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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쾌락

범죄자의 어린 시절은 불행한 편이다. 어떻게 아냐고? 보고 배웠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처음에는 BBC가 선사하는 동물의 왕국을 즐겨봤다. 그러다 점점 범죄 쪽으로 넘어갔다. 그곳에 등장하는 범법자들은 하나같이 어린 시절, 부모나 형제들에게 학대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좀 특이하다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나는 외아들에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과도한 로맨티시스트였다. 게다가 그에 걸맞게 수려한 외모와 출중한 허우대, 번지르르한 말발을 타고났다. 아버지의 직업 또한 그분의 <바람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으니, 이름하여 <해외바이어>. 하늘을 내 집 삼아 그분의 발길이 닿은 곳이면 어김없이 <하오의 정사>가 펼쳐졌다.      


어머니가 폭발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때였다. 별거가 시작되고 곧 이혼 소송이 진행되었다.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는 원만하게 끝났다. 내 여동생들의 양육권도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아버지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 보면 남편에게 당한 배신보다 더 큰 아픔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남들보다 똑똑했다. 적은 노력으로 반에서 늘 1, 2등을 다투었다. 그러므로 나는 어머니의 명품이었다. 남편의 빈 자리를 잘 난 아들이 메꾸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한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착한 거짓말을 했다.     


“이사할 필요도 없고 학교를 옮기지 않아도 되고, 대학생이 되면 독립할 생각이에요. 그러니 내게 양육권은 의미가 없어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엄마.”     


내가 아버지를 선택한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가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은 지나친 관심이었다. 솔직히 나는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대부분 해외에 머물렀다. 그러므로 나는 텅 빈 집에서 온전히 나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모든 게 허용되는 나만의 공간.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나의 관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상태. 나는 그게 꼭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즈음 나는 해킹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였다. 우연히 접한 해외 단신.     


‘해커 집단 노바디(Nobody)의 일원인 16세 데이브는 미 항공우주국(NASA)을 해킹해 수백만 달러 가치의 소프트웨어를 훔친 혐의로 청소년에게는 과한 징역 6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그가 해킹한 이유는 단지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내가 주목한 것은 <쾌감>이었다. 즉, 인간의 심리적 상태에 관심을 두었다. 누군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는 <우월감>. 소심한 너희들이 겁내는 것을 나는 대범하게 할 수 있다는 <자만감>. 금지하고 숨기고 억압하면 할수록 더욱 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본능적인 <반항>.     


마치 미국의 악명높은 <금주법>과 같았다. 법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술에 더 집착해 마셨다. 이것은 또한, 금단의 열매, 선악과와도 같은 거였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이 말은 인간에게 <꼭 따 먹어라!>는 명령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존재다. 본능적으로 자유나 누림에 대한 억압, 반항, 거절을 품고 있다. 단지 사회의 법이나 관습, 도덕 같은…. 인간이 같이 살기 위해 마련한 규칙 같은 것에 얽매어, 시도하지 않는 인간과 그런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나 같은 부류가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컵라면 한 개에 뜨거운 물을 붓고 책상에 앉아 PC를 켜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리고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라면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나는 늘 이 순간을 기다렸다. 나는 느낀다. 나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나의 뇌에 산소와 포도당 공급이 촉진되고 심박수와 일회박출량이 늘어난다. 동공이 넓어지고 혈당 수준이 오른다. 신경 세포가 예민해지고 손 마디마디 근육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를 몰입과 쾌락으로 몰아넣는 고마운 녀석이 나타난다. 도파민. 나는 도파민 중독자이다. 어쩌면 이것은 유전일지도 모른다. 즉, 아버지도 나와 같은 중독 환자일 것이다. 단지 종목이 다르다는 것일 뿐.      


내 삶의 궁극적 목적. 해킹의 목표는 도파민 분비 촉진이었다. 아버지의 섹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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