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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사람 Nov 01. 2024

쉰며느라기 그리고 딸노릇, 언니노릇

관계에 치일 때

차 안에서 비 오는 소리 들으며 잠시 쉼을 가져본다.


내 집, 우리 집이 없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살다 보니 조용히, 가만히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아쉽다.


어제는 시어머니 원하시던 대로 점심시간에 밥을 해서 삼겹살에 막걸리까지 한 잔씩 거하게 잘 먹고 저녁때가 되도록 배가 꺼지지 않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저녁까지 챙겨 먹고 뒷정리를 막 끝내고 돌아서는데

   - 내일은 지난번에 한우 축제 때 산 소고기국거리 꺼내가지고 소고기 국을 좀 끓이자.

그러신다. 그것도 점심때.

나는... 오전에 친정어머니랑 남편이랑 셋이 수영강습을 하러 갔다가 끝나면 점심은 셋이 다 같이 먹든 아니면 친정어머니랑 둘이서 먹든 하고 친정 가서 아버지랑 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은 시댁에 와서 밥 해서 같이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꾸 당신 생각대로, 당신 중심으로 오전에 공공 근로일 하러 갔다 오시면 며느리가 점심밥을 차려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내 입장과 시어머니의 입장이 충돌한다.

누구 하나는 양보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얼마나 양보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가슴이 좀 답답해지고, 화가 좀 났다.

어머니는 왜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시지?

왜 구태의연한 옛날 사람 마인드로 나를 힘들게 하시지? 이렇게 마음 불편하게 하시면 내가 어떻게 어머니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자꾸 "어쨌든 간에 너랑 나는 한 가족이고, 한 팀이다" 그렇게 세뇌하신다고 내가

' 아! 그렇구나. 우린 이제 한 팀이구나. 가족이구나!'하고 정 붙여 보려고 노력하게 될까?

내 입장을 좀 헤아려 주고, 내가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좀만 좀 배려해 주시면 나도 시댁이 내 베이스캠프 같고 되도록이면 여기서 더 오래 지내고 싶을 텐데....

아무튼 그저께 어머니의 참다 터져 나온 불만 사항 중 하나였던 점심밥을 어제는 마침 친정어머니가 일이 있어 수영하러 못 가시게 되어서 내가 밥을 해서 같이 먹었고, 아마도 어머니는 본인의 요구사항이 수렴되어서 이제부터 매일 점심을 그렇게 갓 지은 밥으로 먹을 수 있게 되는 걸로 생각하신 거 같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어머니 내일은 제가 점심 안 먹고 친정으로 바로 가요. 점심은 아들하고 같이 알아서 챙겨드세요." 한다면 또 맘 상하실 거 같아서 말도 못 꺼내고...

그럼 내일 수영 끝나면 친정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차도 친정어머니 차를 우리가 빌려서 쓰고 있던 상황이어서- 나는 도로 시댁으로 와서(시댁과 친정이 차로 20분 거리여서) 점심준비해서 먹고 다시 친정으로 가는 복잡한 타임라인을 생각해 보다가 차라리 아침 일찍 점심준비, 문제의 소고기뭇국을 끓여놓고 나가서 수영 끝나고 바로 친정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국을 끓이고 쌀도 씻어놓고 뒷정리해 놓고 수영 갈 준비, 2-3일 친정 가서 잘 준비까지 하느라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시지 못하고 숨 가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금쪽이 아들은 잘 일어나지도 못해 몇 번을 깨워서야 겨우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챙겨 먹고 배 부르다며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눈에 거슬리던지...

아침부터 우당탕탕 바쁘게 수영까지 다 마치고 친정어머니랑 밥 먹고 친정집으로 오는데 이번엔 친정집 금쪽이 딸 내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평범한 일, 좋은 일로는 잘 연락이 안 오는 친구라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 오늘 안 와?

매주 토요일 친정어머니는 이 딸에게 밑반찬과 국이나 찌개등을 해다가 조공을 해왔다.

토요일은 조카들 어린이집도 안 가는데 제부는 토요일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동생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데 독박육아를 힘들어하는 딸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하는 마음, 손녀들도 이렇게라도 한 번이라도 돌보고자 하는 마음, 살림에 손 놓은 딸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몇 년째 토요일에 반찬 가지고 동생네 집에 가시는 엄마를 대신해 한국에 들어오고부터는 내가 동생네 집에 갔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군대 간 아들 처음으로 면회를 좀 하느라고 토요일에 못 가게 되니 대신에 그럼 금요일에 반찬만이라도 갖다주고 가자 싶어 엄마와 동생에게 설명도 다 해주고 금요일에 갔었다.

그러나 이번주는 특별한 일 없는 한 토요일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동생도 그렇게 알고 있겠거니 하고 따로 연락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오늘 안 오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설명을 하고 내일 가겠다고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다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일까 조금 더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약간 화난 목소리로 내가 오늘 올 것이라 생각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리 얘기를 왜 안 해줬냐고 따지듯이 얘기했다. 내가 지난주에 얘기할 때 이제부터는 금요일마다 가겠다고 했단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시시비비를 논하고 싶지만 동생의 상태를 아니 그럴 수가 없어

   - 그래 내가 미리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

고 사과를 하고 마무리했다.

여기나 저기나 쉽지가 않다.   

차 안에서 혼자 가만히 한숨 돌리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다.

 

단순한 우리 시어머니 맘에 드는 거 좀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려울 거 같지는 않다.

애교까지는 힘들지만, 없는 싹싹함을 연기라도 해서 살갑게 좀 대해드리고, 원하시는 밥 좀 챙겨드리자. 그리고 상황을 봐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좀 하고 살자.

동생도 그 친구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니 화가 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소통이 문제가 있어 언니가 오늘 온다고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못 온다고 하니 화가 날 만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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