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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Feb 27. 2023

언체인드 멜로디, 수인의 노래 아니 해방의 노래

 혼자 방안에서 조용히 라디오를 들을 때였다. 감미로운 선율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언체인드 멜로디였다. 순간 대학시절 보았던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나오는 바로 그 영화.

 내가 이 노래의 제목을 알게 된 것은 그걸 통해서였다. 한참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는 익숙한 멜로디에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그건 당시 내가 꽤나 좋아했던 가수 박일준의 ‘오, 진아’와 같은 곡이었다. 순식간에 ‘오, 내 사랑 나의 진아’라며 흐느끼는 듯한 그의 음성이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목소리에 오버랩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난 그 노래가 번안곡임을 알았다. 노래의 원제목과 가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어서 그걸 알아내기까지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지금 와서야 그 과정을 깡그리 잊었지만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었을 때 그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걸 보면 당시 호기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렵사리 악보를 얻었지만 실망스럽게도 난 그곳에서 커다란 오류를 발견했다. 제목에 오타가 섞여있었던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국어 과목을 좋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맞춤법 실력이 남다름을 인정받고 있었기에 한글로 적힌 영어표기의 오타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유난히 남의 허물을 잘 꼬집는 오만에 가득 찬 자만심은 거기에 불을 지폈다. 하긴 그걸 찾기 위해 들인 나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으리라.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 가서까지 지키려는 영화의 내용으로 보나, 당신의 사랑이 내게 오기를 기원한다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보나, 멜로디라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언체인드가 아닌 언체인지드여야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런 걸 발견하겠냐는 심정으로 함께 있던 친구에게 제법 호기로운 목소리로 그 사실을 알렸던 기억도 뚜렷하다. 난 나의 말에 정당성을 더욱 부여하기 위해 나름의 어휘로 번역까지 서슴지 않으며 잘난 체를 이어갔다. 언체인지드 멜로디, 불변의 노래라는 제목이라면 영화와 썩 어울리지 않겠냐면서.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기타를 배우겠다며 팝송악보집을 구입해 이리저리 뒤적여 볼 때였다. 책 중간에 그 노래의 악보가 들어있었다. 거기엔 제목이 영문으로 표기되어있었다. 하지만 Unchanged Melody가 아닌 Unchained Melody였다. 이상하다 싶어 눈을 씻고 다시 보았지만 그건 분명 Unchained였다. 더군다나 악보 끄트머리에 붙은 노래에 대한 설명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책의 지은이는 이 노래의 제목이 ‘언체인드(The Unchained)’라는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유래했다는 말과 함께 ‘수인(囚人)의 노래’라는 우리 말 번역까지 덧붙여두었다. 오랜 기간 계속되었던 나의 ‘오만과 편견’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난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가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맞춤법이나 영어번역에 대한 언급을 삼간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의 일일 것이다.

 최근의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관계를 맺었던 한 사람으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경조사와 관련된 내용이라 그러려니 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화면을 넘겼는데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그의 프로필이 갑자기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한 마디 단어를 Unchanged Melody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오해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전의 수치심이 곱다시 되살아나면서 이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자체가 나의 또 다른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그는 노래제목이 아닌 자신만이 간직한 별도의 의미를 그 단어에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때서야 그 노래가 자의식에 빠진 나를 진정으로 해방시켜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인의 노래’보다 ‘해방의 노래’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여긴 것도 그래서였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런 수치스런 나의 과거가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간은 결코 공백을 허용하지 않기에 영원할 것 같던 나의 젊음도 어느새 다 지나가고 어느덧 은퇴의 삶을 살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까닭이다. 오늘따라 왠지 지난 세월을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영어의 몸으로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않았음에도 부와 명예라는 사슬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을 옭아맨 것이다.

 오늘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난 새로운 다짐을 한다. 이제야말로 오만과 편견으로부터도, 욕심으로부터도 진정 해방되겠노라고. 세월의 풍화작용은 이런 내 해방의 노래에 멋진 반주로 응답할 것이다. 불현듯 Unchanged Melody를 프로필 문구로 사용했던 그 지인에게 묻고 싶어진다. 혹시 나처럼 깊은 오해의 골짜기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만약 그렇다면 하루빨리 프로필을 고쳐 새로운 해방의 노래를 부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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