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월 1일 - 마지막 계약

by 원광우

양쪽으로 나누어진 암막이 가운데에서부터 좌우로 서서히 걷혔다. 한껏 개방되었던 조리개가 조금씩 닫히면서 초점이 아웃포커스에서 팬포커스로 바뀌었다. 보다 상세한 관찰을 위해 초당 프레임 수를 최대한으로 늘렸다. 배경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각(視覺)을 향해 출발한 뉴런들이 도중에 목적지를 기억 쪽으로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멈춰선 곳은 오사카였다. 그때부터 뉴런들의 속도와 방향이 정상을 되찾았다. 인근의 다른 신경계들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출장지의 호텔방이었다.

몸을 일으키며 협탁 위를 더듬어 전등스위치를 켰다. 갑자기 빛 샤워가 쏟아져 내렸다. 당혹스러운 나머지 마른세수를 두어 차례 했다. 안경을 찾아 꼈다. 동공이 제 크기를 회복하면서 주변의 물체들이 하나둘 형태를 찾았다. 디지털시계는 아직 졸리는지 약한 불빛으로 새벽 여섯 시가 되기 전임을 알려주었다. 정면 벽에 걸린 거울을 응시했다. 삶은 내가 살았는데 그 흔적을 그려낸 건 거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과장이 심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퉁퉁 부은 얼굴은 그렇다 쳐도 백발과 쭈글쭈글한 주름은 십수 년의 세월을 너끈히 초과해있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겼다. 목을 좌우로 비틀었다. 우두둑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에 깜짝 놀란 거울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머리칼을 금세 제자리로 되돌렸다. 거울은 허구적 드라마를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브중계를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침대를 내려서면서 실내용 슬리퍼를 찾았다. 좌우슬리퍼는 각방을 쓰다 못해 별거 중이었다. 온 동네를 발끝으로 수소문한 뒤에야 겨우 둘 사이를 화해시켜 꿰어 신은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속에서는 날짜와 시각이 시력검사표가 되어있었다. 1월 1일 목요일 오전 다섯 시 오십오 분. 인생에서 백 번도 맞지 못하는 새날이었다. 난 거기에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속박의 끝에 이어진 해방의 시작이라고. 새삼 출장을 떠나오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전 아홉 시 인천 발 오사카 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시간상으로 수원의 사무실에 출근했다 출장길에 오르기는 다소 무리가 따랐지만 난 기꺼이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만이 12월 31일이라는 퇴사일과 1월 1일이라는 출장종료일 사이의 모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진 않았지만 그런 건 죄다 해답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답은 아니었다. 출근 시간까지 세 시간 남짓 남은 탓에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안 그래도 직원들과 마주칠 일이 마뜩잖았는데 그럴 일이 없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미처 꾸밀 여유도 없이 생얼을 드러낸 집기류들이 곤혹스런 몸짓을 보였다. 그들을 외면한 채 그곳에 남은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내 것이라면 남은 지문까지도 없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내 존재의 추적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싶었다.

제일 먼저 책장 앞으로 다가섰다. 자기계발인지 자기개발인지 애매한 목적으로 사 모은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뽑아내려 손을 뻗었다. 그들은 부당해고를 거부하는 시위대의 모습으로 스크럼을 공고히 하며 저항했다.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학생시위대를 진압하는 전경의 심정으로 설득했다. 그들의 어깨간격이 조금씩 넓어졌다. 난 미리 준비한 닭장차에 그들을 쓸어 담았다.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기회가 많은 땅으로 훈방조치하기 위함이었다.

책상으로 옮겨갔다. 책상 위에는 서류뭉치들이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었다. 무리들을 강하게 묶고 있는 철조망을 잘라낸 후 원위치와 소각장, 두 갈래 행선지 별로 그것들을 재편성했다. 서랍을 열었다. 사원증, 명함, 필기도구와 각종 사무용품들이 화염병과 돌멩이의 형태로 가지런히 정돈되어있었다. 공격용이 아니라 철저하게 방어용으로만 사용되던 무기였다. 의식이 깬 후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일부는 물려주고 싶었지만 구식이기도 하거니와 너무 낡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떡하든 내 손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여 한곳에 따로 모았다.

