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그 말을 들으며 난 새벽 어스름 녘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때를 떠올렸다. 희망의 상징이자 새로운 세상이 열림을 예고하는 그 빛. 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언어라는 게 단어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두루 살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여명은 2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꼭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니까요. 물론 완치라는 기적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불행하게도 그건 남은 생이라는 뜻의 동음이의어였다. 온몸이 일시에 얼어붙어 무얼 더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입이 열리질 않았다. 차량의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녹음된 목소리가 창을 넘어왔다.
“고장 난 가전제품 삽니다. 냉장고, 세탁기, 노트북, 오디오, 컴퓨터, 에어컨…….”
아내를 흘끗 쳐다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은 모습이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만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버릇이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그나마 여명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아내라는 사실과, 기간이 6개월이나 1년이 아닌 2년이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무의식적 행위라곤 하지만 이 순간에 어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이기적 본능과 속물성에 소름이 끼쳤다.
고개를 흔들며 그걸 지우려 애쓰는 사이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수치심이 일었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의사에게 다소곳이 목례를 하고는 진료실 밖으로 향했다. 마치 질량이 사라져버리고 빈 껍질만 남은 몸이 바닥으로부터 부양해 이동하는 것 같았다. 또 한 번 폐품 수거차량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못쓰는 가전제품 삽니다. 냉장고, 세탁기, 노트북, 컴퓨터, 에어컨…….”
고장 난 것이 못쓰는 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두 단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같은 뜻인 양 자연스럽게 대치되어있었다. 의사는 진단결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내 귀의 기능은 이미 현저히 저하된 뒤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 소리처럼 띄엄띄엄 들리다가 또 어떤 때는 한꺼번에 중첩되어 들리곤 했다. 잘 이해되지도 않는데다가 잘 들리지도 않는 그 말을 끝까지 듣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난 눈을 감아버렸다. 의사는 자신의 말이 끝났음을 형식적인 인사로 대신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 머릿속에는 겨우 서너 가지 사실만 남았다. 위암 4기. 수술은 무의미한 상태. 현재로서는 2주에 한 번 정도 항암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가족이라 한들 당사자의 절박한 심정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없느니만큼 그건 당연했다. 난 아내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체 한 것뿐이다. 결국 모든 게 위선이요 가식이었다. 가족이라는 게 아무 쓸모없는 허울뿐인 관계임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떤 결정이 진정으로 아내를 위한 것인지 판단조차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상식과 예의의 범주에서 아내를 위로하고 설득하는 것이 다였다.
나와 아이들은 일단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아내의 입장과 관계없이 우리의 책임감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입원여부야 당사자의 동의며 자질구레한 몇 가지 절차가 남아있었지만 당장 결정해야할 것은 아니었다. 난 병원생활이 오늘내일 바로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병은 온전히 내 몫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속에 엄마에 대한 걱정이나 안타까움보다 안도감이 더 크게 섞여있을 거란 내 편견은 우쭐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나의 큰소리 배경에는 언젠가부터 간직해오던 다짐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그건 다짐이라기보다는 허세에 가까운 것이었다.
1년쯤 전이었을까, 고교동창들의 모임자리에서였다. 그날따라 홀로 남은 아버지를 10년 이상 모시고 살다 요양원에 보내드리고 왔다는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요양원이라는 데가 환자보다는 보호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 현대판 고려장을 해놓고도 내 할 도리는 다했다는 위안이 되니 말이야. 어쨌든 우리 현대인들의 마지막 삶의 거처는 점점 그곳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
난 곧잘 그러듯 겉치레로 도덕성을 앞세우며 녀석을 힐난조로 다그쳤다.
“야,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모셔야지.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넌 안 겪어봐서 몰라 그래. 부모라지만 몸을 씻기는 일이며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어디 예삿일인줄 알아? 누구라도 그 상황에 닥치면 똑같아, 이거 왜 이래.”
녀석의 말에는 진정성과 정당성이 가득했다. 그럴수록 난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강조하며 나라면 절대 안 그럴 거라고 생억지를 부렸다. 그건 내가 더 파렴치한 행동을 불사할 것만 같았기에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자기기만이었다.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메아리마냥 공허한 울림만 남긴 내 목소리가 그걸 증명했다.
“웃기지 마. 넌 부모는 고사하고 마누라가 아파 누워도 대번에 간병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질 놈이야. 우리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난 아냐. 부부로 살아온 기간이 얼만데 그래. 만약에 집사람이 먼저 요양원 갈 처지라면……. 그땐 내가 돌볼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거야.”
나의 말에는 명분이 진심을 가리는 수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발적 의지라고는 깡그리 사라진 채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하는 책임과 의무만 강하게 드러났다.
“그런 일이 생기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네가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오래 살아야할 텐데…….”
