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투어

by 원광우

“이번 여행은 당신이 고마 다 결정하이소.”

아내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베트남 여행의 모든 준비를 그렇게 나에게 맡겨왔다. 무한신뢰의 배경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나의 해외출장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감옥에라도 갈라치면 경영위기니 경제회생이니 떠들어대며 퍼스트클래스 비행기 표를 내보이는 저 대기업의 총수들처럼 뻔질나게 해외를 드나들었던 건 아니다. 기껏해야 서너 번에 그것도 가까운 일본이며 중국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조차 아직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아내로서는 그마저 더없이 의지할만한 요소였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여행의 모든 경비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두 아이의 빈약한 통장에서 불거져 나온 것임을 모르지 않는 이상 경제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으니 더더욱 따지고 자시고 할 건더기조차 없었으리라. 어린 시절을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절약이 몸속 깊이 밴 나라는 것쯤이야 이미 지난 32년의 결혼생활을 통해 뼛속들이 체험하고도 남았을 터이니 말이다.

신혼여행조차 고향인근의 온천에서 하루를 보내는 걸로 만족해야했던 우리에게 베트남이란 그야말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나 나올 법한 땅이었다. 아는 지식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배운 이분법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이 아닌 뿔 달린 도깨비 모습의 악마집단 북괴를 우리가 마주하고 있듯, 베트남 역시 선량한 민간인의 탈을 쓴 악랄한 살인마 집단 베트콩과 마주한 나라였다. 미국을 영원한 우상으로 해바라기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 편이었다. 그래서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우린 학생들까지 강제 동원해 환송연을 베풀어가며 그들을 돕겠다고 파병했고 그 결과 라이따이한들을 양산하는 개가까지 올렸던 그런 나라였다. 그 후 철석같이 믿었던 미국이 ‘외교에 의리 없다.’ 라는 명제를 참으로 인정하면서, 베트콩은 보란 듯이 우리로 하여금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베트콩의 승리는 적어도 우리 편이 정의가 아니던지, 정의가 이기지 못했던지, 둘 중 하나에 해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50년 가까이 잊혔던 나라였다. 그 나라가 바로 우리가 함께 하는 첫 해외 여행지였다.

늘 그렇듯 ‘처음’이란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다소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엇비슷한 크기로 유발해 걱정과 기대의 시소를 수평으로 유지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우리의 ‘처음’은 확연하게 상황이 달랐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만나면서 그 ‘처음’은 설렘의 크기를 압도적으로 키웠고 걱정을 궤멸시킴과 아울러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그런 일방적인 ‘처음’을 경험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덕분에 한 달여 전부터 아내의 얼굴에서는 피부의 결정이 모두 사라져 들뜬 마음이 투명하게 비쳐났고 그걸 바라보는 난 아내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무감으로 흥분을 애써 자제해야했다.

“그래, 내만 믿어라. 내가 누고? 부산 짠돌이 아이가. 함 보래이. 짠내투어, 그거는 아무 꺼도 아일끼구마는.”

그 날 이후 나의 인터넷 서핑은 집요하면서도 치밀했다. 검색어는 저렴, 할인, 최저가 등으로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싸다는 낌새만 느껴지면 여행사 사이트는 물론 유튜브며 개인블로그에 각종 SNS 공간까지 넘나들기를 서슴지 않았다. 신문광고들을 빠짐없이 스크랩하는가 하면 여행이란 단어가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스팸성 문자들까지 수집하기를 마다않았다. 모은 자료들은 여행상품별로 비교표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러기를 수 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은 보기 좋게 나를 배신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공들여 발췌 가공한 데이터들은 불행하게도 별 쓸모가 없었다. 우리가 선택한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다 고만고만했다. 도표의 세로축을 채우던 여행사별 프로그램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가짓수만 많았을 뿐, 가로축을 채우는 여행지, 호텔등급, 항공편, 제공되는 서비스 등과 같은 항목별로 차이가 미미했다. 결국 여행사의 지명도와 가격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난 아내를 불러 그동안의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마무리는 역시 내 수고에 대한 생색이었다.

“여보 이리 와봐라. 내가 이걸로 골랐거등. 이기 다른 거보다 1인당 10만 원이나 헐타 아이가? 그라모 둘이니까 20만 원이나 벌었다는 말이제.”