마지막으로 업무용노트북을 켰다. 회사에서 지급받은 것이라 돌려주면 그뿐이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부존재증거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 속에 저장되었을 사적정보들은 지나온 나의 행적이 결코 단정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부 사내세력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업무용데이터들은 이미 회사규정에 의거 사내서버로 백업하는 절차를 끝냈으니 포맷을 통한 하드드라이버 초기화가 최고의 선택지였다. 물론 포렌식이라는 복병들의 매복 작전까지 무력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화면 위로 색깔을 달리 한 긴 가로줄이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사진이 되어 기억상실증의 진행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디지털 기억의 삭제가 진행되는 동안 난 물리적 기억의 삭제도 서둘렀다. 소각장행 달구지를 급히 문서파쇄기로 이동시켰다. 기억들은 화형을 면한 대신 거열형에 처해졌다. 바지직거리는 비명이 저주가 되어 사무실 공간을 허허로이 떠다녔다. 더러 거열형에 어울리지 않는 놈들은 짓밟고 뭉갠 후 비닐로 묶어 숨통을 조아버렸다. 피 칠갑을 한 달구지는 형장의 한쪽 구석에 던져놓았다. 누군가 오늘의 참사를 두고두고 기억하는 도구로 재활용하라는 의미에서.

자리로 돌아오자 노트북은 본능만이 살아남은 역행성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있었다. 시스템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암흑으로 변하면서 나와 노트북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던 시스템이 차단되었음을 알렸다. 가방을 어깨에 멘 후 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애초 떠나지 못하도록 운명 지어진 내 분신들이 곳곳에서 숨어 눈치를 살피며 훌쩍거렸다. 다른 누군가와의 다음 삶이 예정된 그들을 향해 감상적으로 대응하는 건 옳지 않았다. 등을 돌려 방을 벗어났다. 문밖에는 동료들의 책상이 줄지어 서있었다. 책상의 모서리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사열하듯 지났다.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인천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무거운 공기가 머리를 짓누른 탓일까? 편두통이 찾아왔다. 최근 들어 부쩍 내 신체는 날씨를 예보하는 슈퍼컴퓨터가 되어갔다. 목이 매캐하다 싶으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었고 뼈마디가 시큰거리면 비가 예보되었으며 온몸이 찌뿌둥하다 싶으면 강풍주의보가 내렸다. 그거야말로 나와 어머니 사이의 친자확인 유전자검사결과 보고서에 다름 아니었다. 갑자기 윈드쉴드 글라스 앞쪽으로 마이너리티리포트에서나 볼 수 있는 투명 디스플레이가 나타나 고향집 대청마루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곳에 나앉은 어머니가 무릎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비가 오려나. 화면은 나의 과거를 여지없이 소환했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학생운동에 빠져있던 대학시절. 나의 체포구금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제대로 옷도 갖추어 입지 않은 채 유치장을 찾아온 어머니, 나의 퇴직사실은 어머니에게 그때 그 소식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었다.

차량내부의 모니터를 전화모드로 바꾸어 마누라라고 적힌 곳을 눌렀다. 죽어도 못 보내. 차량의 스피커를 통해 새어나오는 2am의 노랫소리에 난 깜짝 놀랐다. 영숙은 새로운 음악으로 컬러링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무엇을, 아니 누구를 죽도록 못 보내겠다는 것인지.

“저예요. 무슨 일이에요? 혹시 뭐 빠뜨린 거라도 있어요?”

며칠 사이에 영숙에게 달라진 건 컬러링뿐만이 아니었다. 내 전화를 받는 첫 음성에 불안감을 한껏 싣는 것도 바뀐 모습이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러는데, 어머니랑 통화하게 되면 내 퇴직 사실을 당분간 숨겼으면 싶어서.”

난 나대로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와 프롬프트 대화를 하듯 사족을 툭 잘라버리고 본론부터 꺼내는 게 버릇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당연하죠. 괜히 걱정하시게 뭣 하러 알려요. 그러고 마냥 당신이 놀고 있을 사람도 아니잖아요?”

영숙은 나를 안심시킨 것에 덧붙여 용기를 북돋우려 실직의 탈출에 내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자유는 몇 곱절 더 큰 책임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실직도 도둑질만큼이나 비도덕적 행위여서 내 발이 저린 것일까?

“혹시나 싶어 전화한 거야. 그럼 됐어. 나, 다녀올게.”

끝내 난 컬러링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아내가 못 보내는 대상에 왠지 나만 빠져있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였다.

“조심해 다녀오세요. 회사도 그만 두는 마당에 너무 무리하지 마시구요.”

코끼리를 생각지 말라면 더 코끼리가 생각나듯 무리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명수의 비웃는 얼굴이 자꾸 어른거렸다. 코끼리를 생각지 말라는 말을 생각지 않으려 머리를 흔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 출국 전날 퇴근길에 인사를 나눴던 동료들이 눈에 밟혔다. 발에 밟히면 노려보게 되지만 눈에 밟히면 돌아보게 된다. ‘잘 지내’를 ‘귀국 후 또 봐’로 번역한 그들의 눈동자들이 주위를 감싸왔다. 마지막일지 모르겠다고 했던 말도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보다는 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고 추정하기보다는 단정적으로 말했어야했다. 그렇게 미련마저 끊어버리는 것이 옳았다. 다행히 메일이라는 탈출구가 있었다. 개인노트북을 꺼내 회사의 내 계정에 로그인했다. 재무구조 개선이란 미명하에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회사가 전산시스템 담당자의 새해 첫날 특근을 허용할 리 만무했다. 내 아이디와 패스워드는 여전히 생존 중이었다. 수신자로 ‘본부전체’를 체크한 후 제목란부터 채워갔다.

