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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제니로 알려진 노금희 #1

친애하는 검사님.    

  

우선, 당신의 소환에 불응한 점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저의 행동이, 당신이 부여한 여러 가지 조치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한 반항이거나 혹은 제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권력이라는 환각에 빠져, 당신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행한 결단의 이면에는, 제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사건과 사고가 우연히 내던져진 결과로서의 혼란에 기인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단지 매듭을 짓고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입니다. 법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때가 되면 자진하여 찾도록 할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드리는 이 편지가 바로 저의 결심이자 검사님께 드리는 약속이라고 부디 편하게 판단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번 기차를 갈아타고 몇 나라를 거쳐 제가 소망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직전에 있습니다. 이곳은 제가 젊음과 열정, 순수함과 광기를 태우던 곳으로, 어쩌면 검사님의 수사 보고서에 적혀 있는 데로, 제가 철학을 공부하던 독일의 중서부 지역의 한 곳입니다. 하지만 저의 편지를 검사님이 받을 때쯤에는, 저는 아마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 쪽으로 차를 몰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폴란드 국경에서 서성이며 우크라이나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전쟁 중이고 국경이 외국인들에게 폐쇄된 상태라면 말입니다.     


아마 검사님은 제 여행 루틴에 약간의 의구심이 들 것입니다. 유학을 한 곳이라면 당연히 그때의 설렘과 낭만, 추억을 찾아, 일종의 버킷리스트로 방문함이 타당하지만, 어떤 연고도 없고 게다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굳이 가려는 의지에는 도대체 어떤 연유가 숨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니아라는 여인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은 그녀와 보낸 3개월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느 우크라이나 여인과 다름없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부양해야만 했기에 무척 힘든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막다른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떼가 끼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과하게 받는 것 혹은 동정심에 비롯된 것이라면 언제나 불편해하고 늘 돌려주는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동유럽 여인 특유의 낙관적인 성격으로, 즐거움을 표하고 아픔을 위로할 줄 알았습니다. 그녀에 대해서는 며칠 밤낮을 들려드려도 끝나지 않겠지만 저는 여기서 간단하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지금 검사님이 궁금해하는, 저와 얽힌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제 가슴을 누군가에게 표현한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무척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백방으로 찾고는 있지만, 아직 그녀의 생사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제가 우크라이나에 가더라도 그녀를 만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리움이 저를 그곳으로 이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혹은 전설 속 <운명의 붉은 실>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 서로에게 묶여 있는 끈을 따라 기적같이 만나는 환상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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