대화는 친구의 농담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때부터 난 꼭 그래야 한다며 자신을 세뇌시켜왔다. 하지만 그 또한 내 특유의 용의주도함이 빚어낸 결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잘못되었을 때 아내에게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겠는가. 나이로 보나 건강상태로 볼 때 아내보다는 내가 먼저 잘못될 확률이 높은 만큼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보험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병이 내 몫이라 공언한 건 보험계약의 부대조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아내의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한다면 인간성의 상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오리발에 다름 아닐 테니까.
믿을 수가 없었다. 육십도 안 된 나에게 길어봤자 이 년 안팎의 시간만 남아있다니. 오진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미천하다고는 하지만 나의 지식을 총동원해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암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이란 게 원래 가족력을 가진 병이 아닌가. 그러나 내 가까운 친인척 가운데 암을 앓은 사람은 없다. 아니 오히려 미수(米壽)에 졸수(卒壽), 백수(白壽)를 누린 사람들 천지다. 오죽하면 장수집안이라고 주변에서 선망의 눈길을 아낌없이 보냈을까? 생활습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건강매뉴얼 그 자체다. 탯줄에 감겨있을 때부터 술 담배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야 여자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짜고 매운 음식은 입에 댈 줄도 몰랐으며 육류를 선호하기는커녕 거의 기피하다시피하며 채식주의자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운동량 또한 적은 편이 아니다. 걷기는 일상화되어있어 하루 만보가 아니라 이만 보를 넘기는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위암이라니.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었다. 난 조심스레 남편의 의사를 타진했다.
“여보, 다른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검사를 해보면 안 될까…….”
명확한 사실조차 생떼를 써가며 부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까봐 말끝이 자동적으로 흐려졌다.
“재검사? 또 검사를 하려면 당신 많이 힘들 텐데. 이번에도 CT에 조직검사까지 해서 내린 결론이잖아. 그보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 하지만……. 뭐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대신 마음은 단단히 고쳐먹고.”
나의 뜻에 따르겠다 말했지만 남편은 그것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서 비롯되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끝부분에 굳이 ‘단단히’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그런 뉘앙스를 더 강하게 풍겼다. 용기가 생기기보다 협박을 당한 기분이었다. 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재검사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병을 인정하자 이번에는 분노가 전신을 휘감으며 몰려들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열심히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처음으로 분양받은 아파트가 부도나서 그동안 납부한 계약금이며 중도금이 몽땅 날아갔을 때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라는 작자가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도, 큰 아이가 친구를 흠씬 두들겨 패는 바람에 학교폭력위원회에 참석했을 때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여기며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로 여겼을 뿐인데. 잘못이라면 단 한 번도 세상을 거스르지 못한 채 그저 참고 인내하면서 순응해 살아온 것뿐인데 왜 이런 고통이 주어지느냐 말이다. 운명이라는 놈도 이 더러운 세상과 같아서 참으면 참는 대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계속 고통을 가하며 나를 시험하는 것일까?
이럴 때는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 또한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나를 향한 걱정이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피부로 직접 실감하지도, 머리로 직접 느끼지도 못하는 남이 아닌가. 저 세상에 가서 만나자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으면서도 막상 같이 가자고 하면 겁부터 낼 위인들이 분명하다. 그런 그들이 죽음 앞에 서 있는 이 두려움을, 이 절박한 심정을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조차도 이해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내비치며 슬픔에 젖어들긴 했지만 그것도 며칠 뿐 결국은 방관자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던가.
친구며 지인이라는 것들도 하나같이 이기적이었다. 어디서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전화를 해서 한다는 말이 ‘몇 기래?’거나 ‘어쩌다 발견한 거야?’가 고작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려 들 뿐 진정으로 나를 위로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밤늦게 전화를 해서는 ‘친구들끼리 만나 수다를 떨다가 생각나서’라며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 응원한다, 기도할게, 같은 문자나 말들조차 내 눈에는 위선과 거짓의 포장에 불과했다.
극도의 우울감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내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집안 곳곳으로 침투해들었다. 집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난기류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루하루 칼날을 밟으며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남편과 아이들의 시선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그것조차 나에게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펴며 그들만 살 방도를 찾는 일로 여겨져 극도의 배신감에 온몸을 떨어대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병에 대항해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처럼 나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달은 적은 없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오만의 소치였을 뿐이다.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겸손은 담담한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그 상태에 이르자 희한하게도 분노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마음이란 공간은 잠시도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삶에 대한 집착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삶이 소중해지면서 난 모든 걸 의학과 신의 몫으로 돌렸다. 완치확률이 몇 퍼센트냐 하는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 0이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단 1 퍼센트의 확률이라 하더라도 그건 불가능이 아니라 가능의 의미이며, 그 혜택을 받은 수혜자에게는 단번에 100퍼센트의 확실성으로 변할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가능성을 움켜쥐고 주어진 시련을 참고 견디면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전부였다. 메스와 약물에 필요한 유일한 아군은 살겠다는 나의 의지라는 것도 믿게 되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의사는 표적항암제를 정맥주사로 주입하는 치료법을 쓰겠다고 했다. 그것 말고도 세포독성항암제나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의 현재 상태나 유전자검사결과를 고려할 때 그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법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고는 하나 그 말이 부작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니 그걸 이겨내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모든 걸 그에게 의탁하며 믿고 따를 도리밖에 없었다.