‘연구소 동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윤기입니다.’

제목만 썼을 뿐인데 가슴속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요동쳤다. 금방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용암이 되어 분출할 것만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까스로 위기상황이 수습되며 멘탈이 안정을 되찾았다. 빈 여백이 자판의 두드림으로 채워졌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한지가 어느새 30여 년이 되었고, 새로이 연구소를 맡아 여러분과 함께 호흡한 것만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정말 세월이 빠르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도와 일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이미 알려드린 바와 같이 어제부로 전 회사를 사직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아 희망찬 새해가 되어야 할 첫날 이렇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여러분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합니다. 불현듯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가는군요. 여러분들과 어색하게 첫 인사를 나누던 순간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웃고 떠들던 시간, 문제해결을 위해 다 같이 머리를 조아리던 때, 원하던 성과를 이루어 환호성을 울리던 날, 심지어는 고함을 지르며 화를 버럭 내던 일까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우리가 함께 한 그 세월은, 우리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시간들의 집합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그런 날들을 생각하며 저는 혼자 미소도 지어보고 안타까워도 하며 또 약간은 후회도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때가 있었는가 하면 저 스스로의 부족함에 실망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 길에 훌륭한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그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이제 여러분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

아마도 저와 함께 해오는 동안 여러분들께서는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해오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법을 주문하기도 했고,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일을 강요하기도 했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지시하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제 자신이 잘 몰라서 그리 한 적이 많습니다. 반면에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뚜렷한 소신을 갖고 제 의견을 고집스레 피력한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제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저 소임을 다함으로서 여러분들과 함께 보다 나은 회사를 만들어간다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려했을 따름입니다.

혹시 그 과정 중에 제가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상처를 드렸다면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분명한 건 잘못된 그 행위조차 개인적인 감정에서 의도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 몸속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열정이 부른 과실이라 생각하시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지난 과거는 그저 과거로 남겨두시고 부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윤기 드림.’

난 교정교열도 빼먹지 않았다. 첫인상은 강렬한 이미지를 주지만 끝인상은 생생한 이미지를 남긴다. 동료들의 머릿속에 새겨질 내 마지막 모습이 오타로 일그러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확인을 끝낸 후 아래에 붙은 송신버튼을 눌렀다. 남은 일은 출장보고서를 작성해 명수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보고서 작성 페이지로 진입했다. 알코올반감기도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지 일순간 간밤의 숙취가 몰려왔다. 누군가가 두개골에 못을 박는 듯했다. 망치질소리에 미우라와의 어제 일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다.

“자, 박 전무. 이제 당신 서명만 남았군요.”

미우라 사장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내 몸이 움찔거렸다. 공명현상에 다름 아니었다. 비밀스런 신상정보에 해당하는 내 신체의 고유진동수까지 그가 꿰뚫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시선을 얼른 넘겨받은 서류로 이동시켰다. ‘5,000,000$’이라는 굵은 아라비아 숫자 아래로 날려 쓴 그의 서명이 보였다. 웃음만큼이나 힘이 넘치는 필체였다. 바로 옆에는 내가 채워야 할 빈 칸이 있었다. 펜을 집어 서명했다. 중학교 때였던가. 아버지의 도장을 훔쳐내 성적표에 몰래 날인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때처럼 손이 마구 떨렸다. 직선이 되어야 할 획들이 상하좌우로 산등성이며 실개천을 그려놓고 있었다. 자동차 차체조립시스템에 유연생산방식이라는 새로운 공법을 적용하는 신기원을 여는 찰나였다. 동료들과 함께 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지금까지 차체를 조립하는 생산라인은, 생산가능한 차종의 수가 제한되어 있었으며 초기에 계획한 차종별 생산대수를 증량하거나 감량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용접이 대부분인 조립공법상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어왔다. 하지만 우린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름하여 유연생산시스템이었다.

무엇보다 산업용 로봇에 부착되는 툴을 범용화 시킨 게 주효했다. 그건 여러 차종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모델체인지에 대한 대응도 훨씬 용이하게 했다. 또 설비와 로봇의 배치에 변화를 주어 차종별 생산량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있었다. 고무줄이 쉬 늘고 주는 것을 보면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우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상생산테스트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이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실제 시스템을 구성해 시험생산을 시도하는 단계만 남아있었다.

