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돈을 내지 않은 우유는 맛이 없었다.

by 인성미남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분명 당신의 잘못이다".

-빌 게이츠-



동생이 작은 아버님 댁에 가기 싫어했던 이유는

춘장 냄새나고 밀가루 먼지가 가득한 창고 방에서

자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작은 아버지께서는 중국집 을 하면서 살고 계셨고. 오늘 같은 끝나지 않을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있는 날은 나와 여동생은 어김없이

춘장 냄새나고 밀가루 먼지 가득한 창고 방에서 구겨지듯 자야만 했다.

참 얄밉게도 아침은 밝아도 너무 환하게 밝아왔다.

아침에 온다고 했던 엄마는 학교 등교 시간이 다

되어 가도 오지 않으셨다.

놀라거나.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매번 그랬으니까.

다만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 세상이야. 휴대폰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금세 전화 걸어

'엄마 괞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학교 갔다가

집으로 갈게'.라고 통화 라도 하겠지만

형편이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던 우리 집에 전화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아무 일 없기를 기도 하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칫밥을 먹어 본 적이 있는가?

배는 고프니 먹긴 해야 되는데. 작은아버지 식구 그러니까 내게는 사촌 여동생과 남동생 두 명 그리고 작은 어머님과 의 아침 식사 자리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냥 있는 반찬에 있는 밥 두 공기 더 퍼서 먹고 가면 되는 거지만

모래알을 씹는 듯 매번 목에 걸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 와 반찬이 맛이 없나? 조금이라도 더 묵지"

" 학교 마치고 오면 짜장면 만들어 줄 테니까. 맛이 없더라도 묵고 가래이"


작은 어머님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작은아버님 은 더더욱 말이 없으셨다.

커다란 화구가 있는 주방에서 연신 춘장과 갖은 채소를 넣고 짜장면 소스를 볶고 또 볶기만 하셨다.


"도시락은 내가 챙기났으니까 동생 거 하고 니꺼 챙겨서 얼른 학교 가거라"

"희야(행님의 대구식 사투리 ) 학교 잘 갔다 와서 내 하고 놀자 응 ?"

"그래 오빠야 내도 학교 갔다가 바로 올 테니까 같이 언니야 하고 퐁퐁(트램펄린 놀이) 타러 가자"

"퐁퐁 말고 뽀글이 (80년대 전자오락 게임 일종) 하러 가자 희야 내 돈 많데이 알았제 "


작은아버지 식구들은 아무 내색 없이 주눅 들고 불안해하는 우리 둘 남매에게 마치 명절날 오후처럼

덤덤하게 대했다.

학교 마치고 오면 엄마가 와 있을까? 아버지는 집에 계실까? 오늘은 아버지가 술을 또 드실까?

까까머리 동그랗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중학생인 나는

학교로 걸어가는 내내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 니는 맨날 천날 그림만 그리고 있노 공부 좀 하거래이 아부지 알면 난리날끼다 "

" 이 자슥아 남자가 맞고 다니는 게 어딨노. 남자는 일단 세 번은 죽어라 참고 그래도 니를 괴롭히고

때리면 한대 씨게 치받아 뿌라. 절대 니 먼저 때리면 안된데이 알재? "


내가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들은 칭찬이나 사랑한다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중학생 녀석이

아주 평범한 하루에 듣고 마는 어머니의 꾸지람,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멋진 아버지의 멋들어진

응원의 말이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유리병 같은 나의 가족의 위태로운 울타리가 정체도 없는 모진 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삐~~ 아 ~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

" 아~ 조용! 조용! 이 눔의 시키들 누가 떠들라고 그랬어"

" 아~ 아~ 수업료 하고 우유급식비 안 낸 2학년 3반 56번 OOO ,34번 OOO 교무실로 온나 이상~"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학우들 이 다 듣고 있는 학교 방송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죽고 싶었다.

가난하다고 감정마저 없는 게 아니다. 가난하다고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니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불쌍하게 보는 건 더더욱 아니다.

어머니가 오늘 작은아버지 댁에 수업료와 우유급식비를 들고 오실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정말 교무실에 불려 가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당당하게 우유 먹고 싶었는데, 눈물이 커다랗고 못생긴 검정 뿔테 안경으로 스며들었다.


"드르륵 탁."


교무실 문을 여는 시간이 아득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쌤요 저 부르셔서 왔으예"

"그래 왔나 거 앉아라. 같이 온 니도 같이 앉고 "

"알제? 선생님이 느그들 오라고 한 이유 알제?"


불려 온 까까머리 두 명은 모기소리 보다 적게 대답했다.


"네". . . . "네"

"선생님이 몇 번 느그들 불러서 이야기를 했는데,

우째 느그들이 한 약속을 안지키노"

" 어제도 내일 낸다 했다 아이가?"

" 그람은 내일 또 낸다 하겠네 느그들"

" 이 자슥들 혹시 수업료 하고 우유급식비 받아서 삥땅 친 거 아이가"

" 아입니다. 샘요. 진짜 엄마가 오늘 주셨는데 지가 깜빡하고 가방에 넣은 줄 알고

그냥 학교에 오늘 바람에 죄송합니다. 내일은 꼭 챙겨서 낼께예 "

"지도 아침에 늦잠 자가 학교 늦을까 봐 뛰어 온다고 못 챙기고 왔으예"


당돌한 두 명의 까까머리는 어설픈 거짓말로 선생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확실하재?" " 느그 선생님 속이는 거 아이제?" " 내일 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꼭 챙기 온나"

"이 자슥들 좀 있음 고추에 터래기도 씨꺼멓게 더 날 자슥들이 마! 선생님 속이면 느그

고추에 터래기 다 뽑아 뿔기 데이 "

"네 내일은 꼭 갖고 올께예 샘요" " 네 지도 꼭 갖고 올께예 쌤~~"

"알았다 이제 가가 수업 준비해라"

"네 쌤~"


어른이 되어 나중에 동창회 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하면 그때 나와 내 친구에게 매일 같이 수업료와 우유 급식비를 독촉했던 선생님은 나와 내 친구가 한차례 꾸지람을 듣고 수업준비를 하러 교무실을 나갈 때마다 의자를 물리시고 교무실 창가로 가서 운동장을 말없이 쳐다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더 이상은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없었졌던 그 가을에 말없이 운동장을 쳐다보셨던

그 선생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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