난 투병의지를 불태웠다. 희망 또한 놓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흔적이 뚜렷했다. 병원을 오갈 때마다 나와 동행했고 항암을 위해 입원할 때면 꼼짝 않고 내 옆에서 병실을 지켰다. 두어 달이 지나면서 항암의 부작용이 서서히 수반되었다. 우선 머리숱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심한 피로감이 동반되었으며 기력이 빠져나갔고 밤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남편은 독한 병이 치료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하지 않느냐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고취시켜주었고 난 나대로 그 격려에 장단을 맞추듯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6개월이 지나면서 베갯머리에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이는 날이 늘어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두려웠으며 거울을 볼 때마다 확연히 드러나는 머리 밑은 자존심을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구토 증세였다. 그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부작용이라는 표현이 더는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암세포가 부작용이었다. 나의 인내심 역시 구토증세에 초점이 맞혀졌다.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구토의 중심에 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병원에 다녀오는 순간부터 구토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난 기를 쓰며 발악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경유지로 변해갔다.
내 몸속의 내비게이션은 업데이트 상태가 지극히 불량했다. 공사 중이거나 끊긴 길에 대한 정보가 아예 반영되어있지 않았다. 위나 창자로 향하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었지만 계속 나아가라고만 안내했다. 목구멍을 통과한 음식물은 하릴없이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목적지로 가는 다른 길을 물어도 놈은 계속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반복되는 뺑뺑이에 난 지쳐갔다. 음식이라는 것이 위와 장의 소화기능을 통해 영양분으로 흡수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거늘 그건 더 이상 음식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치유책을 하소연했지만 의사는 그때마다 항암제가 암세포만이 아니라 영양분 흡수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동문서답하기 바빴다. 기껏해야 영양제를 주사약으로 처방해주며 억지로라도 먹어야한다는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나는 음식물이라는 적과도 맞서야했다. 그건 다른 어떤 적보다 강해서 날이 갈수록 패색이 짙어갔다. 그나마 내가 이길 수 있는 건 미량의 과일주스나 두어 숟갈의 미음뿐, 급기야 음식기피증세가 발현했고 체중감소와 빈혈이 잇따랐다.
이래서 긴 병에 장사 없다는 것일까? 나의 몸은 점점 초췌해졌고 기력을 상실했으며 행동반경은 눈에 띄게 줄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눕는 일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화장실을 가는 일조차 힘들었다. 어느새 휠체어는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남편에게 기대는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존감은 무너져갔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이 무너지는 것 또한 순식간의 일이다. 죽음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이 미지의 세계에 속해있는 반면 병원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당면한 것이어서 훨씬 더 크고 강하게 느껴졌다. 이겨낼 자신도 재간도 없음이 인식되는 순간 삶에 대한 의욕은 급격히 떨어졌다. 병원행을 포기하는 것만이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울증마저 다시 도졌다. 무언가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의 인내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병행위도 점차 형식적으로 변해갔다. 차마 아내 앞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해 그렇지, 모든 걸 포기하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만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친구 앞에서나 자식 앞에서 부린 허세는 뒷전이 된지 오래다. 간병도 불치병에 준하는 치명적인 병명이었다. 죽음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면 그걸 선택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행을 준비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병원엘 가는 일이 그렇게 싫었다. 아니 그날 비로소 싫어진 것이 아니라 벌써 1년이 가까운 세월을 반복해왔으니 그날에 이르러 싫증이 임계점에 도달한 건지도 모른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짜증이 덕지덕지 섞여들었다. 물론 그걸 드러내놓고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고 절제하던 모습은 이미 상당 부분 사라져있었다. 그걸 눈치 못 챌 아내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휠체어로 옮기기 위해 막 아내의 몸을 들어 올리려는데 아내가 내 손을 꽉 잡아왔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불안한 심정으로 아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나를 향해 잠깐 앉으라는 손시늉과 함께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여보, 나 말이야 병원에 안가면 안 돼?”
“아니 왜?”