“그라이까 내가 당신한테 매낀 거 아임미까?”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여행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에서였을까? 아내는 그동안의 내 공부에 대한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공부와 아부는 둘 다 평소에 꾸준히 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공부도 아내의 아부도 모두 해당사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난 굳이 그 사실을 모른 체 눈감았다. 그저 포장지를 마구 덧씌워 아부를 칭찬으로 둔갑시킨 후 로젠탈효과가 발현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베트남의 휴양도시 다낭의 날씨는 쾌청했고, 호이안의 밤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우리 부부는 로맨스그레이를 체험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뜨거운 태양도 무더운 날씨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땀을 흘려도, 오랫동안 걸어 발이 부르터도, 여행을 마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에서 한 잔의 맥주를 마시다보면 피곤은 씻은 듯이 사라지곤 했다.

행복감은 시계바늘을 한층 바쁘게 몰아세웠다. 바늘은 쫓기듯 발걸음을 잽싸게 놀렸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제 남은 여행지는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라는 우스갯소리의 발원지 후에뿐이었다. 후회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 탓이었을까? 기대이상으로 향유한 행복감은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불안감을 조장했다. 사람이란 불완전한 존재여서 뚜렷한 이유 없이 행운이 겹쳐지면 누리려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이 금방 사라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기 마련이다.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도 그래서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역사도시 후에에 가까워지면서 불길한 예감이 급속도로 부피를 키워갔다.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는데……. 설마 그럴 리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 않던가. 아냐, 그건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일 뿐이야. 나는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근심과 안심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소심한 성격에서 비롯된 나의 이런 행위에 신은 동정심을 발휘했다. 그는 공명정대의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길사(吉事)에 이어 흉사(凶事)를 내리면서도 막무가내로 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내가 대처할 수 있도록 예고하는 방법을 썼다. 예고는 전조의 형태로 나타났다. 안타까웠던 건 그걸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시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우리가 방문한 식당은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이었다. 뜰에는 야자수가 군락을 이루며 이열 종대로 늘어서있었고, 기지개를 켜는 가지 아래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다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물레방아 도는 작은 연못 속에서는 덩치 큰 잉어들이 느릿느릿 물살을 갈랐고, 표면에서는 드문드문 물안개가 피워 올랐다. 이따금 논(Non:베트남식 삿갓모자)을 쓴 아리따운 여성이 마당을 분주히 가로지르는가 하면, 커다란 원두막을 연상케 하는 건물 내부로는 흘린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덴동산이 따로 없었다. 그걸 설명이라도 하듯 바나나며 갖가지 열대과일들이 낙원의 한쪽 공간에서 그 옛날 선악과가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듯 그 후손들을 유혹했다.

일행이 들어서기 무섭게 가이드는 노련한 손놀림을 더해가며 각자의 자리를 배치했다. 며칠 사이에 가족별 구성원들을 훤히 꿴 그는 같은 가족끼리 모여 식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거기에 힘입어 나와 아내는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우리 앞에는 친구 사이의 50대 아주머니 두 명이 자리했다. 몸집이 풍성한 게 두 사람 모두 먹성이 남달라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미각의 반이 시각에서 비롯된다는 속설을 입증하듯 보기만 해도 맛깔스런 갖가지 음식들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져 우리의 군침을 돋우었다. 고이꾸온(생야채와 익힌 새우 등을 넣고 라이스페이퍼로 싸먹는 음식. 월남 쌈이라고도 함.)이라는 베트남 전통음식이었다. 다이어트의 생활화를 무슨 시위대의 구호삼아 매일같이 외쳐대던 아내도 그걸 보는 순간 오늘은 확성기를 꺼버렸다. 현재 상황이 시위를 통해 얻으려는 목적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판단의 중심에 라이스페이퍼가 위치한 게 틀림없었다. 운동량을 늘려 칼로리 소모를 키우기보다 저칼로리 식단의 습관화를 다이어트 철학으로 고집스레 내세운 아내에게, 그건 아무리 먹어도 영양소로 분해되어 살과 피가 되는 음식이 아니라 그냥 장기를 통과해 모조리 배출되는 마법의 음식으로 소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에 견줄만했다. 우리 가족의 외식메뉴 일 순위가 베트남 샤브샤브가 된 것도 결코 그와 무관하지 않다.

행여 앞자리 아주머니들에게 선수를 빼앗길세라 황급히 쌀로 만든 화선지를 펼친 후 젓가락으로 형형색색의 야채들을 집어가며 채색을 시작하려는데 돌연 아내가 제지하고 나섰다.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에는 테이블 위 화려한 색의 향연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잠시만요. 인증샷 찍어야지예.”

“맞제? 당신 아이었으몬 또 이자뿔 뻔했네. 간 데하고 묵은 거 하고 빼묵지 말고 찍어야지 하멘서도 맨날 까묵는 걸 보몬 억시기 배가 고팠등가보다 그쟈?”

