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길 잃은 대한민국 교육

'정답'을 찾는 교육에서 '가치'를 만드는 교육으로

by 인성미남

“선택과목이 너무 많아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결국 내신에 유리한 과목, 소위 ‘꿀과목’만 찾게 돼요.”

최근 도입된 '고교학점제'¹를 겪는 한 고등학생의 목소리입니다. 학생 각자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게 하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 시스템이 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위험 신호입니다. AI가 세상의 모든 규칙을 바꾸고 있는 지금, 우리의 교실은 여전히 과거의 지도에 매달려 길을 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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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공식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미로 한가운데에서 한 학생이 길을 잃고 불안하게 서 있는 모습.


'선택'의 역설: 입시의 굴레에 갇힌 교실


고교학점제의 이상은 학생들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자기 주도성'의 함양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입시 경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당장의 내신 등급과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 학생들이 쏠리고, 비인기 과목이나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깊이 있는 탐구 과목은 외면받는 '선택의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학생들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최종 목표가 단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²과 정량적 내신 등급에 묶여있는 한, 교육 과정의 어떤 변화도 결국 '입시를 위한 최적의 경로 찾기'라는 게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상에 없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 해결책을 찾는 '설계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실은 여전히 후자가 아닌 전자를 길러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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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 위로 똑같은 모양의 학생들이 지나가고, 로봇 팔이 학생들의 이마에 '1등급' 도장을 찍고 있는 모습. 획일적인 입시 교육을 비판하는 상징적인 일러스트


대학의 대전환: 'AI 조교'가 열어갈 미래 교육


고등학교의 문제가 입시의 굴레라면, 대학은 '존재의 이유'를 질문받고 있습니다. AI가 최고의 석학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일까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자격증’ 이상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대학이라는 상아탑은 머지않아 붕괴할지 모릅니다.

그 해답은 역설적이게도 AI 그 자체에 있습니다. 대학이 모든 학생에게 **'AI 조교(TA)'**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융합 교육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AI 조교는 지식의 장벽을 허무는 '개인 교사'가 됩니다. 인문학도에게 데이터 과학의 코드를 철학적 개념에 비유해 설명해주고, 공학도에게는 개발 중인 기술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던지는 식입니다.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융합 연구의 문이 모든 학생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AI 조교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파트너' 역할도 수행합니다. "자율주행차 도입에 따른 도시 교통 시스템 설계"라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팀을 이뤄 협업하도록 이끕니다. AI는 이 과정에서 데이터 분석가, 프로젝트 매니저, 비평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학생들이 교실 밖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습니다.


이 모델이 구현된 대학은 더 이상 지식 전달 기관이 아닙니다. 학생 스스로 AI라는 최고의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전공의 벽을 넘어 마음껏 지식을 융합하며,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통섭형 인재'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시스템의 '수술'이 시급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대학이 'AI 조교'를 통해 기술적, 구조적 혁신을 이룬다 해도,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차가운 AI가 지식을 가르칠 때, 뜨거운 인간의 마음과 윤리는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기술의 진보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바로 '교사의 새로운 역할'과 '인문학적 가치'의 문제입니다.


(5부에서 계속)


용어해설 (Glossary)


¹ 고교학점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 학생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을 목표로 합니다.

²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CSAT).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매년 1회 시행되는 표준화된 시험으로, 대한민국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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