아이디어가 개발로 이어져 상용화되기까지는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유연생산시스템 또한 실제 라인에 적용해 해당제품의 대량생산가능성을 입증하기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자금사정이 열악한 우리 회사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가 미우라와 지금껏 협의를 진행해온 건 그의 자금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미우라는 선뜻 자신의 공장에 그 시스템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동의했다. 성공만 한다면 대폭적인 원가절감이 가능해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가인 이상 그 역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원리를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모험에 가까운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나와의 오랜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의 시소를 수평으로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우린 이번 계약에서 시스템 검증이라는 열매의 대가로 기꺼이 로얄티와 인건비를 포기했다. 양산화 성공은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시장개척을 의미했다. 그건 눈부신 매출신장과 함께 가파른 순익 증가로 연결되어 어닝 쇼크를 단박에 어닝 서프라이즈로 반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미우라는 하드웨어를, 우린 소프트웨어를 투자하여 그렇게 공동의 황금알 거위를 키우고 있었다. 불행한 건 나의 퇴직으로 인해 거위가 황금알을 낳기도 전에 위험에 처해버린 사실이었다.

서명이 끝나고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누어가졌다. 미우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약을 자축하려했다.

“계약도 끝이 났고,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저녁이나 함께 합시다. 스시 어때요? 박 전무 스시 좋아하지 않소? 연어알 스시만 빼면 말이오.”

아주 오래 전 사원시절 출장을 왔다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유독 연어알 스시만을 못 먹던 일을 미우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시력이 좋지 않아 간유구를 장복하는 바람에 생긴 그 부작용을 난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시집에서 간단히 사케를 곁들인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 미우라가 2차를 가자며 억지를 부렸다. 요즘 들어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되었다 들었기에 몇 차례 사양을 거듭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전략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수성이 위험을 초래할 것만 같아 아슬아슬했다. 난감해하는 나를 이끌고 그가 찾아간 곳은 낯설지 않은 스탠드바였다.

들어서자마자 중년 마담이 눈웃음과 함께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녀 역시 안면이 있었다. 그는 사업적 기질상 나태함을 용납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의 물결에 동승하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고집스레 단골을 선호했다. 특별히 주문을 한 것도 아닌데 두 사람 앞에는 아이스버킷과 온더락잔, 그리고 양주병이 놓였다. 병목에는 올림픽 시상대에 선 선수들의 목에 걸린 메달처럼 미우라의 이름표가 걸려있었다. 병은 반쯤 비워진 것이 평소 키핑해두고 마시는 술인 듯했다. 타성에 젖지 않고 관성에 안주하는 그의 스타일이 도드라져보였다.

“박 전무, 이번 계약 건 정말 잘 해주셔야 됩니다. 꼭 성공시켜야 해요. 내가 박 전무랑 일을 같이 한 게 한두 해가 아니니 당연히 그리 될 거라 믿지만 말이오. 이번 일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솔직히 말해 박 전무 아니었으면 이 계약,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무쪼록 애 많이 써주세요.”

술잔을 권하면서 미우라는 계약서에 투명잉크로 추가한 내용이 있음을 강조했다. 목구멍을 타고 흐른 미즈와리가 내 동공 위에 적외선필터를 얹었다. 가시범위를 벗어난 글귀들이 내 투시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조건 성공’이라는 조항이 뚜렷이 나타났다. 취기가 확 올랐다. 오늘은 나의 퇴직일이었다. 퇴직과 성공 사이의 방정식을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애를 쓰고 기를 쓰고 용을 썼지만 해(解)는 분모가 0인 수식처럼 불능이었다. 그러나 문제도 풀이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퇴직을 권유해놓고도 출장명령을 내릴 정도로 다급한 회사였다. 토끼 사냥을 마친 쫓겨난 사냥개에게도 충성심은 변할 수 없는 타고난 본능이었다. 맥락이 맞지 않는 어정쩡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미우라 사장께서 나를 그만큼 믿어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도록 하지요.”

난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말과 행동의 순서를 교묘하게 바꾸었다. 말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행동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킨 후 말을 거기에 끼어 맞춤했다. 회사를 떠나도 어떤 식으로든 내가 도울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을 것이었다. 도움이냐 아니냐의 기준이야 자의적으로 결정하겠지만.

“이번에는 말이오. 설계가 완료되는 시점에 도면 검토회의를 할 때 내가 직접 한국으로 갈 예정이오. 그래야 박 전무와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가 한 차례 더 생기지 않겠소? 거기 왜 양곱창집 아직 있지요? 우리가 예전에 같이 목욕하고 나와서 맥주 한 잔하던 포장마차 말이오.”