우리가 그렇게 사진을 찍으려는 이유는 명백했다. 추억을 되새긴다는 의미야 진부해진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목적은 여행경비를 제공한 아이들에게 보람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돈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자니 우리의 이목구비가 체험한 여행의 기쁨과 즐거움을 실시간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고 가장 뛰어난 보고수단으로 사진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다음번에도 또 해외여행을 보내달라는 부탁성의 아첨이 포함되어있었다. 우리의 용의주도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찍은 사진의 분실이나 훼손에 대한 대비도 완벽했다. 우린 똑같은 장면이어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따로따로 사진을 찍었다. 아내의 사진이 원본이라면 나의 것은 백업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틈은 엉뚱한 곳에서 벌어져있었다. 아내의 뒤를 이어 음식사진을 찍으려던 그때 내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 핸드폰 어데 갔지? 여보, 혹시 내 폰 몬 봤나?”

“지금 들고 있는 그 손가방 안에 없어예?”

“없으이까 묻는 거 아이가.”

“혹시 호텔에 나뚜고 온 거 아임미까? 아, 그건 아이네예. 아까 버스 안에서 어젯밤에 찍은 사진을 보여줏으이까예. 그라몬 버스에 두고 내맀겠지예.”

“아이다. 버스에 둘 데가 어디 있다꼬? 자주 쓰는 물건은 전부 이 가방 안에 넣어 댕기는데 핸드폰만 없능기라. 그거 이자뿌몬 큰일인데. 일단은 당신 혼자 묵고 있어라. 나는 버스에 한 번 갔다 오꾸마.”

“그라이소.”

버스에 둔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아내의 예측이 맞아떨어지길 바라며 난 차마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억지로 의자에서 분리했다. 먹는 행위가 삶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인 나로서는 목전에서 벌어진 음식과의 이별이 삶을 포기하는 행위에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던 건 음식을 공유해야하는 앞자리 아주머니들의 음식을 향한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었다. 나의 심정을 이해한 듯 아내는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폰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이 이제는 삶의 필요조건이 되어 다급했다.

문명의 이기는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고통을 가하는 흉기로 변해있었다. 이대로 핸드폰을 찾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감내해야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공인인증서와 모바일인증서, 모바일신용카드, 지역화폐를 포함한 각종 페이, SNS에 녹아있는 개인정보들. 엘리트 의식을 심어주던 그것들은 부메랑이 되어 시급한 뒤처리를 요구할 것이 자명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경제적 부담 역시 만만찮았다. 요즘 핸드폰이라는 게 어디 한두 푼 하는가. 지금의 핸드폰 할부금조차 아직 1년 이상 남아있지 않던가. 제발 그 모든 일들이 기우에 그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걱정을 한다고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안심하는 순간 불행은 싹을 틔우기 마련이라는 사실 또한 상기하며 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버스는 문이 잠겨있었다. 운전수도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면 패키지여행의 모든 것은 가이드로 통하는 법, 난 식당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며 지명수배자 전단지에 있던 운전수의 사진을 가이드의 것으로 교체했다. 위치추적이라는 최신기술을 적용하지 않고도 검거는 쉽게 이루어졌다. 여행객의 편의를 돌보아야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발을 식당에 꽁꽁 묶어둔 탓이었다. 만남이 이루어진 순간 난 추적자에서 청탁자로 신속하게 신분세탁을 했다. 나에게 닥친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자 그는 곧바로 운전수와 통화를 시도했다.

어린 시절 동네의 한 공터 임시천막 아래서 벌어지던 신흥종교의 부흥회가 재현되고 있었다. 당시 현란한 몸짓과 함께 광신도들이 쏟아내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의 어조와 억양이 가이드의 입을 통해 똑같이 새어나왔다. 베트남어에 독특하게 존재한다는 여섯 가지의 성조는 그렇게 말과 소리의 경계를 마구 허물어버렸다. 한 차례 방언의 폭풍이 지나가자 가이드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운전수가 지금 식사 중이라네요. 어차피 버스 문을 잠가두었으니 식사를 마치고 나중에 버스로 돌아가 확인을 하시죠.”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 한들 식사하는 운전수를 나 좋자고 도중에 불러내는 파렴치를 범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난 아내가 있는 식탁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헛수고도 결과가 조금 좋지 않을 뿐 수고의 한 가지이며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때부터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나의 성격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를 충실하게 지탱해왔던 식욕이라는 본능도 졸지에 사라져버렸다. 고이꾸온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아내의 걱정스런 눈길이 종종 포착되었지만 그조차 오랜 시간 유지되지 않은 채 아내는 저 나름의 다이어트 철학을 고수했다. 유일한 특효약이 시간의 경과임을, 오랜 동거를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내는 아내대로 또 다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여행에 쏟은 비용이 얼마인데, 모처럼 찾아온 식도락의 기회를 앞좌석에 앉은 글래머 아줌마들에게 깡그리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둘 중 한 명이나마 먹을 건 먹어야 한다는 가족으로서 책임져야하는 일종의 연대의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난 잘 차려진 밥상을 걷어찬 꼴이 되고 말았고 그런 상태로 식사는 끝이 났다.

