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일지 #08] 규정대로 처리할게요.

근데, 규정대로 하라는 규정이 있나요?

by 나대리

공항 지상직으로 근무를 하며 가장 긴 업무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단연코 카운터이다.

승객들의 목적지를 확인하고 비자 또는 해당 국가의 출입국 규정 등을 확인한 후

티켓을 발부하며 위탁 수하물을 접수하는 장소인 카운터.


하루에도 수많은 특이사항들이 발생하는 곳이 카운터이다.


가장 먼저 직면하는 특이사항은 승객의 국적에 따른 출입국 규정을 확인하고 수속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것.

국제공항이니만큼, 수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내방하여 수속을 진행한다.

중국사람이 베트남에 간다던지

영국사람이 필리핀에 간다던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대만에 간다던지 등 등

앞서 설명했던 각 국가 별 무비자 체결국이 다르기에

티켓값을 지불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수속을 진행했다간

입국서류준비 미흡으로 곧장 쫓겨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낭패를 서로 보지 않기 위해 수속할 당시 국가별 출입국 규정을 세세하게 살핀다.

비자가 필요한 국가이나 가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시는 승객도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짠 듯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전에 그렇게 다녀와서 괜찮아, 하 참 유도리가 없네 젊은 양반이.’

‘왜 여기만 그래? 내가 한두 번 다녀온 줄 알아? 여권 보면 알 거 아냐?’

‘나 OO회사 상무인데, 내가 책임지고 다녀온다니까?‘

’인터넷에 보니까 뭐 적고 서명하면 된다던데? 왜 여기는 안그래?’

등 등 각양각색의 이유가 생겨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유도리가 없고 인류애도 부족한 일알못이 된다.

출입국 규정을 지키는데 그 규정을 지킨다고 나는 죄인이 되고 만다.


또 한 가지 많은 케이스는 바로 추가요금.

이 추가요금이라는 단어를 보면 100명이면 100명 모두 정신이 번쩍 들것이다.

안 그래도 해외여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권의 가격에 또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니.

각 항공사 위탁 수하물 규정에 따라 홈페이지에 명시가 되어있으며

규정을 초과하는 수하물이 있을 시, 그에 따른 추가요금이 부과된다.

여기서도 짠 듯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 집에서 쟀을 때는 23KG였는데 왜 여기서는 25KG이지?’

‘케리어 무게가 한 6KG 나가니까 빼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들이 외국에 사는데 반찬 좀 넣었는데 3KG만 빼줘‘

‘좋은 일(해외 봉사활동)하러 가는데 왜 그렇게 빡빡해‘

등 등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유가 나타난다.


그렇게 또 나는 다시 유도리가 없고 인류애도 부족한 파렴치한이 된다.

추가요금을 받는다고 해서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형평성에 맞게 추가요금을 징수하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한 운항을 위해 항공기 적정 수하물을 실을 수 있고

규정에 맞게 준비한 다른 승객들이 덜 억울할 테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정은

안전한 항공기 운항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인 동시에 원칙이다.


비록 또다시 내가 유도리가 없고 인류애도 부족한 파렴치한 일알못이 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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