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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얼굴 없는 여자 #2

김지성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세요.”     

“저는 김지성이고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피해자 김지영과 어떤 관계인가요?”     

“친동생입니다.”     

“누나 김지영 씨는 어떤 사람이었는가요?”     

“예쁘고 따뜻하고 정이 무척 많았어요. 제 누이지만 최고의 성품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김지영 씨의 학창 시절은 어떠했나요?”     

“무척 활발했어요. 주변에 친구도 많았죠. 따라다니는 남학생들도 꽤 있었고요. 한마디로 학내 최고의 얼짱이었어요.”     

“김지영 씨가 돈에 민감했다고 하던데?”     

“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부자지만 부모님이 무척 겸손하셨거든요. 저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김지영 씨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외톨이에, 친구는 딱 한 명밖에 없다는 진술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누가 그러던가요? 안미자가 그랬죠? 그 여자는 사탄이에요.”     

“안미자 씨에 대해서 알고 있군요?”     

“네. 잘 알죠. 그 여자가 외톨이에다 왕따였어요. 늘 교실 구석에 처박혀 투명 인간으로 살았죠. 증거 목록으로 제출한 누나 일기장에 모든 게 적혀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착한 우리 누나가 손을 내민 거예요. 보기 안쓰럽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누이를 파멸로 이끈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악마를 품고 말았으니….”     

“그럼 안미자 씨의 유일한 친구가 김지영 씨가 되는 건가요?”     

“그렇죠.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누나는 인기가 많았어요. 우리 집에 데려온 친구만 해도 수십 명은 될 거예요. 그중에 안미자도 끼어 있었죠.”     

“그럼 그때 안미자 씨를 처음 본 건가요?”     

“네. 그렇죠. 정말 이상한 여자였어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집 구석구석을 끊임없이 훑어봤어요. 마치 살인 현장에 있는 강력계 형사처럼 보였어요.”     

“집 안에 일본과 관련한 물건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누가 그러던가요? 아! 안미자가 그러던가요? 그랬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년이 그렇게 말했겠죠?”     

“네. 친일파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웃음밖에 안 나오는군요. 정반대에요. 아시겠어요? 형사님. 저희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입니다. 대한독립단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하면서 군자금 모집에 관한 증명서와 권총을 들고 부호 가를 돌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징수하여 임시정부로 보낸 분입니다. 결국 1922년 1월에 검거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까지 치렀고요.”     

“그런데 집안에 일장기가 걸려 있다고 하던데?”     

“일장기가 아니라 일장기가 크게 그려져 있는 법정에 선 할아버지의 사진을 본 거겠죠. 안미자는 그런 여자예요. 무식하고 질투에 사로잡힌 년이었다고요. 모든 것이 완벽한 누나를 시기한 거예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희 누나는…. 이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성실하죠. 그야말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단 말이에요. 게다가 뼈대 있는 독립운동가 집안이고요. 이건 뭐, 누가 봐도 질투를 느낄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사악한 년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란 말입니다.”     

“영화 맘마미아를 보고 누나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누가요? 제 누나가요? 천만에요. 맘마미아에 빠진 건 안미자 그년이었어요. 누나는 뭐랄까…. 그런 가볍고 다분히 십 대 취향 적인 로맨스 영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그 반대죠. 삶을 관통하는 심오한 영화를 사랑했어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 마니아였죠.”     

“스탠리 큐브릭 감독?”     

“네, 예를 들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작품들이죠. 누나의 일기장에 모든 게 쓰여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모든 게 확연히 보입니다. 예술을 흠모하고 가벼움에 휘두르지 않는, 진지한 인생의 고뇌와 깊이를 느낄 수 있죠.”     

“누나가 문신을 한 게 그때쯤이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대학 시절….”     

“순전히 안미자 때문이죠. 그년이 먼저 귀밑과 손등에 손톱만 한 문신을 새겼거든요. 게다가 7개의 귀걸이를 하고 하얀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고요. 보온용 옷은, 최소한의 가림 용으로 빠르게 바뀌었어요. 구두 굽은 올라가고 머리는 보라색으로 물들었죠. 테크노에 심취하고 호세쿠엘보 테킬라를 마시며 손등에 바른 소금을 홡기도 했어요. 그리고 순진한 우리 누나를 매일 꾀었어요.”     

“누나가 했다는 거예요? 아니면 안미자가 그랬다는 거예요?”     

“둘 다요. 안미자의 끝없는 강요에 누나도 어쩔 수 없이 했어요. 똑같이.”     

“두 사람이 특히 친했던 건가요?”     

“일방적이었어요. 안미자가 제 불쌍한 누나를 항상 따라다녔죠. 착한 우리 누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고요.”     

“도곡동 술집 화장실 강간 사건 아시죠?”     

“네. 잘 알죠. 제가 안미자를 사악한 인간으로 규정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된 건가요?”     

“석현 형이 술에 취해 제 누나를 화장실에서 강제로 키스를 한 거죠. 그리고 누나는 형을 이해했어요. 형이 군대 가기 직전이었거든요. 다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미자 그년이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질투와 배신에 눈이 멀어서죠. 왜냐면 석현 형을 안미자가 짝사랑했거든요.”     

“그래서요?”     

“누나는 애초에 고소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원만하게 합의하였고 형은 그냥 군대 간 겁니다. 그런데 안미자가 끝없이 물고 늘어졌어요. 뭐, 언론에 이 사실을 뿌리겠다 학교와 군에 진정서를 제출하겠다 등등 갖은 모함과 협박이 이어졌죠. 그리고 결국 석현 형의 자살로 끝난 거고요.”     

“그 사건 이후에 누나가 사라졌다고 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마치 우리 누나가 석현 형을 죽인 걸로 소문이 났거든요. 그때 저는 확신할 수 있었죠. 안미자는 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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