버스로 돌아와 두고 내렸던 백팩을 서캐 훑듯 뒤졌지만 핸드폰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했다. 가이드는 다음 여행지 카이딘 왕릉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의 단세포적 사고활동은 핸드폰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기를 쓰겠다며 관광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메모를 게을리 않던 일은 어느새 아내의 몫이 되어있었다. 메모를 끝낸 아내가 노트를 접어 내 백팩에 다시 꽂으려 할 때였다.

“이거 당신 핸드폰 아임미까?”

“어? 맞네. 그기 거어 들어있었등가베.”

생각지도 못했고 찾으려하지도 않았던 그곳, 백팩의 옆면에 붙은 조그만 포켓에 핸드폰은 들어있었다. 고구마를 먹고 꽉 막혔던 속이 사이다 한 모금에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사이다의 부산물인 트림으로 뱃속을 가득 채우던 가스가 제거되자 공복감이 확 밀려왔다. 조금 전의 상차림이 머릿속에서 최신 나노셀 TV의 화질로 그려지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가까스로 공복감을 다스려가는 내 귓전으로 아내의 혼잣말이 밀려들었다.

“이거 우째 조짐이 영 안 좋크마는.”

표정에는 비웃음과 실소가 정확히 오대오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행의 예고편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왕릉을 관람할 때의 주의사항이 이어졌다. 가이드는 관람하는 경로를 포함해 관람 후의 집결지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특히 집결지를 설명할 때는 이탈자가 생길까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손가락으로 그 지점을 일일이 가리켜가며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그가 이렇게 귀찮을 정도로 미리 안내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베트남은 자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관광지 내부에서만큼은 외국인 가이드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인을 가이드로 활용하라는 의미다. 우리의 여행프로그램도 다를 바 없어 왕릉 안에서는 그다지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베트남여인이 인솔을 떠맡았던 것이다.

왕릉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본 아내와 내가 입구 근처로 되돌아온 것은 30분쯤 후였다. 50여 미터 아래의 집결지에 베트남 가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난 그녀를 가리키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가이드 저 보이제? 옆에 아무도 없능 거 보이까 아직 아무도 안 내리왔능갑다 그쟈?”

“그렀네예. 이럴 줄 알았으몬 괜히 땀 뻘뻘 흘리가멘서 내리왔다 아임미까?”

아내의 목소리에서 더위가 아이스크림 녹듯 끈적끈적 흘러내렸다.

“아이고 더버라. 우리 맥주라도 한 잔 하까? 저거 점빵 아이가? 저어 가몬 맥주도 팔겠제?”

복달임의 희생양이 될까봐 개들이 꼬리를 내릴 법한 더위였다. 시원한 맥주야말로 무더위를 식혀줄 신비의 묘약이었다. 평소에도 맥주를 생명수 취급하던 우리 부부였으니 오죽 할까? 더구나 오늘은 그놈의 핸드폰이 위장으로 하여금 풍요속의 빈곤을 몸소 체험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내 배는 입구의 바리케이드를 모두 제거한 상태였다. 덩달아 목구멍은 입을 통과한 음식물이라면 무조건 프리패스를 발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여행에 앞서 아무리 스크루우지나 샤일록을 추종했기로서니 이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그건 소확행(小確幸) 포기를 넘어서 죄악을 저지르는 행위였다.

“그라입시다. 다 묵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예.”

부창부수(夫唱婦隨)였다. 나는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싸구려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으레 싸구려끼리는 잘 통하기 마련이다. 상점주인의 손가락이 속을 훤히 드러낸 냉장고로 향했다. 그 안에는 차가운 물방울을 소름처럼 돋아낸 맥주 캔이 가득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도리임을 모르지 않던 우리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비에레 라루에를 한 캔씩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간이 의자에 앉아 서로 캔을 부딪쳐가며 ‘못, 하이, 바, 요!’(‘하나, 둘, 셋, 마시자’라는 뜻의 베트남 건배사)를 외쳤다.

“나는 마아 맥주 때메라도 베트남에 살고 싶다 아이가. 한 캔에 500원이몬 얼마나 헐노?”

“맞지예? 우리도 물가가 이래 싸모 얼마나 조켔심미까?”

알코올이 아니라 싸고 시원함으로 취기가 돌았다. 취기는 쾌락의 욕구를 가일층 충동질했다.

“마신 김에 한 캔 더 할래? 어떻노?”

