에 도착하였다.

인천공항에서 평창군 용평면까지는 퍼플 버스(Purple bus)-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항상 그렇게 불렀다- 를 타고 용평 리조트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5분 거리의 우리 속소까지 오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셔틀버스가 끊겼고, 그녀는 떨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용평까지는 잘 안내가 되어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도착시간이 늦어졌다. 서울에 있는 내가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콘도 측에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 손님이 도착했는데 셔틀버스가 끊겨서 숙소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으니, 픽업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느냐.”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회사 차로 손님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고, 그녀는 추위에 떤 지 40여 분 만에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자 인원은 한 명이고, 일박 만을 한다고 했다.

‘아마도 올림픽 관계자이거나 한국에 다른 일이 있어 평창을 바로 떠나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무사히 체크인을 하였고, 한시름 놓고 있는데 여러 장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인천공항에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왜 이렇게 날씨가 추운 것 인지!

셔틀버스는 왜 자주 다니지 않는 것인지!


서툰 호스트는 미안하다는 말을 수 없이 하면서 외국에서 올림픽을 보기 위해 온 손님에게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한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녀는 썰매(스켈레톤-머리를 앞으로 향한 채 엎드린 상태로 썰매를 타고, 트랙을 활주 하는 경기)를 보러 왔으며 내일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단 하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미국에서 여기까지?’

‘하루 만에 돌아간다고?’ ‘

'선수의 가족인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그녀가 무사히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잠잠했다.

‘썰매를 보고 저녁 비행기로 잘 가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콘도 컨시어지에서는 소란(셔틀버스가 늦게 와서 비행기 시간에 늦는다고)이 일어났고, 회사 직원들이 동원되어 그녀를 진정시키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간신히 태워 보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녀는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공항에서 평창까지 너무 멀고 교통이 안 좋다!

내가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아는가!

나는 얇은 코트 하나 만을 걸치고 왔다!

평창은 너무 춥다!(Freezing)

나는 얼어 죽을 뻔했다!(Almost die)

이것은 재난(Disaster)이다!!!’


Die! Disaster!


이 단어들이 머리를 한 대치고 달아났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미국에 돌아가면 후기에 강한 항의 글을 남기겠다고 했다.

 

나도 화가 났다.

그 멀리 미국에서 날아와 단 하나의 경기만을 보고, 하루 만에 돌아가는 것이 이상했다.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라면 개인의 취향이 아닌 일 때문에 왔거나, 가족 혹은 친구가 선수로 참여를 해 응원해 주러 왔을텐데, 올림픽 그것도 동계 올림픽에 오면서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와서 춥다고 아우성치는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멤버스 하우스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웠다 한다.(이것은 나중에 콘도 측과 나와의 불화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된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협박당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후기 창을 매일 실시간으로 검색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후기도 남기지 않았다.




여행자는 낯선 곳에 철저한 타인이 되어 그 땅을 밟게 된다. 호기심, 설렘과 같은 기대와 함께 불안 또한 존재한다. 흥분과 긴장이 팽팽히 공존하는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그곳을 신뢰해야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처음 가보는 나라를 여행사를 통해 가고자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회사를 통해 신뢰를 갖고, 여럿이 무리 지어 다님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마음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어쩜 그녀는 이 땅과 호스트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낯선 환경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의 땅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현지인을 불신하고, 환대받지 못했다 생각하며 상처투성이로 ‘나의 나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불안에 떨고 있는 여행자의 마음을 보듬고, 소외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허기와 결핍을 채워 주는 것 또한 호스트의 역할이라는 것을 ‘사비나’는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캐릭터의 여행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나는 떨고 있었다.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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