마치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예견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난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놀랍지가 않았다. 짧고도 건조한 반문이 그걸 대변하고 있었다. 도리어 아내가 놀라는 모습이었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 이상 충격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거늘 그와는 정반대로 감정이 완전히 증발해버린 말과 행동으로 대응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걸 깨닫는 순간 난 금방 후회했다. 아, 저 사람이 이제는 함께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게 여기는구나. 병치레를 하면서 부쩍 민감해진 아내의 감각이라면 충분히 그리 생각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부인할 수 없는 나의 실수였다. 설령 내 본심이 그렇다 한들 그럴수록 감정을 더욱 숨겨야 하는 일이지, 굳이 그걸 밝혀 아내에게 확인시켜줄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파급효과의 측면에서 볼 때 의심과 확신의 차이란 실로 엄청난 것.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태껏 참고 수발해온 나의 모든 수고가 하나같이 거짓과 위선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난 사태를 수습하는 심정으로 변명처럼 몇 마디를 더 늘어놓았다.
“힘들어서 그래? 그동안 잘 참아왔잖아. 의사 말이 치료효과도 있다고 그랬고. 조금만 더 참으면 분명 좋아질 거야. 우리 조금만 더 견뎌보자. 여보, 응?”
아내는 아무 말을 않은 채 내 손을 더욱 세게 잡아왔다. 감은 눈에서 눈물방울이 살포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본인의 고통이야 오죽할까? 난 할 말을 잃은 채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지 저울질하는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위로인지 배신을 은폐하려는 사탕발림인지 확인하려는 것일까? 아내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무슨 생각에서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포기하면 절대 안 돼. 당신도 잘 알겠지만 우리 주변에만 해도 그렇게 병을 이겨낸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믿음이야. 나을 수 있다는 믿음. 이렇게 약해지는 거야말로 제일 나쁜 거지. 당신, 나를 봐서라도 이러면 안 돼.”
미안함을 떨쳐버리지 못해 내 말은 장황하게 이어졌다.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쳐낸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차마 그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어 창 쪽으로 시선을 피하는 내 귀로 아내의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예비동작을 취하는 듯했다.
“나도 살고 싶어. 근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 안 되는 일에 매달려 내 소중한 시간을 더는 뺏기고 싶진 않아. 그리고 치료를 받을 때마다 수반되는 그 고통들, 감수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당신에게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내 진심이야. 제발 나 원하는 대로 해 줘.”
그 어느 때보다도 아내의 표정은 진지했다. 난 아내의 말에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아니 동의라는 단어는 적절한 어휘가 아니다. 차라리 이제나저제나 아내로부터 그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게 훨씬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그러자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아내의 진심이라고 해도 거기에 동의하는 순간 나의 이기적인 본심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 것이니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적어도 그런 치졸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난 또 가면을 쓰면서 참 모습을 위장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짓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법, 더는 말을 잇지 못함으로써 내 가면은 벗겨지고 말았다. 말줄임표를 수락으로 받아들인 아내는 휠체어를 슬며시 밀어내고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난 그저 우두커니 서서 아내의 침대를 지킬 뿐이었다.
병원 행을 포기하면서 남편은 어미 새의 역할을 자처했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약물을 처방받아오면 난 새끼 새가 되어 받아 삼켰다. 여전히 음식 먹는 일은 힘들었고 움직이는 것도 휠체어에 의존해 거실과 방, 화장실을 겨우 오갔다. 체중은 줄다 못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살점들이 증발해가는 듯했다. 모든 육체의 기능들이 쇠락해갔다. 잔인하게도 두뇌만 제 기능을 유지하며 이런 흉측한 모습을 낱낱이 인식하게 만들었다. 머리만 비대해진 가분수의 괴물이 된 것 같았다. 그나마 그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와 고통에 몸을 떨다가도 진통제가 효과를 발휘할 때면 어김없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그때마다 삶은 정반대인 죽음으로 변해 다가왔다. 나에게 남은 삶은 이제 더 이상 삶이 아니라 죽음의 예비과정이었다.