“어데예? 인자 고마 가입시다.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지 모른다 아임미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아내의 말을, 시간의 절약을 위해서 내비의 말을, 실수의 방지를 위해서 캐디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건 이 시대의 금언이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조차 아테나를 낳은 메티스의 조언을 쫓아 크로노스가 삼킨 형제들을 죄다 구해내지 않았던가. 나는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욕망의 싹을 잘라냈다.

“그라자. 우리 때메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맹글 수는 없제.”

상점을 나오면서 집결지 쪽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베트남 가이드는 여전히 망부석이 되어있었다. 나는 안심하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화장실을 찾았다. 제로섬의 법칙을 증명하듯 마신 맥주의 양과 조금도 차이나지 않는 액체가 나의 몸을 빠져나갔다. 한결 가벼워진 몸은 기분마저 상쾌하게 해주었다.

아내와 함께 집결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웬만하면 구경을 다 마쳤을 시간이지만 일행이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오매불망 기다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망부석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하게 싸한 기운이 주변을 휩싸고 들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맥주를 마신 시간이라 해봐야 불과 10여분에 지나지 않았고 망부석 역시 증발된 것이 아니라 잠시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사람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리라 확신했다. 반면 아내의 얼굴에는 수심이 짙게 서려갔다.

“설마 모두들 다 내리와가꼬 그냥 가뿐 거는 아이겠지예?”

“무신 소리 하노? 쪼매 전까지 여어 베트남 가이드 서 있능 거 몬 봤나? 아직 사람들이 내리오지 않았구마는.”

내가 자신감을 내보인 배경에는 또 다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베트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이용한 여행사는 국내에서 브랜드인지도가 남다른 곳이었다. 인터넷상의 이용후기들도 혹평 아닌 호평일색이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라 할 수 있는 그 여행사가 여행 도중 고객을 내팽개치다니. 만약 그런 불상사의 발생확률을 여행횟수별로 무한급수화한다면 그 값은 분명 제로로 수렴할 것이 뻔했다. 이런 나의 수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설득에도 아내는 특유의 육감으로 불안에 떠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있는 데로 함 가 보입시다. 모두 그으서 기다리고 있을지 우째 암미까?”

“그렀네. 와 그 생각을 못했을꼬. 버스 마이 서있는 저쯤 어데서 아까 우리가 내맀제? 그란데 당신은 버스 번호 기억하나?”

“번호는 모르는데예 보몬 금방 알아예. 빨간색인데다가 여행사 이름하고 로고가 크다랗게 박히 있었거등예.”

우리는 집결장소를 떠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윌리추적대로 변신했다. 넓은 주차장은 마틴 핸드포드의 책이 되었고, 버스들은 윌리를 흉내 낸 친구들이 되었으며, 우리 여행사의 로고는 윌리의 줄무늬 옷이 되었다. 윌리의 인상이라고 전혀 기억하는 것이 없는 나였지만 부지런을 떠는 아내 옆에서 마냥 빈둥거릴 수는 없었다. 그저 꽁무니만 쫓으며 찾는 시늉 내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했던 건 지난날의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면 나에 대한 아내의 혹독한 평가가 뒤따를 게 분명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런 개고생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만, 만에 하나 불행한 사태로 결말이 난다면 나의 비협조는 화산폭발의 근원인 마그마가 될 터였다.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내가 온갖 체내의 육수를 쏟아가며 버스를 찾는 동안 당신은 대체 뭘 했느냐? 이래서 남편이라고 믿고 같이 여행을 다니겠느냐? 혹시라도 이런 말이 아내의 입에서 새어나와 아이들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이후 모든 여행의 대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이 삭제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나의 윌리 찾기는 그때를 대비한 일종의 컨틴전시플랜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서 버스를 찾겠다는 목적의식은 유사했지만 적극성의 측면에서는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런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더욱 초조해했다. 그와 달리 난 변함없이 평정상태를 유지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는 우리가 제일 먼저 내려왔으며 다른 사람들은 아직 내려오지도 않았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했다. 없어진 버스조차 후진국이니만큼 사람들이 관광하는 시간을 이용해 잠깐 동안 다른 돈벌이를 하러 간 것이라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걱정하지 말그라. 우리 나뚜고 지그가 어데 가겠노? 그라고 인원점검을 하고나서 출발하는 기 기본 아이가. 지그끼리만 갈 일은 절대로 없다, 마아.”

베트남의 무더위 속에서도 시간은 느려지거나 쉬어가는 법이 없었다. 또 다시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국제미아가 될 일은 절대 없다며 완벽하게 무장되어있던 나의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낱같은 금은 어느새 틈새로 발전했고 그 틈새로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아내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었다.

