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 왜 그럴까?
마음, 혹은 정신의 병이 있는 내 동생은 착한 남편과 예쁜 딸 둘을 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다.
사실 결혼 전부터 갑작스런 분노발작을 일으키곤 해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언제 어디서 문제(?)를 일으킬 지 모르기 때문에 결혼도 못할 거라 생각하고 엄마가 본인이 할 수 있을 때까진 데리고 살려 했다는데 용케 본인이 지금 남편을 만나 사귀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키운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의 마음도 잘 모르고 컨트롤 되지 않는 상태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키우다 보니 문제가 더 부각되고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남편과는 다투고 상처입고 그 상처와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는 시한폭탄같은 위태로운 상태이고, 아이들도 엄마의 분노발작과 부모의 다툼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불안한 심리가 나중에 어떤 문제로 드러나게 될까 걱정스러운 상태이다.
친정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그 아이의 그런 과정을 쭉 지켜보고 항상 노심초사하며 언제라도 문제가 터지면 달려갈 준비를 하며 매주 반찬을 해다 나르고 애들 방학이나 연휴에는 또 혼자서 애들 케어하느라 폭발할까봐 애들이랑 동생을 친정에 데려다가 걷어먹이며 어르고 달래다 너무 속상하고 어이없는 동생의 말과 행동을 바로잡아 주고 싶어서 얘기하다가 화가 나서 싸우기도 하신다. 그러다보니 이 동생은 그런 어머니의 도움은 거절할 수 없으면서도 어머니를 불신하고 미워하고 있다. 어머니도 내 편이 아니고 내 마음을 모른다고 굳게 믿고 있다.
동생에겐 두가지 상태(모드?)가 있다.
소위 멀쩡한 상태일땐 좀 멀쩡하게 대화도 나누고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제 나이에 비해 참 미성숙하고 어린 생각과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런데 무슨 발작버튼이 눌러져서 앵그리 모드가 되면 눈빛과 목소리, 말투까지 바뀌어서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소위 말하는 미친 사람처럼. 그럴때는 어떤 논리도 감정적 호소도 통하지 않고 온 세상을 적으로 삼아 자기를 지켜내려고 발악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 가족들도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같이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외국에 살면서 동생의 이런 소식을 띄엄띄엄(걱정할까봐 내게 잘 말씀을 안해주시고 나와 통화할 때는 거의 멀쩡한 모드였던 거 같다)듣다가 지난번에 한번 한국에 나왔을 때 동생집에 놀러갔다가 앵그리모드의 그 친구와 직접 대면해 보니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마치 이중인격의 또 다른 인격인 것 같은 모습. 게다가 너무 비이성적이고 상식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이상한 논리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설득을 하다가 나도 너무나 화가나서 대거리를 하며 대판 싸우고 한밤에 그 집을 나와 버렸다. (그럴땐 자꾸 ‘나가라’‘오지마라’하고 주변 사람을 밀어낸다)
그러고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너무나 속상하고 답답해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됐을까? 저 아이를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동생과 엄마를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생과 싸운 그날 더욱 뚜렷이 알게 되었다.
아! 내 동생은 마음이, 정신이 아픈 환자다.
그리고 가족이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신과나 심리상담소를 방문하고 싶어도 자신은 너무나 정상이고 자기를 소위 ‘정신병자’ 취급하는 사람에겐 적의를 드러내며 분노하는 동생을 설득해서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약을 먹게 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도 찾아보고 가능한 책도 찾아 읽으며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에는 그냥 분노조절장애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지켜보고 자세히 들어보니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의 사이 그 어디쯤일 것으로 진단해 본다.
그래서 열심히 피해망상 등에 관한 영상과 글들을 찾아보았다. 무엇보다 가족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선은 절대로 그의 말을 반박하며 ‘네 말이 틀렸다.’고 하지말고 그 말을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도 해주라고 한다.
옳고 그른 판단이 아니라 ‘아 너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구나.’하고.
화가 났을 때 동생은 계속 말끝마다 ‘내 말이 맞지 않아?’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런데 그 말에 ‘그래 네 말이 맞다’하고 동의해 줄 수가 없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생각과 논리를 편다. 그런데 또 거짓으로 그 틀린 말에 ‘네 말이 맞다’고 동의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냥 다만 ‘아 너는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하고 판단, 비판하지 말고 그의 말을 받아주라고 한다.
며칠전에도 마침 친정에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앵그리모드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남편과 어떤 일로 말다툼을 하다가 싸움으로 번지고 폭력사태도 일어났다고 한다. 제부에게 제발 환자랑 시시비비 가리며 말다툼하지 말고 그냥 마음이 진정되도록 일단 좀 물러나주라고 부탁하려고 하는데 그조차도 못하도록 계속 옆에서 방해를 한다.
결국은 전화를 끊고 다음날 일찍 동생에게 가보기로 했다.
아침일찍 교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고 동생에게 갔다. 다행히 아침에는 흥분이 좀 가라앉아 있어서 비교적 정상적인 대화를 좀 나누었다. 그래도 아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 하듯이 조언이나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야기들은 삼가했다.
다행히 아직은 나에게까지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건 아닌 거 같다.
그리고 나도 동생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열등감이 너무 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자존감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말과 태도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뭐라도 좀 해 보려고 세상밖으로 나가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겐 상처와 스트레스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 더 무기력하고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지고 더 외로워져 간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온전한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이 남편일 것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지만 언제나 그것이 채워지지 못하고 오히려 구박과 무시만 당하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남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얼마나 힘들었고 힘들까?)
그런데 또 나의 엄마, 나의 가족조차도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지지해 주기는 커녕 남편의 편을 들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더 이해하는 듯한 말만 하니 또 배신감이 드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니 동생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쓰럽다.
내가 이렇게 조금 자신을 이해해주고 마음을 만져주니 나와 함께 상담센터나 신경정신과도 가서 믿을 만한 상담사가 있으면 상담도 받아보겠다고 얘기했다. 물론 이 마음이 또 언제 바뀔지 모르고 나에 대해서도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른다. 잠이 안오는 밤 누워서 생각을 곱씹다가 갑자기 내게 서운한 일이 생각나서 불현듯 전화하거나 메세지로 내게 막말을 하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