지금도 내 앞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한없이 추락하고 말 것 같은데 거부할 수 없는 힘은 계속 나를 떠민다.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허사일 뿐 내 몸은 조금씩 밀려난다. 어느새 낭떠러지의 끝에 도달한다. 짙은 안개가 깔려 저 아래세계는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미리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두려움의 크기를 좀 줄일 수도 있으련만 알려진 바도 없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세계는 나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한 발이 허공으로 벗어나고 한껏 쪼그려 앉으며 무게중심을 뒤로 옮겨 봐도 그것도 잠시뿐 내 몸은 어느새 추락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때서야 그런 상황에 처한 것마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큰 고통이 가해진다한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건 죽음의 세계가 삶의 세계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죽음의 세계라는 게 진실은 그것과 아예 다를 수도 있다. 내세라는 건 죽음의 공포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인간들이 꾸며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세라는 것 자체가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세워진 가설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혼이란 무엇인가?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뇌라는 기관이 수행하는 두뇌작용에 불과하지 않은가. 누가 뭐라 해도 죽음은 두뇌작용의 정지를 의미한다. 그 말은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영혼은 사라진다는 뜻이며, 기능이 정지해버린 뇌조차 시간이 경과하면서 썩어 없어질 것이니 다시 작동을 재개할 일말의 가능성마저 없어져버린다는 뜻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는 육신뿐 아니라 정신까지 깡그리 소멸해버려 탄생 이전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얼 깨닫고 느끼는 것은 물론 기억도 없고 존재마저 알지 못하는 그 상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무어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도저히 형언할 수도 없는 답답함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솟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얼어붙으며 혀와 입이 굳어버렸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온몸을 휘감고 들었다.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기지 못하는 적이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더 이상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말자. 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생각을 안 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때부터 나는 어쩌다 그런 생각이 찾아올 기미라도 보이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고 다른 생각을 하려 애썼다.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항암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이 기정사실로 목전에 다가와 있음에도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마저 그저 모른 척 외면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다.
죽음 이후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 믿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면 어떤 사물이든 형식이든 끝 다음에는 반드시 또 다른 시작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의 이면에서도 분명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믿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소위 내로라하는 세계의 석학 중에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나름의 종교에 맞춰 내세를 믿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세계이기에 통일된 사상으로 증명을 못하는 것뿐이지 않을까?
난 생각을 고쳐먹었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생각지 말고 무조건 내세를 믿기로 했다. 저승이어도 좋고 지하세계여도 좋으며 하늘나라여도 좋다. 어떤 이름이든 또 어떤 체제든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그냥 믿는 거다. 내일 내가 어떤 모습일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예측하며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처럼 막연하게나마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죽은 이후에도 어떻게든 존재할 거라 믿으려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난 자기세뇌를 더욱 강화시켰다. 노력이 빛을 발해서인지 한 달이 지나자 전과 달리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남은 시간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즈음이었다. 내가 없어도 남편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집안의 생활용품들을 정돈했다. 밀렸던 가계부를 정리하고 은행의 계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핸드폰을 열어서는 가입했던 사이트들로부터 탈퇴를 했고 SNS 계정도 자주 쓰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했다. 노트북을 펼쳐 써두었던 글들을 갈무리했다. 불필요한 자료들은 과감하게 삭제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썼다. 아주 감명 깊은 글을 쓸 것처럼 시작했지만 막상 쓰고 보니 이상하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만 나열되었다. 집 등기부등본과 몇 푼 안 되는 은행 저축통장들이 어디 있으며 옷가지와 그릇 나부랭이들 같은 살림살이에 관한 이야기 일색이다. 그나마 마음에 있는 말을 쓰려하니 그건 또 한결같이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어학연수를 가겠다는 아들에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해서, 친구들과 숙박여행을 가겠다는 딸에게는 여자라는 이유로 못 가게 막아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이해 못하고 허구한 날 술 먹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바가지만 긁어서. 내 삶이란 게 이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이었구나.
정신의 변화와 더불어 육체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남편의 짐으로 변해갔다.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수척해갔고 지쳐가는 모습이 완연했다. 저마다의 삶에 쫓긴 아이들은 가끔 전화 한 통만으로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으려 들었다. 고통은 점점 짧은 주기로 찾아와 오랜 시간 머무르다가 떠났다. 까무룩하니 정신을 잃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진통제의 효과도 점점 떨어져 통증이 찾아오면 차라리 이 상태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이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통증에서 해방되어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해서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잡아들었다. 세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유일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내 눈은 한 블로그에 가서 멈췄다. ‘조력자살’, ‘존엄사’라는 두 단어가 아주 큰 글씨로 대문을 장식한 블로그였다. 그곳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아주 소극적인 안락사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난 급히 ‘존엄사’ 내지는 ‘안락사’라는 단어를 사용해 검색을 시작했다. 어차피 병원치료를 포기한 마당에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뿐인데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며칠 일찍 그걸 맞이한대도 충분히 교환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사이 혹시 통증이라도 찾아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손가락이 떨리기까지 했다.
“당신 내 생일 언젠지 기억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근래 드물게 쾌활한 아내의 음성이 안방에서부터 들려왔다. 뜬금없이 웬 생일타령일까? 읽던 책을 접어둔 나는 그 해답을 찾으려 기억속의 날짜를 더듬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기억하지. 음력으로 사월 이십일이잖아. 그러고 보니 생일이 다 됐네.”
“잊어먹지 않았네. 다행이다. 생일선물 못 받을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 애써 속울음을 삼키며 아내에게 말했다.
“뭐 받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지? 뭐야, 그게.”