돌이켜보니 미우라와는 발가벗고 목욕까지 한 사이였다. 15년 전쯤 되려나. 울산 공장에 근무하면서 미우라네 회사의 설비를 수주 받아 제작을 마친 후 시운전을 진행하던 시점이었다. 설비검수를 위해 미우라가 직접 공장을 방문했다. 그때 우린 휴일하루를 틈타 부산의 한 온천에서 목욕을 했고 뒤풀이로 인근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허물없기로 치자면 막역지우(莫逆之友)보다 목욕지우(沐浴之友)가 더 상위개념이라며 내가 우스개를 늘어놓은 것도 그때였다.

“아직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내 대답은 한 마디로 툭 끊어졌다. 마치 커다란 사각칼로 생선머리를 단박에 내려친 기분이었다. 말수가 많을수록 지키지 못할 약속이 늘어날 것만 같은 위기감의 발로에서였다.

“다음에 한국에서 만나면 꼭 거길 한 번 더 갑시다. 그 집이 너무 좋았어요. 곱창도 맛있었지만 서민적인 분위기가 정말 맘에 들었소. 물론 박 전무랑 함께였으니 그랬겠지만.”

“…….”

미우라와의 공적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사적만남이야 더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미우라가 원하는 건 약간 성질이 달랐다. 만남의 약속에는 속임이, 어물쩍 넘기는 데는 숨김이 필요조건이었다. 속임에 비하면 숨김의 죄질이 훨씬 가벼웠다. 그럼에도 자백을 강요당하기보다 고백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난 딜레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위기를 탈출하는 비상구는 술집의 출입문이었다.

출입문으로 아끼꼬가 들어섰다. 미우라에게 그녀는 1인 3역을 소화해내는 뛰어난 배우였다. 낮엔 회사경리로, 저녁엔 대리운전기사로, 밤엔 주부이자 아내로. 그녀를 볼 때마다 난 불빛이 환한 전등을 떠올리곤 했다. 명자(明子)라는 한자 이름이 가져다준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녀의 얼굴에서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박 전무님,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건강하시죠?”

아끼꼬의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며 덧니가 살짝 드러났다. 50대 여성의 천박하지 않은 애교가 눈과 귀를 간질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아끼꼬 부인. 어째 세월이 부인만은 피해가는 것 같습니다. 비법을 좀 전수받아야겠는데요.”

아끼꼬는 미우라의 옆자리에 앉으며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 온도계에 그녀의 높은 체온이 측정되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온도계는 상대적으로 낮은 눈금을 가리킬 것이었다. 내 차가운 손바닥이 진실을 드러낼까봐 심히 저어되었다. 여자의 육감이란 남자의 오감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감각이라지 않는가. 그건 남자가 사냥꾼으로 진화하는 동안 살림꾼으로 진화한 여자의 생존전략 결과물이었다. 흠칫 놀라 맞잡은 손을 재빨리 풀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그래봤자 난 아끼꼬의 육감 자기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 전무님, 오늘 얼굴빛이 굉장히 어두운데요,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세요?”

초라한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그럴수록 결정적인 치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더욱 몸을 움츠리려는 본능이 발동했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는 것쯤이야 누구든 짐작가능한 일이었다. 딱 잡아뗀들 알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아프긴요. 술을 마시다보니 취기가 올라 그만.”

떨리는 말꼬리를 매달리듯 붙잡았다. 내 노력이 안쓰러웠던지 미우라가 호기롭게 변호인을 자처했다.

“고민은 무슨? 오늘 이 미우라가 오백만 불을 탁 안겨줬는데. 아마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소리가 곧 들려올 걸. 그렇지 않소, 박 전무?”

꼬여가는 혀를 풀어보려 미우라가 몸을 외로 꼬았다. 너털웃음마저 회오리가 되어 실내를 맴돌았다.

“아녜요. 오늘 박 전무님 모습은 다른 때와 너무 달라요. 말씀도 잘 안하시고 계속 술만 마시는 걸요.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녜요, 전무님? 여보, 이제 그만 일어나요. 전무님도 쉬셔야죠. 당신도 많이 마신 것 같구요.”

미우라는 아끼꼬의 권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셨다구? 웃기지 마. 여보, 당신이 잘 모르는 모양인데 박 전무가 주당이야, 주당. 내가 잘 알지. 이래봬도 우리가 술벗이 된 게 벌써 25년 세월이야.”

미치지 않았다는 본인의 말이 오히려 정신병의 주요증상이듯 취하지 않았다는 미우라의 말은 만취의 주요증거였다. 더구나 특정대상이 없는 손사래까지. 둘은 합쳐지며 취객을 입증하는 스모킹건의 구실을 톡톡히 했다.

