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가족이 있다는 것
내 동생은 마음이 아픈, 마음의 병이 있다.
며칠만에 전화한 동생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조심스럽게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그 끝에 동생 본인의 건강과 컨디션을 물어보니
요즘 헛배가 부른 느낌이고 살도 찌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왜 그럴까 하면서 병원에도 가보라고 하고 나이가 들면 예전과 똑같이 먹어도 살이 찌기 마련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
그리고 이젠 조금씩 운동을 해줘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통화를 끝냈는데
잠시 후 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운동을 하면 몸이 너무 아파서 운동을 못하고 있고 운동하기가 무서운데 왜 그런 소리를 했냐며 화가 나서 따지듯이 이야기를 한다.
아프다기에 불편하다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언을 해 준 것 뿐인데 그것이 어떤 감정을 또 건드린 모양이다.
알고보니 남편도 똑같은 반응을 했던 거 같다.
내 동생은 마음이 좀 아픈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착하고 순둥순둥하지만 엉뚱한 매력이 있는 귀여운 아이였는데 성장하는 과정, 사회인이 되는 과정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경험들이 쌓이게 되고 그 아이의 본성과 결합되면서 언제부턴가 한번씩 분노를 참지 못해 폭발하고 다 뒤집어 엎고 일하던 곳을 나오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멀쩡한 듯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정기적으로 분노를 폭발하기를 반복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이제는 화를 낼 타이밍이 전혀 아닌데도 화를 내는...
이 동생의 집에서 차로 1시간 여 거리에 살고 계신 부모님은 그 애가 처음 난리를 치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올 때 연락받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올때부터 지금껏 늘 조마조마 노심초사하며 대기하고 계신다. 언제 갑자기 폭발할 지 모르기 때문에.
같이 사는 제부나 아이들은 더 힘들 것이다.
문제는 본인이 전혀 ‘병식’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되니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 가족들이, 또 전혀 모르는 타인들 조차도 본인을 화나게 하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가족들 조차도 이 사람이 왜 화가 난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고 이해를 할 수 가 없으니 더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공부하느라, 직장생활 하느라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남편 따라 외국을 떠도느라 가족이지만 1년에 한 두번 만날까 말까 하다보니 이런 동생의 소식, 이야기를 가끔 엄마로 부터 전화로 전해 듣고 어렴풋이 알았다. 그조차도 멀리 있는 딸 걱정할까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아주 부분적인 사실만 간단하게 이야기 해준 정도로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는 모르고, 나 하나라도 그 아이편에서 좋게좋게 대해주다보면 조금 숨통은 트이지 않을까해서 영상통화로만 연락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동생을 자주 만나고 같이 지내다 보니 상태가 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작부터 병원에 데려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는 있었는데 상담치료 등을 받지 않으니 나아질 기미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점점 피해의식이 심해지고, 이제는 거의 늘 화가 나 있거나 무기력하게 있거나 그런 수준인데 본인이 병식이 없으니 약 먹으라고 하면 화를 내고 약도 잘 챙겨먹지를 않으니....
상담치료를 받아보게 하라고 가족들에게 얘기해도 일단 본인이 거부하니...
이런 아이를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은,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멀리 있는 언니로서 걱정은 되고 마음은 아픈데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으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려 본다.
캄캄한 동굴 속에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그 아이의 마음 속에 한줄기 빛과 바람이 들어 가도록 기도하며 조심스레 또 내일이나 모레나 전화를 해 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