“여보, 가이드한테 전화라도 한번 해보이소. 시간이 이래 지났는데도 아무도 안 오는 걸 봉께 아무래도 무신 탈이 난 거 같심미더.”

“그러체? 그란데 우짜노? 가이드 전화번호를 모른다 아이가.”

어디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난 가이드의 전화번호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가이드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도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상한 건 가이드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전화비 때문이었다. 만약 가이드의 전화번호를 알았다면 전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베트남 땅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전화는 국제전화에 해당되었으며, 그 비용은 온전히 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국제전화,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고 계획했던 경비절약의 최대 적이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문제란 게 언젠가는 해결되기 마련인 바, 그것도 일시적인 고통으로 치부한다면 뭐 이겨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마침내 여행사의 버스가 우리만 남겨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립은 언제나 자립을 요구하는 법,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낭의 호텔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구멍도 나서서 찾지 않는 이상 절대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난 솟아날 구멍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주변을 오가며 발품을 팔았다.

멀리서 ⓘ표지판이 보였다. 순간 두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부피를 키웠다. 말과 행동의 비율이 1대9, 아니 0.1대 9.9만 되어도 소통이 가능한 상점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적어도 행동 대비 말의 비율이 더 커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이때처럼 절실하게 체험한 적은 내 인생에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아내의 등 뒤로 숨어버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아직도 함께 살아가야 할 세월이 아득한데 두고두고 오늘 일에 덜미를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아내의 실력이 출중하다면야 굴종의 삶도 감내할 수 있겠지만 그녀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겨우 문맹의 수준을 넘어설 뿐이었다. 나는 안내소 직원을 향해 가진 용기를 다 냈다.

“다낭, 다낭. 하우 투 고? 어찌 가냐고?”

“택시, 오버 데어.”

“노, 노. 택시 말고 버스, 버스.”

내 말에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붉게 타올랐다.

“무슨 소리 함미까? 택시를 타야제, 길도 모르는데 버스를 타고 우째 갈라꼬 그람미까?”

“뭐라카노? 여어서 다낭까지 120킬로미터나 된다는데 택시는 엄청 비쌀 거 아이가. 쪼매 힘들다캐도 시외버스 있을 낀데 그거 타고 가몬 되제.”

내 말을 알아들은 안내원은 지도를 꺼내더니 볼펜으로 여기저기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댔다. 모르긴 해도 그 점들이 버스를 타고 간다면 거쳐야하는 경유지들이리라. 그의 말도 해독이 어려웠지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여정은 흡사 거미줄을 연상시켰다. 거미줄에 걸린 채 죽을 날을 받아놓은 곤충처럼 몸에서 힘이 쑥 빠져나갔다. 아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내의 미간은 잔뜩 좁아진 채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두 주먹은 불끈 쥐어져있었다. 두 눈에서 발산되는 레이저광선에 소름이 확 끼치면서 몸이 쪼그라들었다. 아차 싶었다.

“버스는 암만 해도 함들겠제? 좀 비싸도 고마 택시 타까?”

속이 쓰렸지만 난 한 발 물러서며 아내의 얼굴 위로 다림질을 시도했다. 다리미의 성능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택시를 찾아 발길을 돌리면서도 난 마음을 졸여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운전수를 한 명 만났다.

“다낭, 다낭. 하우 마치?”

“포티파이브 달라. 오케이?”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족히 되는 거리임에도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내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공교롭게도 그때 내 옆에 베트남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서 묵는지 등을 물어왔다. 탁월한 보디랭귀지 실력을 선보인 결과 난 그가 베트남 관광객을 이끌고 온 가이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디어 하나가 번개처럼 머릿속으로 내려 꽂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헤이, 유어 버스 고 다낭? 그라몬 우리 두 사람 좀 데불고 가주라. 테이크 어스 투 다낭. 오케이?”

잘 하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다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도 같았다. 그는 다낭으로 가긴 하지만 이제 막 도착한 터라 관광이 끝난 후라야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노 프라브럼. 위 웨이트. 공짠데 멫 시간인들 몬 기다릴까.”

아내의 표정이 다시 붉으락푸르락했다.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민주주의란 게 그런 것이 아니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뿐더러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느냐 말이다. 더구나 위대한 리더가 되려면 그런 희생에 이따금씩 과감하게 눈을 감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난 민주사회의 위대한 리더를 꿈꾸며 구태여 아내를 외면했다.

그는 관광객들에게 물어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한 사람을 동반하고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의 대답은 잠시나마 가졌던 나의 기대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여유좌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천금의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난 매달리다시피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

“자리가 없다꼬? 노 프라브럼. 위 고 스탠드 업, 고마 태워주기만 한다몬 우린 서서 가도 된다카이. 프리즈.”