“박 전무. 내가 왜 박 전무랑 술을 마시면 아내를 부르는지 혹 아시오?”

답이 아주 쉬워 보이는 질문일수록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난 그 답이 대리운전이 아님을 간파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두 사람의 술자리마다 그녀는 피니시라인 테이프 역할을 떠맡곤 했다. 세 가지 본업으로 모자라 추가로 알바라도 구한 것일까?

“그저 대리운전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닌 모양입니다?”

“난 말이오.”

그가 말줄임을 말머리에 배치했다. 예사롭지 않았다. 아끼꼬의 어깨 위로 향하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난 청각세포들을 최전방으로 전진시켰다.

“박 전무를 그냥 비즈니스파트너가 아니라 가족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만나온 세월이 25년 아니오. 그 긴 세월이 박 전무란 인간을 알게 해주더군요. 계산적이지 않고 꾀부리지 않는 사람, 무슨 일이든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 이젠 박 전무라면 난 무슨 말을 해도 믿어요. 왜냐하면 절대 남을 속일 사람이 아니란 걸 내가 아니까. 그러니 가족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가족끼리는 뭐든 같이하는 사이 아니겠소. 그래서 난 박 전무와의 자리에 꼭 아내를 불러 함께 했던 것이오. 행여 내 말이 거짓으로 들리면 이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그동안 나 또한 미우라를 완벽하게 신뢰했으며 형님처럼 대해왔다. 그건 가족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가족이란 단어는 유달리 내 죄책감을 건드렸다. 미우라가 가족이란 원의 중심을 향해 구심력을 키우는 동안 난 반대방향의 원심력을 몰래 키워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령 나의 행동이 속인 것이 아니라 숨긴 것일 뿐이라 변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가족이 뭐든 같이하는 사이라는 미우라의 정의가 참이라면, 속임이 아니라 숨김도 죄악이라는 명제 역시 참이었다. 회사의 이익이라는 가면을 씌웠지만 결국 나의 이익을 위해 미우라를 이용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믿음에 따라 포도주가 사랑의 묘약이 되기도 하듯 난 위스키를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달래는 묘약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부터 내 술잔은 스트레이트 잔으로 바뀌었다.


혼자서 각본을 쓰고 출연하고 촬영하고 감독을 맡았던 어젯밤 영상은 거기서 잘려있었다. 뒷부분의 데이터는 기억세포들의 즐비한 시체 속에서 오염되어 재생 불가였다. 그렇다면 계약서의 존재가 걱정이었다. 손가방을 뒤져보았다. 출장경비마저 헛되이 낭비했다는 비난에 대한 경계심이 보호본능을 일깨운 탓인지 그건 가방 속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아직 완전 분해되지 않은 알코올이 내쉬는 한숨에 섞여 빠져나오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노트북 화면에 펼쳐진 출장보고서의 빈칸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보고서 템플릿의 커스터마이징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 고민을 할 필요도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계약금 난에 총 계약금액의 20퍼센트인 백만 불을, 지급일에는 1월 10일경이라 적었다. 춘궁기를 겪는 회사에게 곡식밥은 아니어도 보리개떡 정도는 될 터였다. 첨부자료 난에는 계약서 원본 추후 우편 송부라고 기록했다. 출근길이 막혔으니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내 손가락과 키보드 사이의 간격이 계약서가 거쳐 갈 거리만큼이나 멀어 보였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젠 그 모든 사실에 익숙해져야했고 또 익숙해질 만했다. 마지막으로 명수를 결재자로 선택한 후 결재 버튼을 눌렀다. 몇 년 전 풀코스마라톤 대회의 골인지점을 막 통과하던 순간 꼼짝달싹도 못할 정도의 고통 뒤로 밀려들던 성취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때늦은 공복감이 찾아왔다. 간절히 아이를 바라는 산모의 상상임신처럼 텅 빈 허전함이 불러온 가상공복이었다. 서둘러 노트북을 정리하고 방을 빠져나와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인천의 날씨는 흐렸다. 공항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군소리 없이 잘 구르던 캐리어 바퀴들이 고르지 못한 노면을 만나면서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불만은 저항으로 바뀌었다. 이따금씩 몸체를 흔들기도 하고 끄는 방향에서 이탈하려고도 했다. 어느새 내 몸은 캐리어에 빙의되어있었다. 앞으로의 날들을 똑바로 헤쳐가기 위해서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서스펜션이 필요했다. 고급스런 서스펜션은 고사하고 싸구려 스프링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했다.