“응 있어, 꼭 받고 싶은 거. 말하면 들어줄 거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여태껏 생일이 되었다고 아내가 특별히 선물을 바란 적은 없다. 난들 곰살궂은 성격이 아니었으니 아내의 생일을 매년 챙겼을 리 만무하다. 우리 나이에 기념일이란 게 다 그렇듯 아이들이 케이크를 사들고 와서 잔치랍시고 법석댈 때면 모른척하기가 뭣해 슬그머니 봉투에 돈푼이나 집어넣어 건넸을 뿐이다. 숱한 세월을 그리 살아왔음에도 아내는 단 한 번도 트집을 잡거나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오늘따라 유별난 요구를 하는 아내가 좀 수상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일이야 있으랴 싶어 난 아무렇지 않게 약속했다.
“여보, 나 스위스 가고 싶어. 데려다줄 수 있어?”
아내의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한 기억이 아스라했다. 외국이라고 가본 나라라곤 일본이 유일했고 그마저도 10여 년이나 지나있었다. 그런 비용마저 아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이 아니었음에도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 가자. 언제가 좋겠어?”
난 반성하는 심정으로 아내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휠체어에 의존해야하는 이동, 각별히 유념해야하는 음식 등, 함께 여행할 때 나를 힘들게 할 일들이 산적해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신뢰감을 심어주려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예매할 듯 과장된 자세까지 취했다. 그런 내가 더 못미더웠던지 아내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나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 깊이 깔려있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돌아올 때는……. 당신 혼자서 와야 할 것 같아…….”
정신이 혼미해져 횡설수설하는 것인가? 말끝을 잘 잇지 못하는 아내의 흐느낌이 나로서는 요령부득이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혼자 돌아오다니. 당신은 어쩌고?”
아내의 숨겨진 의도는 곧 밝혀졌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이어가는 말에는 확고한 의지가 배어있었다.
“사실 나, 그동안 안락사에 대해 많이 알아봤어. 스위스에 ‘디그니타스’라는 병원이 있더라. 거기서는 환자가 원하는 날짜에 아무런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해준대. 불법도 아니고. 스위스 여행을 하자고 한 건 그 때문이야.”
안락사라니. 똑같은 죽음이어도 그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살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닌가. 대상이 자신이어서 그렇지 일종의 살인이 아니냐 말이다. 아니 혼자도 아니고 버젓이 가족들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난 충격에 휩싸여 온 몸이 떨려왔다. 그런 단어가 나와 연관이 지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나를 바라보면서도 아내는 결코 당황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나를 설득하려들었다. 일단 안락사가 살인의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우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한다는 것이었고, 특히 시한부 삶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여 판단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죽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정당한 권리행사라 주장했다. 누구에게나 더없이 소중한 것이 자신의 인생인데 그 종말을 허투루 판단할 바보가 어디 있겠냐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하기야 내가 아내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말할 만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 중 가장 큰 것이 죽음일진대 그 고통을 줄이려는 게 어떻게 죄악이 될 수 있으며, 환자에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병원에서 처방하는 모르핀 같은 진통제와 뭐가 다르냐며 날을 세워 반문했다. 안락사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도 죽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색안경이 빚어낸 사치에 다름 아니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표현조차 안락사가 아닌 존엄사여야한다고 주장했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명쾌한 논지였다. 더구나 이어지는 말은 그녀가 지난 두 달 동안 삶을 정리하며 얼마나 심사숙고했는지, 그리고 안락사, 아니 존엄사에 대한 실천의지가 얼마나 뚜렷한지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당신에게 알리지 않아 미안한데 나 이미 디그니타스 병원에 존엄사 희망신청도 마쳤어. 의료진료 기록과 삶을 정리하려는 사유를 작성해 보내라기에 그것도 다 보냈고. 병원에서는 서류검토가 끝나는 대로 승인여부를 결정한대. 승인이 나면 날짜를 조율하게 되고 그 후 비용을 보내면 끝이야. 2,500만 원 정도라는데 그 정도는 대줄 수 있지? 생일날로 날을 잡은 건 이 세상에 온 날 다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그런 거야. 힘들게 결정한 사항이니 아무쪼록 이해하고 받아줬으면 좋겠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말문이 막힌 나는 반박할 재간이 없었다. 아니 반박은커녕, 안락사든 존엄사든 간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이유가 난 지금 당장 죽을 운명이 아니라는 자만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허락할 수는 없었다. 당사자보다 내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 행동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만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나는 무조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정심을 상실한 그 말은 카산드라의 예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말로 아내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시간을 벌어 논리를 확보한 후 조리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난 깊게 생각해보겠노라며 궁지에서 빠져나왔다.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생각을 정확히 간파해야만 한다. 난 그럴 목적으로 며칠 동안 그녀가 되어보려 노력했다. 말 그대로 가정은 가정일 뿐이어서 온전히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된다는 게 애를 쓴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더욱 곤혹스러운 건 생각하면 할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아내의 의견이 더 옳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점이었다. 