동정심을 유발해서라도 버스를 타겠다고 온갖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영어단어를 길게 끌어 발음하는 사이, 아내의 눈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언젠가 밤늦은 시각 잔뜩 술에 취해 귀가했을 때 귀를 찢는 듯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기 직전의 그 표정이었다. 다행히 고함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리하기 그지없는 나의 부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마이 있어봐라. 한국에 있는 여행사로 연락 함 해봐야겠데이. 어차피 포켓와이파이 빌리왔으이까 휴대폰 데이터는 공짜 아이가. 우리 전화번호를 문자로 그쪽에 보내가꼬 가이드가 우리한테 연락하도록 하몬 안 되겠나?”

발달한 잔머리가 토해낸 기발한 생각이 아내의 기대치를 급상승시켰다.

“그라몬 퍼뜩 문자 보내보이소.”

그러나 여건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베트남의 열악한 IT환경은 몇 자 안되는 문자조차 송신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구했고, 가까스로 날아간 문자는 한국의 여행사 직원이 퇴근을 한 탓인지 계속 미수신 상태로 남아있었다. 곁에서 붕어처럼 동그란 눈알을 말똥말똥 굴리던 택시운전수는 모처럼의 장거리 손님을 놓칠세라 다낭 안 갈 거냐고 계속 보채어왔다. 아내 역시 마음이 급해져 나를 부추겨댔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아임미까? 마아 택시타고 가입시다. 45달라몬 얼마나 헐씸미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택시비로 45달러나 되는 외화를 그냥 낭비하기에는 내 애국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어느 천지에 에누리 없는 거래가 존재한단 말인가.

“투 익스펜시브. 니 외국인이라꼬 바가지 씌우는 거 아이가? 서티 달러. 오케이?”

“노, 포티파이브 달라.”

아무리 가격을 후려쳤다손 치더라도 흥정은 하겠거니 생각했지만 택시운전수는 단호하게 돌아섰다. 난 머쓱해지고 말았다.

“달라는 대로 그냥 주삐지 그거를 또 깎자꼬 덤빔미까? 아무리 싼 기 좋다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야지예. 인자 우짤낌미까?”

아내의 높아진 목소리는 분노의 정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에 다름없었다.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질 판이었다. 황혼이혼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옐로카드가 눈앞에서 불쑥 솟구쳐 올랐다. 레드카드를 피하는 방법은 택시운전수를 다시 부르는 길뿐이었다.

“헤이. 여어 보라꼬. 하우 어바웃 포티 달러?”

곧 죽어도 달라는 돈을 다 줄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개입해있었다. 기가 차는지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팔을 끌었다. 철부지들이 떼를 쓸 때의 천진난만한 표정 또한 곁들였다. 작전은 주효했다. 그는 못 이기겠다는 듯 우리를 택시에 태웠다.

30분쯤이나 달렸을까? 한국의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가이드의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내 전화번호를 가이드에게 알렸다는 소식 역시 행을 바꾸어가며 적혀있었다. 꽤 값진 내용이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음에도 내가 그 문자에 값어치를 부여한 건 가이드의 전화번호 때문이 아니라 가이드가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전화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전화를 걸어올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내가 국제전화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었다. 역시 유명한 여행사는 직원의 센스도 각별한 법이었다. 고객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여행사에 대한 내 신뢰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의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또 다시 이 여행사를 선택할 수도 있으리라. 이런 나의 깊은 생각과 달리 아내는 다행이다 싶었던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재촉했다.

“가이드한테 얼릉 전화 해보이소. 우찌 된 건지, 그라고 앞으로 우짜몬 되는지도 물어보고요.”

“뭐할라꼬 내가 전화하노? 그것도 다 돈 아이가? 여행사 직원이 내 전화번호 알리주따 하이까 지가 내한테 전화하겠지.”

할 말을 잊은 듯 아내가 혀를 차는 사이 예상한 대로 내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막 전화를 받으려는 찰나였다. 또 하나의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해외에서는 전화를 받는 사람 역시 국제통화료를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뭐함미까 전화 안 받고? 와 이라노 이 사람이?”

아내는 급한 마음에 내 허리께를 팔꿈치로 쳐댔지만 나는 냉철한 이성을 잃지 않았다. 전화기는 좀체 멈추지 않는 간질환자의 발작처럼 끈질기게 떨어댔다. 그 어떤 발악도 대꾸하지 않으면 제풀에 나동그라지기 마련이다. 전화기는 어릴 때부터 내로라하는 고집으로 부모님의 속을 꽤나 썩였던 나를 끝내 이기지 못한 채 초죽음이 되어 쓰러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운전수를 향해 전화기를 들이밀었다.