주차장은 모터쇼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호텔을 연상시키는 리무진이 있나하면 화려한 꽃과 리본 장식의 웨딩카가 있었고 앙증맞은 미니카가 보이는가 하면 엠블럼만 봐도 다가가기 두려워지는 대형외제차도 보였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청사 가까이로는 통로까지 불법주차가 기승을 부렸다. 주범은 대부분 고가의 차량들이었다. 놈들은 돈이 규범보다 상위개념이라 외치고 있었다. 주차했던 정확한 장소가 기억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리모컨 키를 꺼내 이쪽저쪽으로 문 열림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저 앞에서 궁상맞은 준중형차 한 대가 기죽은 모습으로 방향지시등을 깜빡거렸다.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옮겨 실은 후 차문을 열었다. 조수석 위에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정리해고 당한 잡동사니들의 가녀린 숨소리가 그 속에서 새어나왔다. 이제나저제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학수고대하다 지쳐버린 기색이었다. 나 닮은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화풀이하듯 시동버튼을 눌렀다. 내비게이션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인천대교에 진입하면서 속도가 느려졌다. 차량들이 가다서기를 반복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갓길로 백차 한 대가 지나갔다. 머리에 두른 검은 띠에는 노란 글씨가 뱅글뱅글 돌아갔다. 전방 1킬로미터 사고처리 중. 뒤이어 레커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갔다. 막힘이 곧 해소될 거란 희망에 기대감이 답답함을 용해시켰다. 정체된 내 삶에도 머잖아 백차와 레커차가 도착하겠지 낙관론이 펼쳐졌다.

전화벨이 울리면서 계기판 옆 디스플레이에 명수의 이름이 떴다. 조도를 올리던 머릿속 조명이 다시 깜깜해졌다. 전화 받기 아이콘을 터치하자 들뜬 명수의 목소리가 차량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박 전무님, 출장보고서 잘 받아 보았습니다. 수고 많으셨더군요.”

“…….”

백차와 레커차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 박 전무님 퇴직과 관련해서 본사의 경영진들이 긴급하게 회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를 알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의 어조에 위세를 떠는 듯한 낌새가 확연했다.

“아직도 저와 관련해서 무슨 회의할 내용이 남았나요?”

난 일껏 소화시킨 아니꼬움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박 전무님의 퇴직이 저희로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금번 오백만 불 수주와 관련해서 공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어 특별히 퇴직금 이외에 6개월분에 해당하는 급여를 위로금으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전례가 없었던 만큼 유용하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또 사장님께서 다음 주중으로 퇴임식 자리를 만들라는 지시도 하셨습니다. 그때 순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를 포상으로 직접 수여하시겠다면서요.”

까칠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내 언행에 욱할 만도 했지만 그는 확전을 자제했다. 아니 휴전과 함께 종전선언이라도 하자는 말투였다.

“…….”

내가 말을 아끼며 그의 속내를 가늠하는 사이 그는 혹시라도 전화를 끊어버렸는지 확인하려들었다.

“여보세요? 혹시 지금 어디신가요?”

“조금 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 그럼 운전 중이신 모양이군요. 어쨌든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퇴임식 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안전 운전 하시구요.”

“…….”

대화를 이어갈수록 구차해지는 듯해 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의 음성이 지워지자 위로금과 골드키만 앙금처럼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그건 빤히 보이는 생색내기였으며 말장난이자 언어도단이었다. 말이란 내뱉음으로 사전적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거기엔 소리 외에도 뉘앙스와 시점(時點)이라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의 말에는 이 세 가지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산되어 의미를 퇴색시키다 못해 변질시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위로금과 골드키를 지급하겠다고 의견을 모은 시점이 증거였다. 수주가 확정된 후에야 부랴부랴 결정한 사실만으로도 진심이 담겼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퇴임식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걸 주도했을 명수야말로 국민을 위한답시고 구멍이 숭숭 뚫린 입법 활동을 전개하고선 돌아서서 그 구멍에 서슴없이 빨대를 꽂는 국회의원과 일란성쌍둥이였다.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은 보나마나 권고사직을 부당행위가 아닌 정당행위로 둔갑시키는 선전용 홍보물의 재료가 될 게 틀림없었다. 전단지의 표지모델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퇴임식은 참석하지 않겠노라 굳게 맘먹었다. 난 오늘 이 통화가 마지막 통화이며 지금이 모든 관계가 정리되는 시점이라 규정하면서 들리지 않는 함성으로 보이지 않는 시위를 펼쳤다.


“아이들이 새해맞이 겸 저녁은 외식으로 하자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4박5일의 여행을 다녀온 캐리어가 부려놓은 30년간의 부산물을 정리하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그러지 뭐. 뭘 먹고 싶대?”

