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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얼굴 없는 여자 #3

조민식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세요.”     

“조민식입니다. 스물아홉입니다.”     

“고인과 어떤 관계인가요?”     

“전 남친입니다.”     

“언제 헤어졌나요?”     

“작년에요.”     

“언제 처음 만났나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입니다. 그러니까 김지영은 고2 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물론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습니다. 대학 3학년 때까지는…. 그러다 지영이가 도곡동 술집 사건으로 힘들어할 때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왜 헤어졌나요?”     

“음…. 뭐랄까….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어요. 지영이의 마음에….”     

“김지영 씨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 건가요?”     

“그런 거는 아닙니다만…. 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있었어요.”     

“안미자 말씀이군요?”     

“네. 맞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였나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애증 관계였어요. 서로가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친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때는 서로가 죽일 듯이 싸우곤 했어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쫓아다닌 거는 아니고요? 안미자가 김지영에게 집착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처음엔 그랬죠. 안미자는 고등학교 때 거의 왕따 수준이었는데 지영이가 손을 내밀자 자연스레 따르기 시작했죠. 그러다 그게 점점 일방적인 집착으로 바뀌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러니까 제가 본격적으로 사귈 때쯤에는 그 관계가 모호했어요. 뭐랄까…. 마치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하나가 된다고요?”     

“네. 거의 모든 게 흡사했어요. 마치 쌍둥이처럼…. 저는 그것을 속죄와 앙심으로 해석했어요.”     

“속죄와 앙심?”     

“네. 그 뿌리는 지영이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하였어요.”     

“할아버지라면?”     

“네. 악명높은 친일파였죠. 제가 지영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안미자의 할아버지는 장안에 손꼽히는 갑부였어요. 그리고 몰래 독립군 자금을 제공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미자 할아버지 하인 중 한 명이 그 사실을 밀고 했습니다.”     

“그 하인이 그러면?”     

“네. 바로 지영이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로부터 두 집안의 운명이 바뀐 거죠. 한쪽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금까지 가난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반면, 한쪽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엄청난 부를 과시하게 되었죠.”     

“그러면 김지영은 속죄를 위하여 안미자와 가까워진 건가요?”     

“그런 셈이죠.”     

“그럼 조민식 씨가 보기에, 안미자가 김지영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앙심을 품고”     

“누가 누구를 죽여요? 안미자가 김지영을?”     

“네, 안미자가….”     

“안미자가 죽은 게 아니었어요?”     

“네? 그럴 리가요? 고인이 된 사람은 김지영이 확실합니다. 소지품에서 신분증이 나왔거든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하나가 되었다고….”     

“하나가 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그게 그러니까…. 이상했어요…. 데이트 장소에 지영이 대신 안미자가 나오곤 했어요. 처음에는 구별되었어요. 두 사람이 비슷했지만, 아무튼 좀 달랐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구별이 되지 않았어요. 누가 누군지….”     

“아니 그게 가능한가요? 외모가 달랐을 텐데?”     

“아뇨. 가능했어요. 서로서로 성형했어요. 외모와 체형, 분위기까지…. 마치 그들은 속죄와 앙심을 버무려 하나로 빚어지기를 원한 것 같았어요.”     

“그럼 당신이 보기에 저 얼굴 없는 여자 시신은?”     

“누군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둘이 육체적으로 완벽한 하나가 된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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