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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얼굴 없는 여자 #1

안미자

“성명과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안미자. 29세입니다.”     

“피해자 김지영과 어떤 관계인가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입니다.”     

“김지영 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매우 사악한 여자입니다. 내 친구지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학창 시절 유명했나요?”     

“아뇨, 정반대입니다. 정말이지 대학 가지 전까지 저는 지영이가 이런 애 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말 없는 외톨이였으니까요. 제가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냥 돈에 대해서 민감하다는 것 빼고는 그야말로 공부만 하는 애였습니다.”     

“돈에 민감하다면…. 가난했나요?”     

“웬걸요. 어마어마한 부잣집 외동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거든요.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 국방헌금을 가장 많이 내 자였어요. 그래서 감수포장(紺綬褒章) 상까지 받았다고 제게 자랑하곤 했어요.”     

“친일한 것을 자랑했다고요?”     

“네. 지영이는 뭐랄까…. 그런 역사의식이 좀 결여된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집안사람들이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지영이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집안 곳곳에 일본 문화가 눈에 띄었어요. 심지어 일장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런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지영이 부모 말이에요.”     

“특이하군요.”     

“네. 특이했어요. 부끄러운 것을 모른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이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고나 해야 하나….”     

“그 외에 다른 특이점은 없었나요?”     

“식사 때 줄곧 돈 이야기만 하였어요.”     

“누가요?”     

“모두가요. 아버지는 주식, 어머니는 부동산, 지영이와 동생은 용돈 타령을 했어요.”     

“김지영 씨는 용돈이 많았나요?”     

“아뇨, 중산층인 저보다 더 적었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지영이는 돈에 민감하다고. 그러니 늘 거짓말로 돈을 타내곤 했어요. 뭐 교재비, 학원비, 학용품비 등등”     

“그럼, 그때부터 피해자는 상습적인 거짓말을 한 거군요?”     

“뭐, 딱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알잖아요? 학창 시절…. 늘 돈이 고프죠. 그리고 한두 번 정도는 부모 속여 삥땅하곤 하잖아요.”     

“김지영 씨가 사악하다고 느낀 계기가 있나요?”     

“순전히 그 영화 때문이에요.”     

“영화?”     

“네. 맘마미아. 대학 입학 후 지영이와 함께 보러 갔었어요.”     

“어떤 내용이길래?”     

“그냥 춤과 노래, 사랑이 나오는 영화에요. 아름다운 에게해에서요. 하지만….”     

“하지만?”     

“지영이는 나 몰래 그 영화를 다섯 번이나 더 봤다고 하더군요. 완전히 빠진 거죠. 처음엔 외모만 바뀌었어요.”     

“어떻게 달라졌나요?”     

“귀밑과 손등에 손톱만 한 문신을 새겼어요. 사실, 얼굴 없는 지영이를 대번에 알아본 것도 시신의 손등에 난 문신을 봤거든요. 아무튼 7개의 귀걸이를 하고 하얀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더군요. 보온용 옷은, 최소한의 가림 용으로 빠르게 바뀌었고요. 구두 굽은 올라가고 머리는 보라색으로 물들었죠. 테크노에 심취하고 호세쿠엘보 테킬라를 마시며 손등에 바른 소금을 홡기도 했어요.”     

“조신한 신입생은 아니었군요.”     

“그렇죠. 외모가 바뀌자 행동이 달라지더군요. 친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모두 남자였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지영이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돈에 대한 엄청난 집착 말이에요.”      

“예를 든다면?”     

“뭐, 우리가 익히 뉴스나 그런 데서 접하는 그런 것들이에요. 돈 많고 순진한 남자 꾀어서 빨대 꽂아 쪽쪽 빨아 먹는 거죠. 빈 깡통 될 때까지 말이에요. 솔직히 저도 지영이 덕분에 사치로 범벅이 된 우리 도시의 아름다운 곳을 일찍 경험한 편이죠.”     

“그럼, 그녀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남자들이 있겠군요?”     

“당연하죠. 그러다 그 사건이 터진 거예요.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무슨 사건인가요?”     

“도곡동 술집 화장실 강간 사건 들어보셨어요? 음…. 그러니까 이미 8년 전이네요.”     

“네. 들어는 본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정황상 지영이가 쇼한 게 틀림없어요.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사건은 아주 간단해요. 술이 많이 취한 석현이가 토하려고 화장실로 갔는데 지영이도 따라갔죠. 그런데 잠시 후 지영이가 화장실에서 울고불고 난리 블루스를 추더군요. 석현이가 자기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어이가 없죠. 한마디로.”     

“왜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나요?”     

“순진한 석현이 꼬셔서 호텔에서 뒹군 것만 해도 수십 번이에요.”     

“그런데 왜 김지영 씨는 그를 강간으로?”     

“뻔하죠. 단물 다 빨아먹고 버리려는데 껌딱지처럼 달라붙었으니 떼려고 한 수작이죠. 뭐. 게다가 다른 호구가 생겼거든요. 그러니 급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지영이 뜻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졌죠. 석현이는 허겁지겁 군대로 도망가고 지영이는 입막음 조로 목돈까지 챙겼죠.”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제가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면 꽤 큰 사건 같은데….”     

“사건은 그로부터 일 년 뒤에 터졌죠. 석현이가 전방초소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거든요. 유서를 남기고. 그런데 그 유서가 학내 대자보에 실렸어요. 거기에는 지영이가 석현이에게 한 온갖 악행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어요. 가장 친한 친구인 나도 모르는 사실이 부지기수였어요. 그때 전 깨달았죠. 지영이는 악마다.”     

“그래서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김지영 씨가?”     

“네. 저는 천만다행이라고 느꼈어요.”     

“이후 김지영 씨를 만난 적은 없나요?”     

“네. 없어요. 지영이가 죽기 전까지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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