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재가 머물고 싶어 하는 나라를 향하여
“최고의 공대생들이 자퇴서를 내고, 다시 수능 시험장으로 향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의과대학입니다.”
한 신문 기사의 첫 문장은 대한민국 인재 생태계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줍니다. 지난 5편의 긴 여정을 통해 우리는 AI 패권 경쟁의 현실부터 교육의 철학적 문제까지 깊이 있게 탐색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교육 시스템으로 인재를 길러낸다 한들, 그들이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의대 쏠림' 현상은 단순한 직업 선호도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최고의 이공계 인재들을 더 이상 품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슬픈 자화상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재 파이프라인은 입구와 출구 양쪽에서 심각한 누수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입구에서는 기초과학과 공학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출구에서는 어렵게 길러낸 핵심 인재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두뇌 유출(Brain Drain)'¹ 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과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의 현지 잔류율은 70%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우리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키운 최고의 두뇌들이 그들의 지식과 재능을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성장을 위해 쏟아붓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입구는 좁아지고, 출구는 활짝 열린 구멍 난 파이프라인. 이것이 'AI 코리아'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요? 높은 연봉 때문만이라는 분석은 피상적입니다. 더 깊은 곳에는 '존중의 부재'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성과와 논문의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² 만을 중시하며, 10년, 20년이 걸리는 기초과학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국가의 자산'으로 존중하기보다, 경직된 조직 문화 속 '부품'으로 취급하는 현실. 이것이 그들을 지치게 하고 떠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결국 인재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라고 느끼는 곳, 자신의 연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해주는 곳으로 흐릅니다.
인재 유출을 막는 것을 넘어, 해외의 인재들마저 찾아오는 '매력적인 국가'가 되기 위한 국가적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스타 과학자'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영웅화가 필요합니다. BTS가 K-팝의 위상을 높였듯, 특정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국가적 영웅으로 대우하고, 그들의 연구에 파격적인 지원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둘째,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문화'**를 조성해야 합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10년 이상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대폭 확대하고, 실패의 경험마저도 소중한 자산으로 축적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글로벌 인재를 위한 개방적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해외 석학이나 연구자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글로벌 연구 허브를 만들고, 경직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대한민국을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AI 코리아'는 단순히 뛰어난 AI 기술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담은 **'데이터 주권'**을 확립하고(1, 2부), AI에 종속되지 않는 **'생각의 주권'**을 가진 시민을 키워내며(3부), 정답 사회를 넘어 **'질문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4, 5부)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그 인재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고 싶어 하는 나라'**를 만들 때(6부), 비로소 그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 6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찾아낸, AI 시대 대한민국의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이자 미래입니다.
용어해설 (Glossary)
¹ 두뇌 유출(Brain Drain): 한 나라의 고급 인력(과학자, 기술자, 의사 등)이 자국보다 더 나은 조건의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국가 경쟁력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²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IF): 특정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다른 논문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학술지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사용되며,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평가할 때에도 중요하게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