가족끼리 서로의 한해 계획을 의논해보자는 아내의 구상은 더없이 시의적절해 보였다. 머릿속에서 직장생활 정리의 시간이 새해첫날 계획의 시간으로 대치되었다. 아직은 정리보다 계획이 훨씬 어울리는 나이란 막연한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생선회를 먹고 싶다네요. 왜, 아파트 입구에 횟집 하나 있잖아요? 당신이 밑반찬 넉넉하게 준다고 좋아한 집. 거기 가쟤요.”

포를 뜨는 횟집아저씨의 모습이 선했다. 그는 IMF 시절 말단 샐러리맨에서 횟집사장으로 벼락 승진한 기념비적 인물이었다.

“응, 거기 괜찮더라구, 비싸지도 않고. 그럼 이거 정리 마치는 대로 그리 가는 걸로 하지.”

아이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 손을 더욱 잽싸게 놀렸다. 그때 바닥에 놓인 휴대폰이 한 차례 사지를 떨어대더니 바로 발작을 멈추었다. 미우라의 문자였다.

‘박 전무. 방금 내가 메일을 한 통 보냈소. 그것 좀 확인해주겠소? 급한 용무이니 가능하면 빨리 확인해주시오.’

행간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늦게 나의 퇴직사실이 알려진 것일까? 섣부른 추측을 경계했지만 불길한 예감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노트북의 SSD(Solid State Drive) 구동시간마저 못미더워 핸드폰으로 메일함에 접근했다.

‘박 전무, 보시오. 우선은 이런 메일을 보내게 되어 미안하오. 하지만 나로서는 많은 고민 끝에 보내는 글이니 이해해주길 바라오.’

미안, 고민, 이해. 하나같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단어들이었다. 내 몸은 긴장, 초조, 불안으로 응답했다.

‘어제 박 전무로부터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의 회사 이익을 생각했다면 안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 한 것은 아마도 그간 쌓아온 우리 우정 탓이겠지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오. 하지만 박 전무가 없는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건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일 아니겠소? 물론 퇴직을 하고서도 변함없이 도움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계약의 당사자 신분이 아니면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할 수도 없을뿐더러 책임과 권한이 모호해지는 만큼 그 역할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요. 우리로서는 프로젝트의 성공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소.

결국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우린 이번 계약을 해약하기로 결론지었소. 박 전무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 딸린 식솔들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에 내린 결정이오. 프로젝트의 실패는 투자금의 회수불가라는 사태를 낳을 것이고 그로 인한 손실은 회사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겠지요. 박 전무와의 우정,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 회사와 종업원에 대한 책임 또한 무시할 수 없어 해약이라는 최후수단을 동원하게 된 점 부디 양해 바라오.

계약서의 작성이 이미 완료된 상태이니 해약에 대한 책임은 모두 우리 몫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소. 계약금 20%는 아무 조건 없이 지불되어야겠지요. 그래서 박 전무께 염치없는 부탁을 하려 하오. 만약 아직 회사에 계약서가 전달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걸 소각시켜줄 수는 없겠소? 계약금을 날리지 않겠다고 이리 발버둥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이윤에만 집착하는 사업가의 탈을 벗지 못하나보오. 설사 박 전무가 내 뜻을 따르지 않는다 해서 내가 원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나에게 이번 계약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으니 말이오. 어떤 결과로 진전되더라도 우리 관계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니 거기에 구애받지 말고 알아서 판단해주면 고맙겠소. 그럼 다음에…….’

찾지 못한 퍼즐조각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그건 양심이 일으킨 취중진담 쿠데타였을까? 아니면 취중진담을 빙자한 고자질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취중본심에서 우러난 심술이었을까? 어느 쪽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없었지만 어느 쪽도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을 믿을 수조차 없었다. 중요한 건 모든 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말았다는 점이었다. 더는 도망갈 수도 없고 더는 미우라를 희생 제물로 삼아서도 안 되었다. 난파선의 잔해를 붙잡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표류생활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난 가방에서 계약서를 끄집어내어 찢기 시작했다. 두 겹으로 접어 한 번 크게 찢은 후 그걸 포개어 다시 찢고 또 그걸 포개어 찢었다. 찢고 또 찢어 가루로 만들어버릴 심산이었다. 찢은 조각들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아울러 이번 계약이 파기되고 말았음을 전하는 메일을 명수에게 다시 써 보내기로 결심했다. 보고번복의 배경과 핑계는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6개월분의 위로금도 당연히 반납이라는 절차를 거쳐야할 것이다.

“여보, 우린 준비 다 되었어요. 빨리 나오세요.”

출발신호 총소리를 들은 단거리 선수마냥 난 스타팅블록의 페달을 힘차게 밀었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도사려있던 내 몸이 활짝 펴지며 거침없이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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