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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Aug 25. 2023

When You're Not Here

남킹 에세이 #0001

오늘도 맑음. 비가 내리는 낮은 하늘을 바라본 게 꽤 오래전이다. 


팔월의 햇살은 쳐다보기에는 좋지만 다가서기가 두렵다. 반투명 붉은 커튼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거린다. 나는 변함없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음악을 끄집어낸다.


No Clear Mind - When You're Not Here

https://youtu.be/8aduOty5TCA?si=owUnkvr9UgAwLGnK

Spend my evenings down the riverside

my favorite place when you're not here

awaiting dusk to throw a tinted smile

for every nightfall brings you near


I long to...


Give all I hold for you and twirl inside

come closer in, caress your soul

so come and find me down the waterline

we'll stroll a bit and then go home. 


나는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


오랜 시간, 나는 빨리 잠들지 못했다. 


잠을 청하기 위한 행동은 늘 비슷하기 마련이다. 


불을 끄고, 음악 볼륨을 줄이고, 휴대전화기를 내려놓고, 무겁고 시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부드러운 베개에 뺨을 갖다 댄다. 그러면 향긋하거나, 무겁거나, 혹은 투명한 하루가, 내 곁에 과거로 남을 준비를 한다. 


기억은 의식을 종용하지만, 나는 그냥 내버려 두려고 노력한다. 몽환적인 길에 발을 뻗기 위해, <내려놓음>으로 수그리는 거다. 하지만 늘 알 수 있듯이, 불편한 육체는, 쉽게 의지를 떼어내지 못한다. 


경적이, 덜컥이는 창으로 숨어든다. 뒤이어 사이렌 소리는 거리의 높낮이를 알려주고, 허공에 긴장을 날린다. 낮은 속삭임의 바람. 그 속을 탐닉하는 새는, 밤을 잊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가벼이 여기는, 지저귐을 주곤 한다. 


나는 몸을 뒤척인다. 불편한 허리가 고마운 듯, 한숨을 선물한다. 나는, 모로 누워, 저 멀리 두둥실 떠가는 상상을 다시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불현듯 느낀다.


의식은 느리거나, 빛보다 빠르게, 혹은 체감할 수 없는 속도로, 비정형의 사고와 모순, 질서정연한 논리와, 대범한 설득과 혼잡한 이야기를, 펼치거나 자르거나 혼합한 문장으로 변모한다. 


마치,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실과 같다. 실타래에서 흩어져 나와 엉킴 속으로, 활자는 벽과 공간을 마련하고, 시간을 줄 위에 새겨 둔다. 


나는 방관자적 시점으로, 능청스럽게 만져보지만, 그것이 먼 과거인지, 지금인지, 가까운 미래인지는 알 수 없다. 혹은 왜곡된 기억인지, 엄연한 사실인지, 반복하는 꿈인지, 눈앞에 그려내는 상상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나를 그려낸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이러한 것이 매우 친숙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다>와 <잠이 깨다>를 반복하였다.


반복은, 내 기억에 자국을 남겼던 과거와 현재의 불안한 동거, 미래의 폐허가 된 세상이 특이한 모습으로 섞여서 나타난다. 마치 나 자신이 방관자적 시간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는 절대자 혹은 단속적인 인간 군상을 이어주고 증명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념은 내 방의 창이 환하게 밝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내 인생의 하루가 지워진 것이다. 지워진 하루에 특이점이 없다면 망각의 강으로 시간이 잠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강 속에 풍덩 빠지기 전, 빼어난 구성과 탄탄한 이야깃거리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엮이고 이어진 기억을 최대한 빼내려고 애를 쓰곤 한다.


나를 나로부터 떼어낸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러면 차분한 상념 속에 몸을 늘린 채, 편안히 내 속에 누워있던 이야기가 화들짝 놀라, 흐트러지고 부서지며 달아난다. 나는 밝음 속에, 바위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고 음악 볼륨을 높인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선다. 친절한 이정표와 반듯하고 정돈된 도시의 안내에 따라 나는 오랫동안 돌아다닐 것이다. 날씨가 궂건 좋건, 춥건 덥건….


길을 나설 때마다 나는 생각을 남겨 두고, 시각을 수식하는 공간의 변화와 살갗을 자극하는 바람에 <마음 쏟음> 상태로, 지친 육신의 거친 반항에 굴복할 때까지,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지독하게 좁고 구불거리고 복잡하고 번잡하므로, 나는 늘 불안한 눈동자의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팔을 내려뜨린 채, 이리저리 좁은 골목을 차분하게 걷는다. 창가에 어른거리는 행인, 광고판, 자동차, 쓰레기통, 올리브 나무, 종려나무, 나의 얼굴이 굴곡을 이루며 지나간다. 


그런 광경이 너절하게 발생하고, 몇 번의 방향 뒤틀기가 이어지면, 어느새 먼지를 품은 회색 도로가 넓어지기 시작하고, 나의 상념은, 마치 내 머릿속, 후갑판의 두꺼운 해치를 윈치로 감아올리듯 끙끙거리며, 조소 어린 기억의 냉담함에 부딪히곤 한다. 그건 고통이고 통증이다. 그러므로 나는, 늘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것을, 위안이라는 안줏거리로 삼고, 어지러웠던 간밤 꿈자리의 연속에 취하기를 바라거나, 나도 알 수 없는 망상을 창조하기를 소망한다. 혹은, 하이퍼 리얼한 외관 안에, 현대인이라면 의당 그러함을 추구하듯이, 딱딱한 갑피를 덮고 숨어들기를 원한다. 나를 형용하고, 왜곡하고, 협소한, 하지만 멋진 외관의 아바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 그날이 어떤 날인지를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 집을 나선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이 거리 저 골목 발 닿는 데로 돌아다녔다. 


낮은 하늘, 적막한 거리였다. 나는 소금기 먹은 겨울바람의 어스름 속에 떨면서, 불면에 시달린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불안에 흔들리며, 온몸은 쇠사슬을 엮은 듯 질질 끌면서 다녔다. 


모두가 사라진 듯 길은 비었고 여운이 머물렀다. 낙엽이 너절하게 뒹굴고 창백한 공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괴롭히던 어떤 집착이 완성한 이야기에 웅얼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몰입 상태였다. 무정형의 경적,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가로등이 자극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거의 현실과 환상이 엉키고 혼재하는 세상에 젖은 상태로, 처량하게 어기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구름 쪽으로 가고 있었다. 호밀이 자라는 들판이 펼쳐지고 그 위로 잔물결이 일었다. 미세한 바람결이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끝에 닿은 물. 호수. 나는 비스듬히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가로수의 잎은 생기있게 파닥거리고, 바람은 옅은 차가움을 안고 귓전을 맴돌았다. 


비 냄새가 났다. 


잠들면서, 또는 깨어나면서 했던 생각들. 그곳은 떠나기를 서두르는 새와 내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며, 반쯤 열린 덧문에 걸린 쓸쓸함이, 그 회연의 동아줄을 발끝까지 내던지고, 회색빛 석양에 걸터앉은, 헐벗은 가로수를 묶는 침실이었다. 


모든 것은 잠 속에 잠겨 있고, 나 역시 그 속에 빠졌다. 눈꺼풀도 입술도 달싹할 수 없다. 그리고 내 영혼은 멈칫하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조금씩,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처럼, 발을 조심조심 떼면서 어느 공간으로 들어갔다. 넓고 밝은 홀이었다. 바닥은 고르지 못한 격자 모양의 대리석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같은 모습이 천장 거울에 반사되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텁석부리 얼굴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넋이 다 빠진 창백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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