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귀하디 귀한 4녀 1남중 막내아들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 어르신들에겐 아들이란 꼭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 마냥 아들을 고대하며 줄줄이 네 딸을 낳고서 마지막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기에 시어머니의 아들사랑은 각별하다.
뭐 주변의 다른 집들도 시어머니의 내 아들이 잘나고 귀하다는 그 의식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여하튼 시어머니가 그 귀한 아들을 어찌나 떠받드시는지 귀한 손님처럼 살피고 뭐라도 하나 더 해먹이시려고 안달이시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오랜만에 본 반가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러시는 중에 어머니와 함께 며느리인 나도 몸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에서는 나 혼자 몸종(?)이었지만 시댁에 오면 어머니가 '내가 원조'라는 듯이 더더욱 오버해서 살피고 챙기시며 나에게도 함께 그래주기를 바라시는 것을 보면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 친다.
어머니가 아들을 잘못 키우신 거 같다는 생각. 저렇데 떠받들어 키워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인 거라는 판단.
또 이제는 어머니 아들이기보다 내 남편인데 내가 알아서 챙겨줄 틈을 안주시고 앞서서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하시면 내가 남편을 챙기는 걸 소홀하고 게을리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주시는 거 같기도 하다. 아마 어머니 맘에 차도록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한 직무유기가 아니라면 우리 부부가 함께 하며 서로 맞춰온 생활방식대로 존중해 주시고 내버려둬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요즘 아침을 안먹거나 가볍게 먹는데 꼭 옛날 방식으로 아침부터 새로 지은 밥을 먹이기를 원하신다든가 하는 식이다.
내가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똑같을 수 없듯이 아들과 며느리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하겠지만 인간적으로 서운한 맘이 들게 하실 때가 많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갓지은 맛있는 밥을 먹이시려고 끼니마다 새밥을 하시고 남은 밥은 모아뒀다 나중에 당신이 드신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남편이 외출하고 나와 아이들과 어머니만 남아 밥을 먹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그 모아둔 남은 밥들을 우리가 함께 처리하게 되었다. 그 때 좀 충격적이면서도 서운했다.
아!! 우리 어머니도 원래 항상 식사때마다 새 밥을 지으시는 건 아니구나. 남편만 귀하고 나와 아이들은 편하고 만만하시구나.
그냥 남은 밥이 있으면 모아놓지 말고 다같이 공평하게 나눠먹으면 안될까?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맘이 참 불편하고 그러다보니 몸도 물편하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안 올 수도 없는 곳.
시어머니도 점점 더 연로해지시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이런 불편한 관계로 계속 살 지 않으려면 나의 마음과 태도를 바꿀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오랫동안 고착된 그 분의 생각과 방식을 바꾸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되 내가 정 용납이 안되는 것이 있으면 잘 말씀을 드려서 내 입장, 내 생각을 시원하게 밝히기도 해야겠다.
어떤 지인은 시댁에 갈때마다 "여기가 너희 집이다. 한국에 돌아오면 여기서 같이 살자(예전에 시댁에서 함께 살았었고 그때 여러가지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았었다고 한다)"는 시어머니께 "싫어요 어머니. 저희는 귀국해도 어머님댁에 들어와 살지는 않을 거예요."하고 당돌하게 소견을 밝혔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서운해 하셨지만 점차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부딪히고 어색해지는게 싫어서 입 꾹 다물고 속으로만 궁시렁 거리며 어머니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부턴 때로 좀 부딪혀도 할 말은 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 존중해 드리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