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밤 소멸의 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PTSD)
"어떤 일을 잊고자 할수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미셀 드 몽테뉴-
기억에 상처를 입게 되면 작고 평범한 기억들은 사라진다. 대신 잔인하고 서글프고 끔찍한 기억들만 남게 된다. 유년 시절 나의 아버지의 대한 기억은 다가갈 수 없는 거칠고 커다란 산(山) 같은 분이셨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모욕적인 폭언. 삶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집에 오시는 날
밤은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의 밤이었다.
" 내가 니 같은 걸 만나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산다"
" 머라 카노. 누가 할 소리를 누가 하노 "
" 여자가 어데서 큰 소리를 내노. 미친나 니"
" 하모예. 내 미친 거 인제 알았나. "
" 이기 돌았나 어데 눈을 치키 뜨고 달라드노"
"와 또 칠라고. 치봐라. 또 치봐라 "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너무 어렸던 것일까? 아니면 정신상담 의사들이나
메디컬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PTSD)에 의한 '기억의 강제적인 봉인'으로 분명 내 기억 속에 있어야 할 아버지의 기억이 단 한 장면도 없다.
사라진 것이다. 송두리째. 아니 감춰지고 봉인되어 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무려 14년의 기억이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게 될 무렵부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커다랗고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반항아 가 되었다.
" 엄마! 나 내일 수업료 하고 우유급식비 내야 된다"
" 내일 학교에 안 내면 내 또 교무실에 불리 간다"
" 내일은 꼭 돈 줄 수 있지. 엄마 응 엄마 "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연탄불에 이제는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프라이팬에 참기름과 소금 간이 잘 발라진 김을 연신 뒤집으며 굽고 또 굽기만 하셨다.
" 밥이나 무라 . 니 좋아하는 김 하고 밥이나 무라"
" 엄마 진짜 내일은 돈 내야 된다. 진짜다. 응 엄마"
" 퍼뜩 밥이나 묵으라. 알았다 고마 알았으니까 밥 무라"
고봉으로 퍼담은 윤기가 좌르르 쏟아지는 쌀밥 한 공기. 반들반들하게 구워져 커다랗고 낡은 시커먼 재봉가위로 잘린 김 수십 장. 그리고 고춧가루 양념이 유난히 빨갛게 배인 잘 익은 김치 한 접시.
세상 어느 것보다 맛난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 그리고 사랑이 담긴 밥상 이면 까까머리 중학생의 배고픔은 금세 두둑한 배를 두드리는 행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날밤.
행복으로 두둑한 어린 마음에 또 하나의 봉인될 기억을 만든
기나긴 밤이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마치 훈련된 병사처럼 일사불란 하게 나와 여동생에게 다급하게 소리치셨다.
"느그 아부지 술 먹고 지금 집에 오고 있단다"
" 네 동생 데리고 작은 아부지 집에 가 있거라 "
" 엄마 내 가기 싫다. 그냥 책상 밑에 조용히 숨어 있으면 안 되겠나?"
"안된다 퍼뜩 가라. 어서 "
"아브지 술 마이 묵었다. 니 밤새 잠도 못 자고 학교 어째 갈라카노. 어서 동생 데리고 가 있거라 "
"엄마가 아침에 데리러 갈 거다. 책가방 챙기고 얼른 "
막 잠이 든 동생을 흔들어 깨워 책가방을 메어주고.
나도 책가방을 챙겨 혹시나 아버지와 마주칠까
쏜살같이 동생의 손목을 잡고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
" 정신 단디 챙기라 가시나야. 이 칼 때가 아이다."
" 오빠. 내 또 작은 아부지 집에 가나. 내 가기 싫다"
" 머라카노. 가시나. 엄한 소리 하지 말고 가자. 빨리"
동생과 함께 탄 버스 차창 밖으로 수많은 가로등 불과
저마다의 행복한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들의
불빛들이 악마의 미소 같은 밤을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