누구에게든 오직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 불가역적인 그것을 끝내려는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끝냄과 동시에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되고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극도의 공포를 불러오는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도대체 본인 말고 누가 관여를 한단 말인가. 삶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초라한 모습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간을 줄이는 대신 품위를 지키며 편안하게 떠날 것인가. 그 선택은 암만 생각해도 당사자의 몫이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태어나는 순간 인간에게 부여된 기본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와서 연명치료 거부권리를 미리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다 그걸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옳은 것과 수긍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내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스위스로의 여행은 더욱 그러했다. 여비가 아까워서도,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혼자서 돌아올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주변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견딜 재간도 없었고, 자책으로부터 벗어날 힘도 없었으며, 아내의 죽음 뒤에 이어지는 뒤처리를 감당할 의지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을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다 못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내를 배려한다면서도 실상은 아내보다 내 앞일을 더 걱정하는 나였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아내 없이 혼자 살아갈 일이 아득했다. 아내에 의존해 살아온 세월이 그만큼 길었던 것이다. 자식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야 그들 인생을 살아야 한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생활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것을 생각하니 현기증마저 일었다. 아내의 발병이후 지금껏 버텨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이면에 한시적일 거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몇 백 번을 곱씹어 생각해도 아내 없는 내 삶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다. 필경 독거노인으로 전전하다 신문 한 귀퉁이에 고독사라는 제목의 기사로 마지막을 장식할 게 분명했다.
그때 갑자기 불쑥 치미는 생각이 있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아내와 함께 그 먼 길을 떠나버리면 어떨까? 초라하기만 한 고독사보다는 진정한 황혼의 로맨스로 꾸며지는 편이 훨씬 아름답지 않겠는가. 가족을 두고 어떻게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냐며 아내를 비난하던 내가 자식을 두고 동반자살을 염두에 두는 것이야말로 이중적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였지만, 평소 이기적 행동이 습관화되어 있던 나였으니 그조차 죽을 권리라는 말로 합리화시키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쳐 지난 생각일 뿐 본심은 아니었다. 아내와 달리 나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대담함이 없었다. 대신 그 생각을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써먹기에는 손색이 없어보였다. 사람의 생명이 거래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내의 행위를 막을 수만 있다면 그 방법 또한 일종의 필요악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최후통첩의 형식으로 아내에게 다시 공을 넘겼다. 명색이 존엄사라는 그걸 포기하든지 아니면 동반자살을 택하든지 양자택일하라며.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인 아내는 사뭇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양쪽 모두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란 걸 알았지만 난 나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살이라고 해도 거기에 동반이라는 명사수식이 추가되는 순간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살해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니까. 내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강수를 내지를 수 있었던 것도 양심을 지닌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랄 수 있는 그 죄책감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이틀이 지난 후였다. 아침나절 또 한 차례의 통증이 전신을 휩쓸면서 찾아왔다. 숱하게 찾아오는 고통이건만 거기엔 익숙함도 내성도 생기지 않았다. 지식과 달리 감각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매번 찾아오는 통증은 내 예상을 번번이 빗나갔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머무는 시간조차 알려주지 않으며 돌개바람처럼 전신을 여러 차례 훑어 내렸다. 자기방어의 대표적 수단인 웅크리는 동작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난 속수무책으로 아래 위 이빨이 서로 어긋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모든 기력을 상실해 완전히 탈진해서야 그 끝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얌전하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수천 개의 바늘이 온몸을 쑤셔대는 듯한 짜릿함이 온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강한 여운을 남기며 아주 천천히 물러갔다. 다음번엔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거란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이제는 하루 아니 한 시간조차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마침내 끝을 내야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 해도, 설령 그것이 더 힘든 여정의 출발이라 해도 상관없다. 자연사든 존엄사든 조력자살이든 동반자살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수단이어도 목적지로 향하는 지름길만 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난 입술을 깨물었다.
