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지 않은 우유는 맛이 없었다.
-빌 게이츠-
그냥 있는 반찬에 있는 밥 두 공기 더 퍼서 먹고 가면 되는 거지만
모래알을 씹는 듯 매번 목에 걸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 와 반찬이 맛이 없나? 조금이라도 더 묵지"
" 학교 마치고 오면 짜장면 만들어 줄 테니까. 맛이 없더라도 묵고 가래이"
작은 어머님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작은아버님 은 더더욱 말이 없으셨다.
커다란 화구가 있는 주방에서 연신 춘장과 갖은 채소를 넣고 짜장면 소스를 볶고 또 볶기만 하셨다.
"도시락은 내가 챙기났으니까 동생 거 하고 니꺼 챙겨서 얼른 학교 가거라"
"희야(행님의 대구식 사투리 ) 학교 잘 갔다 와서 내 하고 놀자 응 ?"
"그래 오빠야 내도 학교 갔다가 바로 올 테니까 같이 언니야 하고 퐁퐁(트램펄린 놀이) 타러 가자"
"퐁퐁 말고 뽀글이 (80년대 전자오락 게임 일종) 하러 가자 희야 내 돈 많데이 알았제 "
작은아버지 식구들은 아무 내색 없이 주눅 들고 불안해하는 우리 둘 남매에게 마치 명절날 오후처럼
덤덤하게 대했다.
학교 마치고 오면 엄마가 와 있을까? 아버지는 집에 계실까? 오늘은 아버지가 술을 또 드실까?
까까머리 동그랗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중학생인 나는
학교로 걸어가는 내내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 니는 맨날 천날 그림만 그리고 있노 공부 좀 하거래이 아부지 알면 난리날끼다 "
" 이 자슥아 남자가 맞고 다니는 게 어딨노. 남자는 일단 세 번은 죽어라 참고 그래도 니를 괴롭히고
때리면 한대 씨게 치받아 뿌라. 절대 니 먼저 때리면 안된데이 알재? "
내가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들은 칭찬이나 사랑한다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중학생 녀석이
아주 평범한 하루에 듣고 마는 어머니의 꾸지람,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멋진 아버지의 멋들어진
응원의 말이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유리병 같은 나의 가족의 위태로운 울타리가 정체도 없는 모진 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삐~~ 아 ~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
" 아~ 조용! 조용! 이 눔의 시키들 누가 떠들라고 그랬어"
" 아~ 아~ 수업료 하고 우유급식비 안 낸 2학년 3반 56번 OOO ,34번 OOO 교무실로 온나 이상~"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학우들 이 다 듣고 있는 학교 방송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죽고 싶었다.
가난하다고 감정마저 없는 게 아니다. 가난하다고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니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불쌍하게 보는 건 더더욱 아니다.
어머니가 오늘 작은아버지 댁에 수업료와 우유급식비를 들고 오실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정말 교무실에 불려 가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당당하게 우유 먹고 싶었는데, 눈물이 커다랗고 못생긴 검정 뿔테 안경으로 스며들었다.
"드르륵 탁."
교무실 문을 여는 시간이 아득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쌤요 저 부르셔서 왔으예"
"그래 왔나 거 앉아라. 같이 온 니도 같이 앉고 "
"알제? 선생님이 느그들 오라고 한 이유 알제?"
불려 온 까까머리 두 명은 모기소리 보다 적게 대답했다.
"네". . . . "네"
"선생님이 몇 번 느그들 불러서 이야기를 했는데,
우째 느그들이 한 약속을 안지키노"
" 어제도 내일 낸다 했다 아이가?"
" 그람은 내일 또 낸다 하겠네 느그들"
" 이 자슥들 혹시 수업료 하고 우유급식비 받아서 삥땅 친 거 아이가"
" 아입니다. 샘요. 진짜 엄마가 오늘 주셨는데 지가 깜빡하고 가방에 넣은 줄 알고
그냥 학교에 오늘 바람에 죄송합니다. 내일은 꼭 챙겨서 낼께예 "
"지도 아침에 늦잠 자가 학교 늦을까 봐 뛰어 온다고 못 챙기고 왔으예"
당돌한 두 명의 까까머리는 어설픈 거짓말로 선생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확실하재?" " 느그 선생님 속이는 거 아이제?" " 내일 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꼭 챙기 온나"
"이 자슥들 좀 있음 고추에 터래기도 씨꺼멓게 더 날 자슥들이 마! 선생님 속이면 느그
고추에 터래기 다 뽑아 뿔기 데이 "
"네 내일은 꼭 갖고 올께예 샘요" " 네 지도 꼭 갖고 올께예 쌤~~"
"알았다 이제 가가 수업 준비해라"
"네 쌤~"
어른이 되어 나중에 동창회 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하면 그때 나와 내 친구에게 매일 같이 수업료와 우유 급식비를 독촉했던 선생님은 나와 내 친구가 한차례 꾸지람을 듣고 수업준비를 하러 교무실을 나갈 때마다 의자를 물리시고 교무실 창가로 가서 운동장을 말없이 쳐다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더 이상은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없었졌던 그 가을에 말없이 운동장을 쳐다보셨던
그 선생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