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일지 #09] 나의 첫 해외여행 - 1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160명을 이끌뻔했는데

by 나대리

오랜만에 내 얘길 해보겠다.

때는 2016년 7월, 27살의 나이까지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도 한 번 안 타본 지상직원 3년 차이던 시기의 나는

갑자기 무슨 바람에서인지 해외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SNS도 하지 않고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일단 여권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교보문고로 달려가 겁도 없이 오사카 여행책 중 가장 두꺼운

것을 골라왔다. 역시 여행은 부딫이는 것. 수도 없이 책을 훑어보며

미니맵에 숙소와 공항을 체크하고 매직으로 동그랗게 칠해뒀다.

지금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그 당시에도 곽튜브나 빠니보틀 같이 전문 유튜버들이 있었다면 그분들에게 기댔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나에게는 곽이자 빠니였다. 그렇게 무모하게 여권과 종이지도만 챙겨

첫 해외여행지인 일본 오사카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첫 난관은 바로 찾아왔다. 바로 입국신고서. 어쩌다 보니 맨 앞 좌석에 앉게 된 나는,

승무원이 나눠주는 종이와 펜을 받아 들고 멍하니 있었다.

뭔가 한글과 영어가 쓰여있다 보니 항공사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 같은 것일까? 추측을 했다.

ARRIVAL CARD라고 쓰여있는 제목을 보고서야 아 입국카드구나, 했다.

자연스럽게 작성했다. 여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외국인이 잘 알아보도록 또박또박 한국어로 작성했다.

주소를 적으라는 칸에는 얼마 전 이사한 주소를 신분증까지 꺼내가면서 정성껏 기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일본인이 한글로 된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 오사카에 도착. 문제는 또 이 다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제일 먼저 내리게 됐다는 것.


밖에서 비행기 문이나 열어봤지 타고 내리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애송이였던 나는,

160여 명이 나를 따라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려 두통까지 찾아왔다.

내가 잘못된 길로 빠지면 159명이 날 원망할게 뻔한데… 우선 침착하고 작전을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우선 대피했다. 그렇게 20명쯤 보내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일하고 있던 국내선은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는데

일본이라 그런가 국제선이라 그런가 되게 복잡하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선두그룹을 따라갔다.

일은 생각보다 작전대로 잘 풀렸다. 작전성공. 인 줄 알았다. 이때 까지는.


문제는 입국심사. 내가 먼저 보낸 20여 명의 선발대가 입국심사 대기줄에 200명은 족히 되는

대기열에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이게 일본에 들어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기다림인가.

속으로 되뇌며 일본인이 잘 알아볼 수 있게 또박또박 한글로 적힌 우리 집 주소가 적힌

입국ㅋㅋ카드를ㅋㅋㅋ손에 들고 얌전히,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인자한 여행자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다.

1시간가량 흘러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얌전하게 여행하러 온 사람이에요. 최대한 협조하고 조용히 여행하고 갈게요. 제발 아무것도

물어보지 마시고 통과시켜 주세요, 제발요.‘ 라는 말을 미소로 형상화하며 떨리는 입꼬리를 쥐고 입국카드를 건넸다.


그렇다. 튕겼다.

당연한 결과다.

일본사람에게 한글로 된 내 한국주소를 줘봤자 무엇에 쓰겠는가.

일본에서 체류할 주소를 일본어 또는 영어로 받아둬야 하는 입국담당관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직업정신을 발휘해 나를 돌려보냈다.

에에에에 에?! 그제야 뭔가 잘못됨을 느끼고 두리번거리자 어떤 인자한 미소의 일본 아주머니께서

새로운 입국카드를 주시며 ‘한글로 적지 말고 영어로 써서 주세요’라고 또박또박 말씀해 주셨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그 아주머니 덕분에 문제를 알아냈고, 다시 줄을 서지 않고 무사히(?)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세관을 통과하는 와중에 세관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냥 지나갈 일이긴 한데, 이때는 세관 직원이

내 물품을 검사해 보자며 가방을 열라는 것이었다.

굉장히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미소’를 건네며 가방의 내용물을 쏟아냈고,

내 선글라스를 보더니 예쁘다는 말을 하며 물건들 잘 챙기고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건네주며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게 아닌가. 이때의 나는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이렇게 소지품 검사를 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를 생성한 끝에

무사히(?) 오사카에 입국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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