문제는 자력만으로 그걸 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말은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인이 못된다. 함께 살아 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를까? 그렇다면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남편은 자신의 제안이 현실이 되어 되돌아오리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할 것이다. 또 나의 동의에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돌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 행위야말로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내 앞에서 자신만 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동반자살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남편이 스스로 삶을 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마침 어릴 적 밤새도록 의도치 않게 마신 연탄가스로 인해 사경을 헤맸던 때가 떠올랐다. 난 주저 없이 연탄가스를 생의 마지막 공기로 선택했다. 비록 이곳이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없는 도시이긴 하지만 연탄구이 고깃집이 드물지 않았고 그곳에서 두어 장 정도를 구입하는 일이야 캠핑을 가서 고기를 구워먹으려 한다는 핑계를 대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였다. 불을 붙이는 방법도 번개탄이라는 좋은 불쏘시개가 있고 적당량의 수면제를 복용한다면 호흡곤란으로 이어지는 고통을 상당부분 줄여줄 것이다. 수면제를 구하는 것 역시 크게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몇 군데 병원을 들러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불면증을 호소한다면 간단히 해결된다. 저승 문턱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의사치고 속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려고. 무엇보다 그 방법은 삶의 의지를 지닌 남편에게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적당한 방안을 마련해주지 않겠는가. 조금만 요령을 피우면 적어도 수치스런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니. 설령 남편이 죽음을 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비록 나와는 상황과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한 선택이라면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난 그렇게 되길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기심을 숨기고 싶은 본능으로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길을 함께 갈 동반자가 있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위안이 되어주는 일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도 두려움은 그 정도로 혼자 감당하기에 벅찼으며 삶에 대한 집착은 끈질겼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이 세상과 하직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이전의 계획처럼 내 생일을 디데이로 정한다면 생일잔치라는 이유로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내는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결의에 찬 표정으로 동반자살을 선택하노라 선언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난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극단의 고통으로부터 단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길만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던 아내라는 걸 간과한 실수였다. 결국 나의 무리수는 퇴로를 차단당한 아내로 하여금 나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후회막급이었지만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신기한 건 아내가 선택한 그 방법이 나에게 전혀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아내의 부재로 인한 혼자만의 삶에 대한 위기감이 실로 엄청났던 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하는 과정에 스스로 포기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느새 난 모든 걸 인정하는 자세가 되었다.
드디어 아내의 생일이 되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독립생활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저녁 시간에 맞추어 케이크며 선물나부랭이를 손에 들고 집을 찾아왔다. 간단한 생일파티가 벌어졌다. 제아무리 의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지만 아내는 자신만의 작별인사를 하면서 드문드문 눈물을 보였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우린 적당히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고 ‘설마’ 하는 그들의 생각이 곁들여지면서 의심의 농도는 옅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다음에 또 오겠다며 돌아갔다. 다음, 다음이라고? 아내가 휠체어의 방향을 백팔십도로 틀어 안방으로 향하면서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난 다음이라는 그 말을 가슴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면서 이부자리를 깔고 번개탄에 불을 피운 화덕을 방에 들여놓았으며 아내를 휠체어에서 내렸다. 자리끼를 준비하듯 주전자와 컵도 가져다놓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우린 마지막 인사마저 눈으로 대신했다. 아내가 먼저 한 움큼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놓고는 물을 마셨다. 한 번에 다 넘어가지 않는지 아내는 몇 차례나 물을 마셨다. 물 컵이 내게 넘어왔다. 나 역시 물을 가득 따라 남은 알약과 함께 삼켰다. 아내가 자리에 누우며 눈을 감았다. 난 아내의 손을 살며시 쥐고는 따라 옆자리에 누웠다.
정녕 이런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방식이 옳은 것일까? 어쩌면 난 후회를 그런 의문으로 대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갈까? 삶에 대한 애착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눈을 떠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눈가로 몇 방울의 눈물만 흘릴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삶에서 견뎌야하는 마지막 인내심이 아닐까?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찾아오는 잠의 기운처럼 난 서서히 몽롱해져갔다.
눈을 번쩍 떴다. 옆자리를 보았더니 아내가 누워있었다. 조금 전 우리의 행동이 기억났다. 아내의 코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숨소리는 이미 멎어있었다. 숨이 끊어질 무렵 고통이 찾아왔던지 얼굴은 찌푸린 상태였고 몸은 약간 모로 돌아간 채 다리가 구부러져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왔다. 번개탄은 아직도 불이 붙어있었다. 순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난 벌떡 일어났다. 창문으로 달려갔다. 환기부터 시켜야하는 만큼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잠금장치에 문제가 있는지 문이 열리질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문고리를 계속 돌렸지만 창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머니’하고 외치며 아들이 뛰어 들어왔다. 아이는 아내의 시신 앞에 쓰러졌다. 그리곤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어머니 소리만 반복해 외쳐대다 급기야 넋을 놓아버렸다. 난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 이 창문 좀 열어 봐. 환기를 시켜야하는데 문이 안 열려.”
몇 번이고 고함을 질렀건만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눈에는 제 어미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죽 놀랐을까? 난 다시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었다.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아들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이제야 나를 보았나 싶어 고개를 홱 돌렸다.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시신 하나가 놓여있었다. 온통 사지가 뒤틀린 내 몸뚱이였다. 깜짝 놀란 난 손으로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댔다. 이유를 설명하듯 바로 뒤에서 아내의 음성이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울려왔다.
“여보, 이제 그만 가.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아? 차라리 좀 더 있다오지 그랬어?”
아내는 연기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서서히 비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겨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