“헤이 드라이버. 디스 넘버, 유 콜. 그 다음에 체인지, 체인지. 니 폰으로 전화 걸어서 내 바꿔 달라꼬, 유 노우?”

나의 수훈에 힘입어 콩글리쉬는 만국공통어로 승격되었다. 운전수는 차를 도로의 한쪽 편에 세운 후 내가 건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가이드가 전화를 받았는지 그가 전화기를 내게 넘겼다. 비로소 무제한 통화요금제가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가이드는 우리 두 사람이 버스를 안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버스를 돌려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우린 에로스의 서로 다른 화살을 맞은 아폴론과 다프네만큼이나 엇갈린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가이드의 사과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운명을 뒤집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있었다. 우리의 해후는 다낭의 호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난 이미 가이드를 완전히 용서한 뒤였다. 그건 내 천성이 관대해서가 아니라 택시비를 자신이 지불하겠다는 그의 말에 불편했던 모든 감정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리면서 까무룩하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아련하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하던 소리는 달팽이관이 활성화되면서 점점 또렷해졌지만 의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잘못을 저지른 학생과 그를 꾸짖는 선생님의 대화 같은 음색만 뚜렷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되지 않았다. 아내의 손가락이 왼쪽 어깨주변을 눌러대는 바람에 눈이 떠졌다.

차창을 내린 운전수가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바깥을 향해 무언가를 사정하고 있었다. 상대는 새카만 선글라스를 쓴 베트남 경찰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속도위반 단속에 걸렸음을 알아차렸다. 왕릉에서 관광버스를 얻어 타기 위해 내가 짓던 온갖 아양이 운전수의 얼굴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생활수준에 비해 이곳의 속도위반 범칙금이 엄청나게 높다더니 그 말이 결코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 사정했음에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던지 운전수는 체념한 표정으로 다시 차창을 올리며 핸들을 잡았다. 한동안 넋두리와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난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뗐다. 과속딱지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걱정과 달리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일언반구 범칙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왠지 모르게 많이 무거워져있었다. 폭력투쟁보다 비폭력투쟁이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지듯 말로 표현하는 행위보다 무언의 행위가 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 것일까? 도도하기만 하던 까만 선글라스와 비굴하기 이를 데 없던 운전수가 서로 대비되며 계속 가슴 한구석을 짓눌렀다. 한시라도 빨리 운전수를 피해 도망치고 싶었다. 문제는 택시비였다. 내 돈으로 지불한 후 가이드에게 되받을 수야 있겠지만 그럴 경우 가이드와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었다. 기껏 위기를 잘 헤쳐 왔는데 택시비를 두고 많으니 적으니 따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볼모로 남겨두고 호텔 로비로 뛰어들어 미리 기다리던 가이드를 데리고 택시로 돌아왔다. 가이드가 운전수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걸 기회삼아 나는 택시비의 지불여부와 상관없이 아내의 손을 잡고 냅다 도망치듯 택시로부터 멀어져갔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호텔로비에서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나를 한쪽 구석으로 끌었다.

“이것 받으세요. 50달러입니다.”

“와 이람미까? 어제 택시비는 다 받았다 아임미까? 일부러 그란 것도 아인데 이라몬 곤란함미다.”

고생시킨 대가로 지불하는 일종의 위자료나 위로금이라 생각했던 나는 한사코 돈 받기를 거부했다. 아끼기는 해도 뇌물은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조상들의 청백리 정신이 내 몸에서 아낌없이 표출되고 있었다.

“어제 사모님께서 운전수에게 택시비 이외에 따로 돈을 주었답니다. 속도위반에 걸렸다고요. 운전수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기에 알게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모든 게 우리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일이니 당연히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것이죠.”

그 돈을 달라고 할까봐 가슴을 졸이던 어제가 떠올랐다. 할 말을 잊은 채 몸 둘 바를 몰라 괜히 시선을 호텔로비의 큰 창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축 쳐진 턱에 주름살로 깊게 패인 이마,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살찐 양 볼을 지닌 한 인간이 서있었다. 전형적인 구두쇠 영감의 모습이었다. 가이드가 말을 이어갔다.

“이건 계피차예요. 베트남 특산품이죠. 어제 상점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는 걸 봤어요. 끓여서 드셔도 되고 그냥 가루로 한 스푼씩 떠먹어도 좋아요. 비싼 것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숫제 머리가 하얗게 비어지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내와 가이드, 두 사람 모두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것만 같았다. 내 돈이란 내가 가진 돈이 아니라 내가 쓴 돈을 의미한다는 말이 환청으로 들려왔다.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아내가 나를 불렀다.

“안 오고 뭐함미까, 버스 떠난다 안캄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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