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방식

엄마의 청소법

by 하나

청소를 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내 생활의 1순위가 되었다. 집이 조금만 어질러져도 숨이 막히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흐트러져 있거나 더러운 것들은 모조리 다 치우고 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방에서 조금이라도 불쾌한 냄새가 나면 환기를 시켜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두어 시간에 한 번씩은 창문을 열어 공기를 통하게 해야 한다. 남들에게는 깔끔 떠는 성격이라 말하고 다니지만, 이것은 사실 엄마로부터 습득한 생활 방식이다.


할머니 집에 얹혀살았던 우리 집은 15평도 안 되는 크기였다. 노후되어 방음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여름이면 곰팡이가 슬었고 겨울이면 수도가 동파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아기자기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던 엄마는 남편의 바람과 자식의 방황, 그리고 생활고로 인해 모든 바람을 상실했다. 영양사로 일하며 달에 13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던 엄마가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청소나 빨래나 끼니를 챙기는 것 정도였다. 청소와 빨래는 몸으로, 요리는 식당에서 가져온 식재료들로 이루어졌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주말 내내 혼자 도배를 했고, 가구의 배치를 바꿨다. 고작 몇 달도 채 가지 않아 다시 곰팡이가 슬었지만, 깨끗한 걸레로 벽을 닦아대는 걸로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을 유보시켰다. 엄마는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리 몸이 고돼도 청소와 빨래를 했다. 어떻게든 집을 깨끗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밀대를 사용해 방을 닦는 법도 없었다. 손으로 닦아야 구석구석 잘 닦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랬다. 결과적으로 그 오래된 집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법이 없었다. 대문을 열면 오히려 기분 좋은 빨래 냄새가 몸을 감쌌다.


허리를 한껏 숙이고 입으로 욕을 내뱉으며 청소를 하던 엄마의 뒷모습. 밤잠을 자지 못한 내가 낮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엄마는 걸레를 쥐고 소리를 질렀다. 자신만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이 억울하다, 모두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엄마가 욕을 하는 게, 그리고 앓는 소리를 하는 게 꼭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엄마가 거실에 누우면 나는 꼭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그러면 엄마는 역시 내 딸 밖에 없네, 했다. 그 한 마디로 나는 죄책감을 씻었고, 아빠도 언니도 아닌 엄마의 편이 되었다. 그 기억 하나로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엄마 편일 것이다.


엄마는 요즘 청소와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했다. 언니와 내가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 그랬다.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주 기본적인 것뿐이었다. 깨끗한 집과 맛있는 끼니, 항상 뽀송뽀송한 빨래와 이불. 매일 엄마 손에 씻기고 입혀졌던 나는 특별한 말이나 일 없이는 바깥에서 무시를 받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받은 편지에는 '너는 집이 잘 살아서 좋겠다'라고 쓰여있기도 했다. 엄마는 그걸 보고 한참을 웃었다.


매일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것처럼 보였던 엄마의 행동에 숨이 막혔던 적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청소가 엄마가 내게 줄 수 있었던 최대한의 애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청소를 했다. 기본적인 걸 제대로 못하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내가 나를 놓고 싶은 순간이 와도 그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청소를 한 뒤에 집을 나와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또 청소를 했다. 발에 밟히는 먼지가 하나도 없었다. 빨래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찼다.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의 청소가 끝났다.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엄마가 내게 그랬듯, 내게도 청소가 애정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최대한은 아니었으면 했다. 더 많은 일을 해도 된다고 허락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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