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위로 와 산자를 위한 위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君聖臣忠 父慈子孝(군성신충 부자자효)
임금이 거룩하면 신하가 충성스럽고,
아버지가 仁慈(인자)하면 그 자식이 효도한다. (王良)
상갓집으로 아버지와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시 돌아오니 문상객들이 어제 보다 많이 보였다.
3일장이니 아버지는 발인하는 당일까지 계시다가 집으로 가시기로 하셨고. 급하게 연락을 받고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바람에 회사에 제대로 이야기 도 못한 나는 회사에 연락하여 연차를 쓴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께서는 걱정 말고 회사에 출근하라고 하셨지만
왠지 모르게 아버지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휴가 아닌 휴가를 내었다.
일에 지쳐 있었던 나에게 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 하시려는 아버지의 생각과 겹쳐졌다.
" 니 회사 가야 되는 거 아이가"
"아뇨 아버지 회사에 이야기하고 며칠 쉬기로 했어요"
" 괜않겠나? 회사에 지장 없겠나? 고마 내일모레 데리러 오면 되는데 괜않겠나?"
아버지는 걱정하시는 듯해도 내심 좋으셨나 보다
장성한 아들이 아니 이제 50을 넘겨버린 아들이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겠다고 하니
괜스레 으쓱해지셨는도 모른다.
아버지와 1박 2일로 여행을 간 기억이 없다.
당일치기 여행은 가족들과 함께라는 조건으로 몇 번 갔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항상 불안 불안했기에 가족들이 아버지와 동행하여 여행하는 걸 싫어했다. 특히 어머니가 완강하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을 너무나 가기 싫어하셨다.
" 느그 아버지랑 여행 안 간다 내는"
" 같이 가가 그 까탈스러운 영감탱이 수발을 어찌 하노 내는 못한다"
" 갈라면 느그 끼리 가거라 내는 집에 있을란다"
아버지 와의 여행이나 외출을 꺼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일단 아버지께서는 아버지 위로 는 아무도 없으시다. 그 말은 대통령이 와도 호통치시고 나무라실 분이라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말 그대로 아버지는 권위주위에 화신이시다.
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외식을 할라 치면 온통 아버지의 호통이 언제 나올까 라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선다.
" 거 보소 이기 와 이리 맛이 싱거운교" " 소금 가 오소 , 싱거버서 묵을 수가 없네"
" 밥을 머 쌀농사 지가 가오나 왜 이리 늦노"
익숙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불만 사항이 나오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서 만만의 준비를 다해놓는다. 특히 어머니의 아버지 신경 긁기 신공이 나올라 치면 아예 내가 나서서 사전 봉쇄를 한다.
" 엄마 아버지 드실 때 아무 말씀 마세요. "
" 잘 드시고 계시니까 괜히 이것저것 드셔보라고 권하지도 마셔요"
"와 내가 머라카나" " 느그 아부지 내가 안 챙기면 또 머라 할끼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에 대해 자식들이 듣기 민망할 정도의 아버지 험담을 하곤 하신다.
어머니가 아버지 험담을 자식들에게 늘어놓는 그날은
분명 아버지와 부부 싸움을 하신 날이다.
"내가 몬 산다. 느그 아부지 땜에 " " 아침에 밥 묵을때 먼지 난다고 청소는 밥묵고 이따가 하라고 해도 밥 다 식고 국 다 식을 때까지 청소하다가 밥상머리에 앉아가꼬 밥이 와 차갑노 국이 와 식었니 온갖 잔소리를 다한다 아이가 내가 기가 막히가"
그러다가 내가 한 번씩 아버지 말씀에 욱 할 때가 있어 화를 내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버지 편을 드시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게 빌라고 만 하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 이시니 아버지가 미워도 원망스러워도 항상 아버지 편에 서 계신다.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그 모든 기억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으시나 보다.
속이 쓰려도 , 보기 싫으셔도 중요한 순간엔 아버지가 최우선이셨다.
두 분이 매일 같이 투닥거리고 말다툼을 하셔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속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매일같이 투닥거리시고 사소하게 싸우시는 걸 반복하며 지금까지 사실수가 있는지 말이다.
자식들을 위해 참고 사셨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 어머니의 한(恨) 맺힌 원망의 모습과
유년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싸움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성장한 나의 기억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끊어낼 수 없는 애증의 천륜(天倫) 고리 였다.
가족들의 이유 있는 따돌림을 당신은 알고 계실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버지와 함께 갔던 동네 목욕탕의 따뜻함과 넓어도 너무 넓었던 아버지의 등을 고사리 손으로 때를 밀어 드렸던 기억. 그 이후로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따뜻함의 기억이 지금의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이 모든 것의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가장의 모습이 아닌 가족들에게 원망받고 외면받는 쓸쓸한 가장의 모습으로 살고 계신 아버지의 얼굴의 주름이 소주 한잔을 연거푸 드시는 내내 더 많은 굴곡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휴가 같지 않은 휴가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여 수술이 잘되어 지금은 완쾌하셔서 정기적인 검진과 철저하신 자기 관리로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그 후유증으로 외출을 꺼리시고 여행은 아예 가실 생각을 안 하시던 차에 2박 3일에 아버지와의 여행이 되어 버린 이 시간들을
나는 잘 보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친구분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위로와 산 자를 위한 위로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